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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우 같았던 나의 이십 대

by 신발끈

마음은 하늘, 기분은 날씨, 감정은 구름이다. 떠다니는 구름은 폭풍우를 몰고 와 비를 뿌리기도 했고, 쨍한 햇살을 보여주기도 했다. 우중충하거나, 짙은 안개가 자욱하거나, 바람이 불기도 했다. 모두 나의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자라오면서 나의 기분과 감정에 관심이 없었다. 나의 마음은 한결같다고 생각해왔다.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고, 가야 하는 방향을 알고 있다고 믿었다.

스무 살이 되면서 이른바 '좌파 운동권'이 되었다. 어쩌다 그리되었을까. 대학에 가게 되고 '사회 변화'를 주장하는 과격한 선배 무리를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어졌다. 좀 더 큰 곳에서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데모를 가고, 대자보를 만들어 붙였다. 가장 큰 목소리를 구호를 외치고 팔뚝질을 했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 채워져 있던 하루하루였다. 가장 급진적인 것이 가장 원칙적인 것이라 믿으며 혁명을 꿈꿨다. 세속적인 성공은 생각하지 않았다. 언젠가 좋은 세상이 오면 그것이 나의 노력에 보답이라고 믿었다. 반드시 세상은 좋아질 거라고, 우리는 성장할 거라고, 나는 빛나게 될 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 시절의 나는 무엇 때문인지 계속 바빴다. 늘 사람들을 만나 무언가를 설득하려 다녔다. 운동하는 딸내미를 용납할 수 없었던 부모님이 계신 집을 나왔고, 학교 수업은 들어가지 않았고, 돈도 벌지 않았다. 선배 언니네 집에 얹혀살았는데 차비가 없어 자주 걸어 다녔다. 운동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시기였다. 점심 먹을 돈이 없었지만 저녁엔 사람들과 술은 마셨다. 밤새 술을 마시며 사회주의에 대해, 혁명에 대해 토론했다. 나의 길이 틀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일상은 누추하고 미래는 암울했다. 제대로 씻고, 입고, 먹지 않았다. 그럼에도 자신이 있었다. 주위에선 나를 걱정했다. 매사에 날카롭고 짜증이 나 있다고 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은 어떻겠냐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라도 벌어야 되지 않겠냐고. 나는 지금이 중요한데, 그것이 나의 전부인데 다들 무엇을 걱정하는 걸까.

그럼에도 위태로운 순간은 찾아왔다. 나는 성실하지 않았고,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든 일정을 펑크 내고 자취방에 파묻혀 잠적해 버리는 일이 잦았다. 누구에게도 연락을 하지 않았고 연락을 받지 않았다. 화가 난 동지들은 그게 뭐가 어렵냐고, 전화 한 통 하는 것이 왜 안되냐고 물었다. 정말 그게 어려웠다. 공중전화를 찾아 동전을 넣고 메시지를 남기는 그것이 어려웠다. 며칠씩 잠적하는 습관이 잦아졌다. 어둑한 지하 자취방에 누군가 찾아와 문을 두드리기 전까지. 가만히 누워 며칠씩 잠을 잤다. 정말 이상했다. 원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도 통제하지 않는데. 그냥 조금 피곤할 뿐이었는데. 아침에 눈을 떠 그냥 잠시만, 조금만 더, 자자고 생각했을 뿐이었는데 그게 사나흘로 이어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면 혼자 힘으로 거기를 빠져나올 수 없었다. 내가 게으르고 의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다시 마음을 굳게 먹고 자신을 몰아세웠다.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또 많은 이들이 떠났다. 집안의 반대에, 미래에 대한 걱정에, 세속적인 욕심에, 믿었던 이들이 떠나갔다. 나는 그들을 붙잡고, 화를 내고, 욕을 했다. 분명 틀린 건 그들이었다.'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며 떠난 동생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에게 운동은 쉬운 길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것을 그저 열심히 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복잡할까. 그들은 왜 그렇게 나약할까. 운동의 길로 들어왔으니 해야 하는 일을 하면 되는 거였다. 나는 단순했고 행복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우리가 술을 마시고 도란도란 이야기하는 것이 인생의 가장 기쁜 순간일지도 몰라"

회의가 끝나고 이어진 술자리에서 선배가 건넨 이야기가 이해되지 않았다. 약해빠진 소리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큰 길로 가고 있는데, 우리의 목표는 이렇게 원대한데. 작은 일상의 기쁨 따위가 대체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은 그 선배도 떠나갔다.

나는. 그만두자고 결심한 적이 없었는데 마흔을 지나 운동에서 저만치 멀어져 있다. 과거의 나에게 전부였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의미를 잃었다. 이념을 좇아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이라 믿고 정진했던 과거의 모습을 지우고 싶었다. 많은 것이 부끄러워졌다. 높였던 목소리도, 세상을 뒤집어 놓을 거라던 자만심도. 무엇보다 자신의 안위만을 위해 사는 지금의 모습이 부끄러웠다. 어떤 모습이 진정한 나인지 헷갈렸다. 작년에 개인상담을 시작하면서 잊혀 있던 나의 이십 대가 떠올랐다.

"**님의 과거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하염없이 눈물이 났다. 그때의 나는 어렸구나. 기껏해야 스무 살을 넘긴 청년이 많은 것을 책임지려했구나. 자신을 돌보지 않았구나. 운동에 전념하겠다는 이유로 많은 것들을 버렸다. 가족도, 친구도, 대학도. 오늘만 생각하면서 살았지만 내일이 오는 것이 두려웠다. 내일 다시 해가 뜨고, 돈이 없고, 비루한 옷을 입어야 한다. 같은 나이의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그럴듯한 직장을 구하고, 연애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좋은 향기가 났다. 내 모습이 초라해 보여 주눅이 들었다. 피하고 버리는 것은 쉬웠다. 운동을 버리고, 나를 놓아 버렸다.

무언가에 압도된 채 이십 대를 지나왔다. 감정은 격하게 흥분되었다가,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어떤 날은 활화산이 폭발했고, 다음 날은 폭풍우가 몰아쳤다. 좋거나 나쁘거나, 옳거나 그르거나. 세상을 위해, 민중을 위해 사는 삶을 선택했다고 자신했지만, 그저 '최고의 운동가'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닐까. 나는 가장 멋있고, 유능하고, 열심히 하는 사람이 되어야만 해. 어쩌면 내가 도달할 수 없는 목표였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강하게 나를 몰아세웠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러했다. 여유가 없는 삶이었다. 사람에게는 휴식이 필요하듯이 마음에도 쉼이 필요하다. 항상 좋을 수 없다는 것, 실수를 할 수 있다는 것, 어쩌면 떠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강인한 의지를 가진 이들이 더 멋져 보였지만, 자신의 약함을 살피고, 솔직하게 나누는 것도 용기이다. 폭풍 같은 시기를 보내니 마음이 잔잔해지고,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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