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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편에 선다는 것은...

by 신발끈

나는 청소년들을 만나는 것이 좋았다. 지금으로부터 십오 년 전 동네 방과 후 학교에서 청소년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처음에는 수학을 가르쳐 주는 교사로, 다음에는 프로그램을 이끄는 강사로, 여행을 함께 가는 지도자로 그들을 만났다. 까다로운 청소년들을 많이 만나왔다고 생각했다. 중학생들은 예측을 하기가 어려웠다. 화가 가득 차 있어 언제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활화산이었다. 나의 선한 마음이 언젠가 그들에게 가닿을 거라고 믿었다. 권위적이지 않고 청소년의 편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애정은 빗나가고 일수였다. 남자 중학생들의 툭툭 튀어나오는 반응에 상처를 받기도 했다.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화답하리라는 믿음. 그들의 농담, 짜증, 화를 그대로 받아들였다. 섣부르게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일 년이 지나면 그럭저럭 안정적인 관계가 되어 있기도 했다. 나의 방법이 틀리지 않다고 믿었다. 결국은 지나가게 된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그저 같은 자리에 있어 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대안학교에서 만났던 청소년들은 달랐다. 항상 불안해 보였고 부서질 것 같았다. 마음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학교로 와 교실에 앉아 있는 것도, 사람들이 가득 찬 급식실에서 밥을 먹는 것도 쉽지 않다고 했다. 비정규직 교사, 학교에서 가장 낮은 곳에 있던 나는 그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싶었다. 밥을 자주 사주었다. 맛있는 것을 먹기 위해서라도 학교에 나오라고 했다. 집에서는 그들을 돌볼 어른이 없었다. 늦게 일어나도 일단 학교로 오라고. 여기에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하며, 결국은 졸업을 하자고 했다. 누구도 혼내지 않는데,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따뜻한 사람들이 있는데.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너무 힘들어요'라고 핏기 없는 얼굴로 이야기하는 학생이 있었다. 어떤 게 그렇게 힘이 들어? 그냥 다 힘들어요. 여기 내 옆에 앉아. 나는 그의 얼굴을 한없이 쳐다보며 그의 이야기를 한없이 들었다. 가장 낮은 곳의 취약한 위치였던 나는, 힘들어하는 그들을 보며 견뎠다. 그들에게 밥을 사주기 위해 학교를 갔다. 괜찮아. 지금도 잘하고 있는 거야. 내일은 좀 더 괜찮을걸. 에너지가 조금 올라온 것 같았던 그녀도 다음 날이면 저 바닥으로 내려가 있었다. 서로가 힘이 되었다면 좋았을까. 그럴 수 있었을까.

스스로가 버겁고, 매일을 그저 견디는 그들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랐다. 나는 작은 일에도 박수를 치며 웃었다. 괜찮을 거라고. 나는 그들 옆에서 세상의 모든 나쁜 기운을 받아줄 것처럼 있었다. 사실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연약한 그들도 언젠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두 다리로 서서 버텨내야만 했다. 작고 허약한 이들이 그럴 수 있을까. 나는 언제까지 이들 옆에서 작은 행복을 즐기며 살아갈 수 있을까. 그곳에서 나는 불안정하고 힘이 없는 비정규직인데. 그들은 결국은 자라 학교를 떠나야 할 텐데. 나는 그들의 엄마도, 가족도 아닌데.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겠다는 욕심이 나를 여기로 이끌었다. 사회에서 청소년들은 약하고 도움이 필요한 존재라고 믿었다. 돈이 많은 부모를 두고 있든, 누군가를 괴롭히는 폭력적인 청소년이든,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 청소년이든 도와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운동권으로 십 년을 버틴 것은 여기에서 이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믿었다. 마치 종교에 귀의하듯, 소명감을 가지고 헌신했다. 나는 지치지 않을 거라고. 항상 너희들의 편에 있을 거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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