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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나숙자 Dec 22. 2024

귀촌생활

겨울 잔디 예찬

대부분의 겨울 정원은 화사한 봄 색에 무채색을 섞어 놓은 것처럼 묵직하고 불투명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는 엽수물론이거니와 소나무나 문그로우 같은 침엽수들조차도 활력 없는 노인처럼 우중충한 빛띤다.


이처럼 썰렁한 분위기 싫어서 초부터 나는 마당에 잔디를 심었을 것이다.

예측한 대마당을 뒤덮고 있는 갈빛의 잔디 겨울정원 변화시켰다.


앙상한 나목이며 색 바랜 소나무가 그저 꽁꽁 얼어붙은 땅바닥에 서있다고 상상해 보라. 옷이라도 입혀줘야 할 것 같은 추위가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갈빛잔디가 그 주변을 감싸고 있다면 어 상상해 보라. 뭔가 보호받는 느낌에 온기가 느껴질 것이다.

살아있는 나무뿐만이 아니 겨울이면 가릴 것 없는 돌탑이나 항아리와 같은 조형물잔디와 함께 어우러지면 자태가 폼나서 굳이 눈이 없는 겨울이라 하더라도 꽤 멋스럽다. 심지어 붉은 단풍으로 치장한 남천이나 홍가시까지도 잔디 덕을 보게 되면 그것들의 미모뿐만 아니라 정원의 전체적인 분위기까지 달라진다.

이처럼 갈빛잔디겨울정원 식구들을 돋보이게 하고  또 마당이나 나무에게 따뜻  준다.

나는 잔디 예찬론자다. 특히 갈빛 잔디를 찬미한다.

잔디는 연둣빛일 때나 갈빛일 때나 다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굳이 내가 마른 갈빛 잔디를 한 이유는 온 대지가 볼거리 하나 없는 묵직한 회색풍경일 때, 겨울을 따뜻하게 하면서도 평화롭게 변주하잔디의 모습이 그저 경이롭기 때문이다.

 

어느 햇살 좋은 겨울이었다. 우리 집 데크마루에 서서 정원을 지켜보던 서울 친구가 "겨울인데도 정원이 그다지 썰렁하지 않네. 남쪽이라 그런가?" 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잔디 때문일 거야. 저 갈빛 잔디를 좀 봐.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텅 빈 공간을 포근하게 감싸주고 있는 모습, 저것이 바로 땅을 따뜻하게 하고, 주변 들까지 돋보이게 하면서 보는 이의 마음까지 녹여주는 것 아니겠니."

그렇다. 겨울 잔디는 땅을 감싸주면서 시선을 따뜻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는 온기가 있다.

수분 없이 갈빛으로 물든 잔디가 고양이 털 같은 부드러움과 평온한 얼굴빛으로 정원 마당을 채운 모습을 상상해 보라. 누가 감히 사랑하지 않고 배길 수 있겠는가?


 갈빛 잔디는 정원의 꽃으로도 손색이 없다.

나무에 상고대가 허옇게 피는 날, 새벽빛에 반짝이는 갈빛 잔디는 그야말로 영롱한 눈꽃이다. 이처럼 정원의 꽃들이 부재중일 때 갈빛 잔디는 꽃을 대신해서 정원지기를 자꾸 웃게 하는 겨울정원의 꽃이다. 갈빛 잔디가 이럴진대 푸른 잔디는 말해 뭘 하겠는가? 잔디 스스로도 아름답고 멋스럽지만, 무엇보다 자기 주변을 먼저 정갈하게 하는 겸손있어서 더 정이가고 미덥.

그렇다면 잔디가 이처럼 사랑스러운 점만 가지고 있을까?

아무리 좋은 사람도 백퍼 맘에 들 수 없듯이 잔디도 마가지다.

맞춰 잡초를 뽑아줘야 하고, 또 벅머리가 되기 전에 자주 깎아줘야 하는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그런 불편함을 감수할 만한 충분한 매력이 있지 않는가? 그러니 곁에 둘 밖에.

더구나 겨울 잔디는 성장을 멈춘 상태라 여름처럼 일주일에 한 번꼴로 깎아줘야 하는 부담 없기 때문에 더더욱 사랑스럽다.


어쨌거나 난 잔디를 사계절 정원 디자이너로 꼽고, 잔디 만한 꽃 없다며 앞으로 쭈욱 잔디 손을 들어 것이다.


바람이 세차게 불면서 비가 내렸다가 눈발이 날리고, 또 그러다가 해가 살짝 비치그야말로 수시로 변덕을 부리는 예측불허의 날에 저 갈빛잔디가 없었으면  날씨만큼 나도 힘들었을 것이다.

위로는 꼭 사람에게서만 오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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