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새벽부터 폭풍우가 바다를 뒤집었다. 연한 파란색이었던 바다는 회색빛에 흰 파도가 넘실대고, 야자수들은 바람에 몸을 맡기고 그 긴 잎들을 마당에 뿌려댔다. 숙소가 2층이라 침대에 누워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었다.
여행이었으면 날씨에 투덜댔겠지만, 노트북으로 음악을 틀고 작업인지 아닌지 모를 무언가를 해댔다. 작년에 써 놓은 원고들이 있어, 너무나 감사하며 요걸로 요렇게 저렇게 해볼까 궁리만 했다.
오후 4시쯤 되니, 바람도 잦아들고 비도 걸을 만하게 내렸다. 신작로로 내가 다니던 국민학교로 가던 길을 걸어갔다. 가다 보면 다리가 하나 나오는데, 바다 가까이 있는 건천 위에 있다. 제주의 건천은 무섭다. 한라산에서 언제 물이 쏟아져 바다까지 내려올지 모르니까.
학교까지 가지 않고 돌아서서, 편의점에서 먹을 것을 샀다. 먹지 않고 살 수 없는 사람이니, 먹는 게 중요하고 큰 일인 거라는 걸 여기서 또 깨닫는다.
저녁을 먹고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잠이 쏟아졌다. 뭐 했다고? 피곤이 쌓였나. 창을 열어놓고 비바람 소리를 들으며 내쳐 잤다. 8시쯤부터 자기 시작해 깨면 11시, 깨면 새벽 2시, 깨면 새벽 4시. 안 되겠다 싶어 4시에 일어났다. 푹 자서인지 정신이 말짱했다.
노트북을 열고 또 뭔가를 하다가, 6시쯤 어제 사온 비비고 미역국에 밥 말아먹고, 약도 챙겨 먹고, 7시쯤 밖으로 나갔다. 폭풍우는 지나간 듯한데 아직 남은 바람을 맞으며 길을 걸었다. 이런 루틴으로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라산이 더 높게 보였다. 노란 꽃도 보인다. 무슨 꽃인지 모르지만 지금 필 시기인지 예쁘게 피고 있어 사진을 찍었다. 그 꽃 이름을 저녁 산책할 때 알게 되었다.
어쩐지 무궁화를 닮았다 했더니. 멸종 위기인 건 맞나 보다. 어릴 때 이 꽃을 본 기억이 없다. 메꽃은 참 많이 봤는데.
오늘의 원고 작업을 어느 정도 하고, 또 바다를 본다.
추석을 이틀 앞둔 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