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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plexArea Nov 02. 2017

[독서노트] 프란츠 카프카,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문예비평가 한스 마이어는 「카프카, 정녕 끝이 없는 것일까?」라는 논문에서 역사적 추이나 연구 방법론따라 카프카 연구 주제가 끝없이 변화적용 되어왔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끊임없이 미끄러지고 독자들을 혼란케하는 다의적 그물망은 카프카 작품 해석의 무한함의 원천이다. 이 글이 서평이라기보다 일종의 독서노트인 까닭은, 앞으로 이어나갈 카프카에 대한 나의 독해 역시 끊임없이 미끄러질 것을 예지했기 때문이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는 1919년 카프카 생전에 출간된 단편 소설이다. 우리에게 「변신」의 작가로 널리 알려진 카프카는 갑충(「변신」)뿐만 아니라 개(「어느 개의 연구」), 독수리(「독수리」), 원숭이(「학술원에 드리는 보고」), 고양이인 동시에 양인 기묘한 동물(「튀기」)을 자신의 소설의 소재로 많이 사용했다. 이 여러 편의 우화는 인간세계에서 동물세계로의 돌파―예컨대 「변신」이 그러한 경우이다― 혹은 그 반대로 동물세계에서 인간세계로의 돌파―이 글에서 다룰 「학술원에 대한 보고」―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독서노트의 목적은 두 관계에서 어떤 것이 더욱 근본적이라고 주장하기보다, 이미 전제되고 있는 ‘돌파’에 대한 나의 인상을 스케치 하고 싶다.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의 첫 장면에서 능숙하게 청중(학술원 회원)을 향해 인사하는 인간이된 원숭이, 더 정확히는 이미 (인간)언어로써 말하기에 그(인간/원숭이)가 직접 밝히기 전에는 독자가 알아차리지 못할 인간-원숭이를 보게 된다. 학술원은 중간태로서의 그에게 동물세계에 대한 경험을 제출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나 그에게 지난 오 년의 시간은 이미 “달음질쳐 지나가기에는 무한히도 긴 세월”이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는 그에게 ‘동물세계’에 대한 경험은 비유로써만 표현될 수밖에 없다. 이 건너갈 수 없는 간극, 동물세계로의 문은 “처음엔 하늘이 지상 위에 세운 문 전체”였으나 “채찍질로 이루어진 저의 발전과 더불어 점점 낮아지고 옹색해”졌다. 인간이 되기 위해 그는 언어를 배웠고 그러한 발전과 진보는 하나의 세계와의 근본적인 단절을 전제로 한다―그러나 그곳에서 바람은 불어온다― “자유로운 원숭이였던” 그가 인간으로 실존하기 위해 “멍에에 순응”한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건너갈 수 없는 저 낮아진 문. 그러나 그 문틀 통해 발꿈치를 서늘하게 하는 한 점의 바람은 그에게 닿는다. 카프카의 소설에서 서늘한(차가운) 공기라는 이미지는 위협적인 인간세계에서 생존을 박탈하는 자유를 의미하곤 한다. 그와 반대로 질식하듯 더위(『성』과 『소송』)는 속박된 인간의 삶을 묘사하곤 한다. 원숭이었던 과거로부터 뒤쫓아온 폭풍우가 차가운 공기로 가라앉아, 인간이된 원숭이의 발뒤꿈치만 살살 간질이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그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그렇다, 역시 비유법으로 말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도 역시 즐겨 비유법을 택하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말씀드린다면, 여러분의 원숭이 성질 말입니다, 신사 여러분, 여러분이 그러한 어떤 본능을 지니고 있는 한, 저의 원숭이 성질이 저에게보다 여러분들에게 더 먼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기 땅 위를 딛고 다니는 모두의 발뒤꿈치를 간질이고 있습니다. 그것이 작은 침팬지든 위대한 아킬레스든 간에 말입니다.     


아킬레우스의 발꿈치를 간지럽혔을 그 바람. 그리고 발꿈치를 명중한 치명적인 화살. 너무나도 옹색하게 낮아져 이제는 문이라기 보다 구멍과도 같은 그곳. 원숭이든 인간이든 영웅이든 그곳을 지나기가 위해서는 생명을 내놓아야 한다. “그 구멍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내 몸에서 털가죽을 벗겨내야 할 것입니다”감히 누가 그 문턱을 인간인 채로 지나가게 하겠는가. 다른 단편에서도 이 모티프는 반복된다. 시골 사람이 죽음에 이르자 문지기는 시골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알고 “희미해져가는 그의 청각에 들리도록 하기 위해 소리친다. 이곳에서는 너 이외에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받을 수 없어. 왜냐하면 이 입구는 단지 너만을 위해 저애진 곳이기 때문이야. 나는 이제 가서 그 문을 닫아야겠네(「법 앞에서」)” 「변신」에서는 그레고르 잠자가 갑충이 돼서야 알게된 사실과 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외판원의 일상을 그레고르가 어떻게 돌파하게 되었는지 생각해 볼 만하다. 이러한 모티프는 후에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던진다―기회가 된다면 『호모 사케르』에서 아감벤이 해석한 「법 앞에서」를 언젠가 다뤄보고 싶다―

위의 인용문은 이어지는 자유 개념과 밀접하게 연관되고 있어 중요하다. 중간태로서의 그가 원숭이었을 적에는 “그렇게도 많은 출구를”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그는 “물론 저는 그 당시 원숭이로서 느꼈던 것을 오늘날에는 인간의 언어로 그릴 수 있을 뿐”이라고 다시금 강조한다. 그러나 “제가 원숭이의 진실에 더 이상 이를 수 없다 하더라도, 적어도 저의 진술 방향에는 그 진실이 들어 있습니다. 그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라고 첨언한다. 결국 비유로써 저편을 설명할 수밖에 없다(「비유에 대하여」참고). 원숭이는 자유를 결코 동경하지 않는다. 이것을 원숭이는 머리가 아닌 배(腹)로 알고 있다.

      

저에게는 출구가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것을 마련해야만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 없이는 살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이런 궤짝 벽에 갇혀 있다면 ―저는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겐벡 회사에서는 원숭이들은 궤짝 벽에 갇혀 있어야만 합니다―그러니 이제 원숭이이기를 그만두었습니다.

     

원숭이는 자유라는 그 기만적인 개념을 결코 원한 적이 없다. 단지 “하나의 출구만”만을 원했다. 그것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어디든 관계 없이” “인간을 모방하고 싶다는 유혹”같은 것은 되풀이해서 말하지만 전혀 없었다. 이것은 강도가 우리에게 생명과 원초적 자유 중 하나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죽음을 피하기 위해 원초적 자유를 뺏긴 그는 비로소 주체가 된다. 이러한 라캉적 제스처를 굳이 카프카에게 끼워넣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자유를 동경하는 인간, 그리고 그 자유라는 개념 자체의 기만적 성격! 자유는 결코 선택의 문제가 아님을 카프카는 말한다.     


자유란 선택될 수 없다는 것을 언제나 전제로하면, 저에게 다른 길은 없었습니다.     


원숭이에서 인간이 되는 이 과정(“전진, 전진!”)은  우리에서 벗어나 하나의 출구를 찾는 제스처이지만, 결코 진보사관의 발전 도식처럼 읽히지 않는다. “이 진보! 깨어가는 두뇌 속으로 사방에서 밀려드는 이 지식의 빛들! 그것이 저를 행복하게 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 “한 가지 고백하자면, 저는 그것을 과대 평가하지”않는다. 그에게 이 특별한 탈출구, “인간 탈출구”는 결코 선택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위의 인용문에서 보았듯이 자유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세계로 “슬그머니 달아났습니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이다. 

이 단편에서 중간태로서의 ‘그’ 그리고 자유를 동경하는 인간은 독특한 위상에 놓여있다. 그는 낮에는 인간으로서 성공적으로 버라이어티쇼를 진행한다. 그리고 밤에는 암컷 침팬지와 잠을 잔다. “저는 원숭이 식으로 그녀 곁에서 편안함을 취합니다. 낮에는 그녀를 보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녀의 눈길에는 어찌할 바 몰라하는 조련된 동물의 착란 증세가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을 오직 저만이 알아보는데, 저는 그것을 견딜 수가 없습니다.” 원숭이로 남아있는 암컷 침팬지는 인간세계에서 착각과 혼란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인간이된 원숭이, 즉 그는 상처와 잃어버린 자유에 대한 기억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상처’는 인간이된 원숭이의 중심 기호이다. 빨간 페터라는 ‘이름’을 붙여 줄 그 상처! 다시금 동물 세계로 돌아갈 수 없지만 계속해서 뒤꿈치를 간지럽힐 그 바람! 완전한 자유도 아닌 완전한 감금도 아닌 세계에서 살아가는 상처 입은 인간 말이다.


참고서적

1)프란츠 카프카, 『변신 - 단편전집』, 솔출판사, 2017년

2)빌헬름 엠리히, 『프란츠 카프카』, 지만지, 2011년

**이 글은 빌헬름 엠리히의 책에서 절대적으로 많은 부분을 빚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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