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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덕호 Aug 21. 2022

(2)공동체라디오는 '방송권역'이 좁다

마포FM 초창기에 웃지못할 일이 있었다. 공동체라디오는 시민들이 참여해 직접 방송을 만들어나간다. 때문에 자신이 만든 방송을 라디오를 통해 직접 듣는 것이 무척이나 큰 매력이다. <행복한 하루>라는 어르신 방송제작에 참여하는 김도한(가명) 어르신도 방송이 나가는 날 직접 라디오를 통해 방송을 듣고 싶어하셨다. <행복한 하루>는 아침 6시에 방송이 되는 프로그램이어서 5시 30분부터 fm 100.7MHz에 주파수를 맞추고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 부인도 잠에서 깨어 라디오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5시 50분경, 방송개시 멘트가 흘러나왔다. "지금 여러분들이 듣고 계시는 방송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 마포에서 보내드리고 있는 마포FM입니다." 그런데 소리가 깨끗하지 않았다. 찌지직 하는 잡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주파수가 잘 안맞았나해서 세밀하게 주파수를 맞춰봐도 마찬가지 였다. 방송시간은 다가오고, 다급해져서 라디오를 들고 집안 여기저기를 돌아다녀도 잡음이 여전히 강하게 나왔다. 이미 방송은 시작되었고, 부인은 '제대로 해보라'며 채근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송신안테나가 있는 창 쪽으로 오게 되었는데 그 때 잡음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잡음으로 방송을 듣는 것이 어려웠다. 순간 창문을 열고 라디오를 든 손을 창밖으로 내뻗었을 때야 잡음이 사라지고 깨끗한 목소리의 김도환 어르신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두분의 노부부는 그렇게 창가에 손을 뻗은 채 한시간 동안 라디오를 들었다고 한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고 한다. 부인이 아침에 일어나보니 김도한씨가 보이지 않았다. 옷도 그대로 있고, 신발도 그대로 있는데 사람만 깜쪽 같이 사라져서 걱정을 하고 있었다. 7시가 조금 넘어 들어오셨는데 차에 가서 라디오를 듣고 왔다며 '앞으로는 차에 가서 방송을 들어야겠다' 하셨단다. 김도한 어르신의 집은 송신안테나에서 직선거리로 1km 조금 넘는 곳이었는데도 사정이 좋지않았다. 

 

공동체라디오는 방송권역이 좁다. 그래서 소출력라디오라고도 했다. 대출력방송이 적어도 한 개 이상의 광역지자체나 주요 도시를 방송권역으로 한다면 공동체라디오는 이론적으로 한 개의 기초지자체를 방송권역으로 하는 방송이다. 기초지자체라고 한다면 시, 군, 구를 말하는데 대도시의 자치구나 지방의 작은 도시를 생각하면 된다. 서울의 구는 대개 가장 긴 곳이 10km 내외일 정도로 면적이 적다. 반경 5km 정도의 넓이라고 할 수 있다. 방송위원회가 2004년 소출력라디오 시범사업자를 모집하면서 ‘반경 5km를 방송권역으로 하는 시범사업자’를 모집한다고 했고, ‘기초지자체를 방송권역으로 한다’고 취지를 밝혔다. 물론 그 이후 '기초지자체를 방송권역으로 한다'는 것은 기술 기준에 포함되지 않았다. 포함되지않았기보다 아예 기술기준이 만들어지지도 않았다.


공동체라디오가 반경 5km를 방송권역으로 한다고 소개하고 있지만 실제 방송권역은 이보다 매우 좁다. 출력 1W의 경우 일반가정용라디오로 실내에서 방송을 들었을 경우 반경 1~1.5km 안에서나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다. 그것도 창 가에서나 말이다. 방송통신위원회에서 1W로 반경 5km에서 청취가 가능하다고 한 것은 평야나 바다와 같이 장애물이 없는 경우라고 할 수 있다. 높은 건물이 많은 도심권이나 우리나라처럼 산이 많은 지형에서는 성립되기 어렵다. 또한 그나마 실내에서 청취가 가능한 1~1.5km 안에서도 라디오를 깨끗하게 청취하기가 쉽지 않다. 방송을 양호하게 청취하기 위해선 특별한 노력이 필요했다. 라디오를 창가로 가져가거나 별도의 외부안테나를 연결해야만 한다. 21년 신규허가를 하면서 출력을 최대 10W까지 증강했는데도 사정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출력은 전파의 세기를 말하는데 10W라는 출력은 절대적으로 힘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빛과 같은 성질을 갖고 있는 전파는 장애물을 만나면 뚫고 지나가거나 뚫고 지나가지 못하면 회절이라고 옆으로 휘어져 돌아가거나 반사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그래서 건물이나 산 뒤편이 방송이 잘 들리지 않는 음영지역이 되는 것이다. 출력이 세면 회절하거나 반사되어 음영지역을 최소화해야 하는 데 출력이 너무 약하다 보니 벽을 지나 실내로 전파가 못들어가고, 건물이나 산을 돌아가지 못하고 그냥 소멸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나마 차량의 라디오는 일반 가정용 라디오보다 수신기의 성능이 매우 뛰어나다. 대개 3~5배 이상 수신능력을 보여준다고 한다. 그래서 차량으로는 반경 4~5km 정도에서 방송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방송을 듣다보면 얼마되지 않아 방송권역을 벗어나 역시 잡음이 잡힌다는 것이다. 10km 정도의 거리는 자동차로는 몇 분 안에 쉽게 벗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조 섞인 말을 종종 하게 되는데 ‘공동체라디오는 음악 한 곳을 채 듣지 못하는 방송이다’느니 ‘방송을 듣기 위해선 차를 세우고 방송을 들어야 하는 방송’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공동체라디오는 지역공동체와 지방자치 활성화가 주요한 도입 취지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라디오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차량으로 라디오를 멀리에서도 깨끗하게 들린다면 나쁠 건 없겠지만 무엇보다 허가받은 지역에서 일반라디오로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방송국에 참여하는 많은 분들이 종종 '적어도 서울만이라도 잘 들렸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다. 어렵고 힘들게 만들었으니 많은 사람들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럴 땐 참 난감하다. 공동체라디오의 방송권역이 넓어진다면 그 순간부터 공동체라디오라고 부를 수 없을 것이다. 기초지자체를 방송권역으로 해서 허가를 하고 있는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방송권역이 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서울의 경우 기초지자체인 자치구의 인구가 15만이 안되는 중구에서부터 70만에 가까운 송파구까지 있지만 대체적으로 30~40만 정도의 인구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30~40만의 인구면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이보다 훨씬 적은 수의 인구를 기반으로 해도 좋겠다고 본다. 공동체라디오는 ‘공동체’를 위한 라디오방송이면서, ‘공동체’가 만들어가는 라디오이다. 공동체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어야 가장 적절한 것인지에 대해선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지만 현재의 인구규모는 ‘공동체’에 적절한 수준을 넘은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공동체라디오를 유지하기 위한 규모까지 함께 고려해야 하겠지만 이에 대한 정답은 없다고 할 수 있겠다. 


공동체라디오의 좁은 방송권역은 공동체라디오가 갖고 있는 특징이자 한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장점이자 단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에 밀착해 지역주민들의 이해와 관심을 대변할 수 있다는 점은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기존 미디어에서 지역뉴스를 찾는 건 쉽지 않다. 지역은 큰 사건이 나거나 전국적 수준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나 뉴스에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인구 30~40만이 사는 지역에선 날마다 지역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무수한 일들이 일어난다. 그런 지역뉴스를 잘 전달한다면 공동체라디오의 존재 가치가 발휘될 것이다. 그 어디에서도 듣기어려운 지역 곳곳의 소식을 라디오를 통해 실시간으로 듣게 된다면 공동체라디오의 애청자가 될 것이다. 이는 지역에 관심을 갖게 해 지역의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좁은 방송권은 공동체라디오의 가장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런데 아쉽게 그나마 생긴 공동체라디오도 청취환경이 너무 좋지않다보니 제 역할을 다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좁은 방송권역은 한편 단점이기도 하다. 우리나라는 서울공화국이라고 한다. 서울 중심적이고 중앙 중심적인 나라라는 표현이다. 그러니 모두 중앙만을 바라보고 중앙의 큰 것에 더 관심이 많다. '사람은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도 있듯히 이렇게 된 데에는 여러 사회적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러다보니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적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서울의 경우 대부분이 스스로를 서울에 산다고 생각하지 특정지역인 마포에 산다는 관념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1991년 지방자치가 다시 부활되었다. 벌써 30년이 넘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아직 정착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권한과 예산이 중앙정부에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심심하면 터지는 지방정부와 지방의회의 비리와 뇌물 사건들은 지방자치가 필요하지 않다는 인식을 키우기도 한다. 지방자치가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정착하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지역주민들이 지역에 관심을 많이 두지 않기 때문이다. 관심이라는 게 알아야 관심을 가질텐데 알 수 있는 통로가 없으니 관심을 가질래야 갖지못하는 것이다. 이렇게 지역주민들이 지역에 관심이 많지 않다보니 지역에 밀착해 있는 공동체라디오에도 관심을 갖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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