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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꼼지 나숙자 Dec 26. 2024

좌충우돌 정원사

정원사의 겨울은


서울에 사는 친구가 전화를 해서는 "요즘 같은 겨울에는 풀 뽑을 일 없지?" 하고 묻는다.

그동안 내가 꽃밭 가꾸느라 너무 애쓴다는 것을 아는 친구라 그나마 내가 겨울이라도 쉴 수 있기를 대하면서 하는 소리였을 것이다.

그런데 내 대답은 단호했다. "뭔 소리야! 겨울이라도 햇살 좋은 날이면 밖에 나가서 풀을 뽑는다고."  


실은 나도 귀촌해서 한 두 해는 겨울이 되면 풀은 다 얼어 죽는 줄 알았다. 또 마을 어르신들도 겨울 되면 풀은 다 죽으니까 굳이 풀 뽑을 필요 없다 하셔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농사짓는 분들에게 농한기가 있듯이 꽃밭을 가꾸는 정원사에게도 휴기가 있구나 생각하고 겨울이면 시선을 땅바닥에 두지 않 지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겨울 한에 모든 것들이 꽁꽁 얼어붙어도 절대 기죽지 않고 버티는 화초들이 있었다. 내가 일부러 꽃씨뿌려가면서 키우는 수레국화꽃양귀비와 같은 애들 그랬고, 의도적으로 심지 않았지만 스로 나자리 잡은 광대나물이나 살갈퀴 그리고 봄까치꽃과 같은 잡초들도 버젓이 잘 살고 있다.

다시 말해 화초나 잡초가 1년생이든 다년생이든 간에 다들 자기 나름의 방식 겨울을 나서 꽃도 피고 또 씨앗까지 자연스럽게 가면서 자라는 애들이 여럿 있다는 것이다. 그 사실을 알고부터는 겨울에도 호미를 놓을 수가 없었다.

물론 이런 모든 사실에 눈 딱 감고, 겨울을 오로지 정원 휴식기로 여기고 푹 쉴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결국 온 잔디밭에 제초제를 뿌린다거나 아니면 풀이 무성한 정원을 지켜봐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름다운 정원을 꿈꾸는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이면 꽃밭이든 잔디밭이든 예서제서 기승을 부리는 잡초들을 가차 없이 뽑아내고자 햇살을 등지고 엉덩이 방석을 깔고 앉는다. 엄동설한에도 꿋꿋하게 살고 있는 생명력 질긴 잡초를 뽑 위해서다.


이처럼 내가 겨울 작정하고 풀을 뽑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는 허구한 날 집안에 틀어박혀서 뒹굴다 보면 햇볕이 적은 겨울이라 비타민 D가 부족하게 고 또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 되햇볕 좋은 날이면 건강을 염두에 두고 풀을 뽑는다.

둘째는  릇푸릇하게 고 있는 잡초가 누런 갈빛 잔디 속에 있을 때 검머릿속의 새치처럼 눈에  띄어서  뽑아내기에 아주 월하다.

셋째는 씨가 여물기 전에 뽑아버리면 씨앗 번식 줄어기 때문에 잡초번식을 어지간히 막을 수 있다.


그렇다고 겨울을 온통 풀 뽑는 일을 한다거나 정원관리하는데 시간과 마음을 다 쏟자는 것은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바람은 없고 겨울 햇볕이 유독 좋은 날이면 실내를 박차고 나와 햇볕세도 받을 겸해서 운동하듯 두어 시간 풀을 뽑면 어떻겠냐는 것이다.

이 같 풀 뽑기는 사실 일이 아니라 운동이고 놀이다.

더구나 나처럼 일흔을 바라보고 있는 이에게는 할 일이 있다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 된다. 적어도 고독만큼은 따돌릴 수 있다.


이처럼 겨우내 자신의 생각과 의지대로 정원을 바꾸어놓은 정원지기는 설레는 마음으로 봄을 기다릴  안다.

한 뙈기 땅이라도 내 정원을 소유한 사람 역시 화들짝 놀라게 하는 정원을 기대하면서 봄을 기다릴 줄 안다.

기다림은 설렘이다.

길냥이는 봄의 양지를 기다리고, 새들도 짝짓기 할 봄을 기다리지만 아직 겨울이다. 그러나 감이 살아있는 정원사는 겨울은 봄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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