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아들이 15개월째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고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을 손꼽아 새어나가다 보면 시간이 빠른 듯도 느린 듯도 하다.
얼른 쑥쑥 커서 같이 손잡고 아들에게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고 물으며 식당을 골라보고 싶기도 하다가 그저 발이 나가는 대로 술 취한 아저씨 마냥 휘청휘청 넘어질 듯 말 듯 걷는 아기 주변을 서성이며 아기의자가 있는 식당을 찾는 지금이 소중하기도 하다.
아직 엉거주춤 걷는 돌이 막 지난 아기와 여행을 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다. 아기가 돌이 되기 전에는 돌이 지나면 데리고 다니기 좀 편해질 줄 알았는데 돌이 지나니 아니라는 걸 알았다. 어쩌면 돌 전이 더 나았을 것 같기도 하다가 상상해 보면 그마저도 아찔하다. 아기와 어딘가로 떠나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수 있으리라.
아기가 돌이 지나고 나와 남편은 근거리 여행을 두 번 도전했다.
첫 번째는 대구였다. 우리는 부산에 살고 있어서 대구는 2시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도시다. 대구로 여행을 가려고 한 건 아니었고 대학 친구의 고대하던 결혼식이 있어 여차저차 아기도 꽤 사람이 된 것 같아 이참에 우리 가족 우르르 같이 한번 가보자 했다. 1박 2일, 그저 하루 밖에서 자는 거였는데 첫째 날부터 남편과 나는 기진맥진했다. 아기와 이 정도 거리의 여행이 이리도 힘든지 몰랐다. 점심 타이밍을 못 잡고 4시가 다 되어서야 아기 낮잠 텀에 아기가 잘 잘만한 조용할만한 식당에 들어가 유모차에 잠든 아기를 옆에 두고 후다닥 면을 입에 밀어 넣었다. 모든 것이 아기의 타이밍과 함께 해야 하니 배가 고파오는지도 몰랐다. 어찌어찌 호텔에 도착해 이고 지고 온 아기 범퍼매트를 구석에 깔아 놓고 나니 이대로 자기 아쉽다는 남편. 또 여행 왔으니 하고 싶은 거 해봐야겠다 싶어 호텔 로비에 있는 편의점에 유모차를 끌고 가서 맥주와 커피땅콩을 사 왔다. 아기 재우고 구석 테이블에서 오붓하게 먹어보려 했으나 아무리 재워도 절대 자지 않는 아기였다. 아기도 여행온 걸 아는지... 자기가 싫은가 보다. 범퍼를 잡고 서서 '에오에오' 옹알이를 하는 아기 옆에 누워 10번 정도 눕혔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니 아기는 잠에 들었고 남편은 맥주를 방 밖에 나가 따와서 화장실 앞에서 조용히 원샷하고 커피땅콩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그래도 여행 와서 맥주 한잔 했다고 신나서 웃는 남편 얼굴에 웃음이 터졌다. 이게 여행인가 보다. 겁나 힘들다 진짜.
다음날 친구 결혼식은 아기의 낮잠 타이밍이 얽혀 결국 지각했고 친구와의 신부대기실 사진을 남기지 못한 나는 기분이 상해버려 남편에게 짜증을 냈다. 결국 애기를 안고 웨딩홀 주차장에서 티격태격 말다툼을 했다. 그 와중에 뷔페에 있던 과일들을 흡입했던 아기가 시원하게 똥을 싸서 말다툼은 중단되고 인근 백화점으로 급하게 가서 아기 기저귀를 갈게 되었다. 아기 엉덩이를 씻기고 기저귀를 능수능란하게 가는 남편 모습에 미안한 감정이 훅 올라와 사과했다. 그렇게 여행은 마무리되었다. 부산으로 오는 차에서 아기는 피곤했는지 깊게 잠들었고 그 순간 가장 평화로웠다. 집에 온 남편과 나는 당분간은 집에서 지내자고 합의했다.
그렇게 또 두 달 정도 뒤에 아기가 좀 더 컸으니 다시 울산으로 당일 여행을 계획했다. 이번에는 좀 더 낫지 않을까. 폭염 안전 안내 문자가 하루에 몇 개씩 오는 한여름의 7월. 다들 여름휴가를 가는데 우리도 가보자고 며칠 동안 남편이 졸라댔다. 나는 대구의 힘겨웠던 나들이 기억에 일박이일은 절대 안 된다고 답했고 우리는 당일치기 울산 여행으로 마음을 먹었다. 아기의 애착인형이 돌고래인형이라 울산의 돌고래 박물관을 가보기로 했고 여행 코스는 굉장히 단순했다. 돌고래 박물관 관람-돌고래수족관 관람(바로 옆)-돌고래마을 구경(바로 앞). 중간에 아기 밥시간에 맞춰서 아기도 먹을 수 있는 곰탕집 가기. 아기 아침 낮잠 타이밍에 맞춰 울산으로 출발했고 아기는 조금 칭얼대다가 낮잠에 빠져 다소 순조로운 나들이의 시작이었다. 울산 돌고래 박물관에 도착하니 이미 주차장은 만차였고 박물관에서 꽤 멀리 떨어진 곳에 간신히 주차할 수 있었다. 마침 깬 아기를 유모차에 태우고 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은 휴가철이라 전국의 영유아, 아이들이 북적였다. 평일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휴가철에 이런 아이들이 놀기 좋은 곳은 정말 인산인해였다. 처음이었다. 이런 곳도 이렇게 사람이 미처 터질 수 있는지 몰랐다. 박물관을 어찌어찌 관람하고 나름대로 모노레일도 탔다. 당연히 아기 손에는 8개째 떡뻥을 쥐어줬다. 떡뻥이 없으면 정말 돌고래 그 자체가 되는 아기였다. 좀 더 컸다고 자기주장이라는 게 생겼다. 낮 1시가 넘어가니 온몸이 땀으로 뒤덮였다. 아기를 안았다 내렸다 하니 나름 스타일링이라고 하고 온 단발머리도 사방으로 달라붙어 바가지가 되었고 중간에 배가 고파 들어간 곰탕집에서는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아기들이 많이 가는 관광지라 그런지 곰탕집에 전자레인지가 입구에 떡하니 비치되어 있어 아기 이유식을 데워 먹일 수 있었다. 아기 먹인 건 기억이 나는 걸 보니 나 엄마 다됐다. 너무 더워 남편과 나는 아기를 둘러업고 가까운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땀을 식혔다. 울산에 여행 온 지 3시간쯤 되었을 시점, 남편이 나에게 우리 다시 부산 가자고 한다. 땀범벅이 된 아기는 아직 신이 나 넘어졌다 일어섰다를 반복하며 걷는 듯 뛰는 듯 요리조리 쏘다니고 있었다. 더운 줄 모르고 이리저리 다니는 아기를 다시 카시트에 안히고 부산으로 향했다. 나름대로 계획한 일정을 다 소화했지만 체한 것 같았다. 여름휴가철 아기와 함께하는 나들이는 전국의 아기와 함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아기의 부모님들도 우리와 비슷한 걸까. 우리가 그나마 잘 다니는 거겠지 하면서도 여행지의 더 어린 아기들을 데리고 온 우리 또래의 엄마 아빠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이렇게 힘들지만 아기의 웃음 하나 보고 싶어 여기까지 오는 가보다. 아기가 웃으면 뭔들 못할까!
또 여행 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