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공감은 제도다

[복지 시리즈] 3편 – 말이 아니라 설계다

복지라고 말했지만, 그건 사람을 멈추게 만드는 시스템이다. 버티게는 해주지만, 다시 일어날 기회를 주진 않는다.


복지가 도움이 되려면 전제가 하나 있다. 조건 없이,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것. 그게 전제되지 않으면, 복지는 기회가 아니라 통제가 된다. 자격 조건이 많을수록 사람은 움츠러들고, 기회를 포기하게 된다. 지원이 클수록 사람은 다시 일어서려고 한다. 작을수록, 그 1원이 더 중요해지고, 더 많은 조건이 붙는다.


결국, 복지의 문제는 적은 금액이, 구조 자체를 통제 장치로 만든다는 점이다. 적은 지원이 사람을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시스템은 그 근거를 이용해 사람을 '심사 대상'으로 만든다.


낙인이 문제라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 말은, 제도가 최소한의 생존선을 보장하지 못할 때 더 커진다. 지원이 충분하면 낙인은 작동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덜 부끄러워한다. 숨지 않아도 된다. 누군가를 돕는다고 할 때, 확인해야 하는 건 '얼마나 공감하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보장하는가'다.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는가? 언제까지 '따뜻한 마음'이라는 말로, 냉정한 숫자를 외면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공감을 너무 말로만 해왔다. 제도는 감정을 말하지 않는다. 구조로 말한다. 시스템은 말을 하지 않는다. 대신 조건으로, 문서로, 숫자로 말한다. 진짜 공감은 말이 아니라 설계다. 기회를 열어줄 수 있는 구조, 회복이 가능한 장치, 실패가 끝이 아닌 사회. 복지가 해야 하는 일은 그걸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다.


복지는 사람을 정지시키면 안 된다. 다시 걸을 수 있게 해야 한다. 지금의 구조는, 일어설 가능성을 짓누른다. 이건 제도의 실패이자, 존엄에 대한 침해다.


결국 복지가 해야 하는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믿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실수하거나, 실패하거나, 잠시 주저앉더라도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 복지의 역할은 누군가를 억지로 끌어올리는 것도, 무작정 기다리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손을 내밀었을 때, 그 손을 붙잡고 함께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래야만 복지는 사람을 가두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 기반이 된다.


이 글은 요구하지 않는다. 다만 말해진다

2025년 기준, 1인 생계급여는 월 765,444원. 이는 최저임금 월 환산액(1,979,040원)의 약 39%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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