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 가꾸는 사람입니다

아름다운 설국

by 꼼지 나숙자

어제는 쨍한 겨울햇살로 웃게 하더니 오늘은 하얀 설국으로 가슴설레게 한다.


올해 첫 대설주의보다.

눈이 많은 장성은 겨울이면 몇 차례 주의보가 발효되기 때문에 그다지 놀랠 일은 아니다.

제 밤은 입장이 달랐다.

다음 날, 독감 치료차 시내에 있는 병원까지 운전해야 한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기 때문이다. 마을 언덕배기에 있는 우리 집은 큰 눈이 오면 차 빼기가 쉽지 않다. 그것을 몇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된 남편은 대설 특보 안내문자가 뜨자 곧 자동차를 마을 공터에 이동주차 해뒀다.


예보한 대로 밤새 눈이 엄청 내렸다. 데크마루에 쌓인 눈높이를 가늠해 보니 10cm는 넘어 보였다.

간밤에 차 빼놓기를 잘했다.


자동차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대강 쓸어내고 도로를 따라 서서히 달리는데 칠 전만 해도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 로수 나목이 하얀 눈꽃로 몸을 린 아름다운 모습이다. 저것들을 도로변이 아닌 한적한 숲속에서 만났으면 정말 황홀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펄펄 날리는 함박눈이 바람에게 쫓겨 자꾸만 우리 자동차에 곤두박질다.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도 눈발속에 온통 하얗고, 가까이 있는 이정표도 설핏 눈옷을 입었다. 그림 같은 설국이다.

병원 갈 일 아니었으면 이 아름다운 장면을 쳤겠구나 하는 생각에 그만 독감에게 너그러워질 뻔했다.


진료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도 여전히 눈은 내리고 있었다.

남편은 엊그제 사온 대홍포차를 따뜻하게 내준다.

독한 약 때문에 미각을 잃은 나는 귀한 차 맛은 느끼지 못하면서도 툭트인 거실창으로 내다보이는 바깥풍경에는 "음~~ 좋다." 할 정도로 한 마음이 들었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햇살이 쨍하면 쨍한 대로 또 먹구름이 덮치면 덮치는 그대로의 자연을 온전히 내주는 우리 집 거실창, 내 집에서 인기순위 1위다. 통창을 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긴 하지만,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생각하면 그럭저럭 봐줄 만하다.

차의 온기로 몸이 따뜻해질 때쯤, 바깥풍경을 지켜보던 나는 또 소리하나 밀어낸다. "좋다."

이때도 역시 차맛보다는 눈 내리는 바깥풍경 홀딱 반한 소리다.

수십 년을 살았던 도심의 아파트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었던 자연의 몸짓, 그것들과 온전히 마주하는 기쁨은 대 식상한 법이 없.


뭐든 싫증을 잘 낸 사람에게는 어느 한순간도 반복적으로 우려먹은 법 없는 자연이야말로 좋은 벗이 되지 않을까 싶다.

어제는 햇살이 좋아서 차를 렸고, 오늘은 눈이 내려서 차를 우렸다면 내일은 또 어떤 모습의 자연이 차를 마시게 할까?

자연으로 돌아갈 날이 그리 멀지 않은 탓인지 점점 인간보다는 자연에게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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