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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omplexArea Aug 07. 2017

[독서노트] 『내전』의 두 가지 명제에 대하여(1)

첫 번째 명제:  서구에서 내전은 정치화의 기본 문턱이다.

『내전』의 두 가지 명제에 대하여(1)          

첫 번째 명제: 서구에서 내전은 정치화의 기본 문턱이다.

두 번째 명제: 아데미아(ademia, 인민의 부재)가 근대 국가의 기본 요소이다         

 

아감벤의 ‘내전’개념은 정치화의 기본 문턱, 소위 실체라기보다 오히려 결정불가능한 경계선에 가까운 것이다. 아감벤이 『내전』에서 이오코스와 폴리스(인민과 인민의 부재) 사이의 공속적 관계를 설명하면서 제시한 ‘내전’은 정치화와 탈-정치화의 문지방 같은 역할을 한다. 이러한 문턱은 마치 식별불가능한 지역처럼 보이며 정치와 탈정치 사이를 끊임없이 미끄러진다.     


스타시스는 오이코스 안에도 또 폴리스 안에도, 즉 가족 안에도 또 도시국가 안에도 위치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가설이다. 오히려 그것은 오이코스라는 비정치적 공간과 폴리스라는 정치적 공간 사이의 비식별역을 구성한다. (조르조 아감벤, 『내전』)     


아감벤의 사유에서 비식별지역은 핵심적이다. 이것은 그의 주요 저서마다 조금씩 바뀌지만 그에게 있어 가장 근본적이다. 주로 ‘호모 사케르’, ‘예외상태’ 등으로 사용되며 그가 보았을 때 이 비식별지역이 바로 서구 정치철학의 근본적 형상이라는 것이다(숨겨진 비사로써 벤야민과 슈미트의 서로 간의 응답은 다음 기회에 따로 다루겠다). 이것은 비단 오이코스/폴리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닌, 조에/비오스, 인민/무리, 말/문자, 법률-힘/법률(x)-힘 등 인간 사유의 어떤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문제는 이러한 정치‘화’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이 작동(정치화)과 관련해서 아감벤은 끊임없이 두 거인(벤야민/슈미트)을 참조한다. 본 텍스트인 『내전』에서는 이와 같은 맥락이 직접적으로 제시되지는 않는다. 아감벤이 가설로 제시한 정치철학의 비사는 『예외상태』에서 자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 이외에도 국내학자의 저서로는 『종말론 사무소』, 『말하는 입과 먹는 입』을 참고 했다― 우선 『내전』에서 직접적으로 다뤄지는 홉스 식의 정치를 참고하며 슈미트의 정치적 ‘결단론’을 살펴보고자 한다.

칼 슈미트가 적과 아를 구분하는 것을 ‘정치적인 것’의 가장 핵심적인 테제라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 ‘적’개념이 서구 정치철학사에서 아주 중요한 위치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이 ‘적’을 둘러싼 논쟁을 검토해야만 20세기 보편주의를 비판한 슈미트, 그리고 아감벤이 21세기에 이르러 다시금 내전 개념을 제시한 맥락을 검토할 수 있다.

홉스에게 있어서 전쟁(내전)은 제거될 수 없는 것, 국가·법의 외부에 놓인 것임과 동시에 그것을 조건화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국가-전쟁상태는 서로가 서로를 공속하는 원환을 이루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로크에게서 전쟁은 국가나 법(이성)이 통제할 수 있는 통치의 대상이며, 하나의 진보주의―자연상태(야만)에서 시민정부(문명)으로 진화하는 도식― 담론 내에 위치해 있다. 홉스에게는 ‘적’이란 국가(정치체) 성립을 위해서 반드시 전개되어야 할 조건적 폭력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나 로크에게 있어서 ‘적’이란 ‘인간’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에게 싸움을 걸거나 적의를 나타낸 자를 파괴해도 좋은 것은 그가 느대나 사자를 죽여도 되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람들은 이성의 보통법의 구속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폭력의 법칙을 알 뿐이며, 따라서 맹수, 즉 만약 그가 그 손에 걸려들면 반드시 죽임을 당하기 마련인 위함하고 유해한 동물로 취급되어도 어쩔 수 없기 때문이다. (존 로크, 『통치론』)  

   

홉스 이후의 로크식 자유주의는 서구 사상의 중심축으로 놓여진다. 그러는 것과 동시에 사라지는(은폐되는) 것은 바로 ‘적’ 개념인 것이다. 로크의 이론 내에서 말하자면 보편적 이성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 ‘인류’라고 불리는 인간개념과 흡사해 보인다. 그에게 있어 비-이성적이라고 판단되는 인간은 바로 맹수와 다름 아니다. 로크가 지워버린 적은 바로 법의 바깥에 있는 자이다(정치화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적’을 지워버린 것이다).      


이 위반자는 이미 인간이 아니고 위험하고 유해한 맹수인 것이다.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이런 논리는 슈미트가 논박한 바 있는 “인류를 입에 담는 일”이다. 로크에게 ‘적’은 인류 바깥으로, 법 바깥으로 추방되어 보편적인 이성이 명하는 바에 따라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로크에게 슈미트가 말하는 적이 없다.(김항, 『종말론 사무소』)     


자유주의 계보학에 묻혀 망각되어 버린 것을 재사유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1차 세계대전 이후의 국제질서 때문이다. 전쟁에서 패배한 독일은 전쟁을 선포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게 된다. 그런데 슈미트가 보았을 때 이것은 주권자 위의 주권자, 국가라는 최고심급 위의 심금이라는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는 주권에 대한 그의 정의를 통해 확인해볼 수 있다.     


주권자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이다. (칼 슈미트, 『정치신학』)    

 

진정한 의미의 예외상태야말로 주권에 대한 법학적 정의에 본래적으로 적합하다는 사실에는 체계적이고 법논리적인 근거가 있다. 예외상태에 대한 결정은 그야말로 결정 그 자체이다. 왜냐하면 정상시에 유효한 법조문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일반적 규범은 절대적 예외를 결코 ㅍ악하지 못하고, 진정한 예외상황이냐 아니냐에 대한 결정도 완전하게 근거 짓지 못하기 때문이다. (칼 슈미트, 『정치신학』)   

  

슈미트에게 주권이란 법을 중지 시킬 수 있는 ‘예외상태’를 ‘결정(결단)’하는 것, 그것을 행사하는 자(국가)인 것이다. 이 맥락은 흡사 홉스의 주권론과 비슷하며, 그가 자유주의(보편주의) 계보를 뒤집어 살리려는 것 또한 이러한 정치적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더욱 이해될 수 있다. 올바른 적을 결정할 수 있는 주권국가의 이러한 결정권이 박탈되는 상황, 국제연맹 주도로 실현되려던 전쟁의 위법화, “자유주의·다원주의적 질서의 확립은 적의 현전과 잠재성을 법과 인간성의 외부로 밀어”내는 것이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그가 주장하는 전쟁에 대한 권리는, 단순히 살육을 즐기는 전쟁광의 광기어린 주장은 아닌 것이다. (서)유럽 역사를 톺아보았을 때 홉스·슈미트식 ‘결단’은 근대국가의 성립조건이었다. 그러한 의미에서 근대국가라는 최고 심급을 넘어서는 또 하나의 주권(국제연맹 및 보편주의)은 유럽의 전통적인 질서(노모스)를 무너뜨리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어째서 21세기에 이르러 내전 모델을 다시금 사유해야 하는 것일까? 어째서 2001년에 발표된 이 글을 14년이 지나고나서야 출판하였을까?―이 책은 2001년 10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진행된 이 두 차례의 세미나를 바탕으로 출판되었다. 바로 한 달 전에 9▪11테러가 일어났다는 점을 기억해두자―  

   

“이 세미나에서 제출된 명제들―서구에서 내전은 정치화의 기본 문턱이며, ‘아데미아’가 근대 국가의 기본 요소라는 명제―이 과연 어느 정도나 여전히 적용 가능한지 아니면 그와 반대로 우리 시대가 전 지구적 내전 상태로 진입하기 시작한 [역사적] 사태가 이제 근본적으로 의미를 바꾸고 있는지의 여부는 독자들이 결정할 문제이다.”(조르조 아감벤, 『내전』)    

 

아감벤은 자신이 제시한 두 명제에 대한 판단을 오로지 ‘독자들이 결정할 문제’로 놓고서 한 발을 뺀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러나 그가 여태껏 내놓은 지적 작업을 보았을 때 어렴풋하게나마 이미지가 손에 잡히는 듯하다.      


“만약 근대 정치는 생명정치라는 푸코적 진단이 맞는다면 그리고 만약 그러한 정치를 오이코노미아적▪신학적 패러다임까지 소급해서 추적하는 계보학이 마찬가지로 맞는다면 전 지구적 테러리즘은 생명 자체가 정치의 쟁점이 될 때 내전이 취하게 될 형태가 될 것이다. (……) 더 이상 오이코스와 폴리스 사이의 문턱에 위치할 수 없는 스타시스는 모든 분쟁의 패러다임이 되어 테러 형태로 재출현한다. 테러리즘은 어떤 때는 지구의 이런 지역을, 다른 때는 다른 지역을 덮치는 ‘전 지구적 내전’이다. 생명 자체―국민(즉 출생)―가 주권의 원리가 되는 순간에 ‘테러’가 등장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생명이 그 자체로 정치화 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가 이 생명이 죽음에 무조건적으로 노출되는 것, 즉 벌거벗은 생명이 되는 것이게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조르조 아감벤, 『내전』)     


다음 글에서는 “아데미아(ademia, 인민의 부재)가 근대 국가의 기본 요소이다”라는 두 번째 명제를 검토하며 아감벤이 제시하고 있는 생명과 정치와의 관계를 살펴볼 것이다. 아감벤은 「리바이던과 베해못」에서 홉스 리바이던의 표지 그림을 흥미롭게 해석하고 있다. 이러한 작업으로 우리는  “생명이 그 자체로 정치화 될 수 있는 유일한 형태가 이 생명이 죽음”에 이른다는 그의 생명정치학적 이미지에 우회적으로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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