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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가꾸며 산다

무언으로 말하고, 무언을 읽는

by 꼼지 나숙자

밥 한 끼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다.

함께 밥을 먹고 도란도란 차를 마시자며 찾아가는 길이다.

언덕베기로 올라서면 대문처럼 서있는 한 그루의 치자나무가 노란 치자를 대롱대롱 매달고서 먼저 반긴다.

내가 치자염색하고 싶다고 했을 때, 아낌없이 따 주던 이 집 안주인은 이제 없다.


마당 안으로 들어서니 월동 중인 야생화 화분이 즐비하다. 잡초가 얼씬하지 못하도록 파쇄석을 두툼하게 깔고 그 위에 야생화 도자기 화분을 잘 배치해 두면 어지간한 꽃밭보다 정갈하고 멋스럽다는 것을 이 집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흙도 없는 파쇄석 사이에서 겨울을 버틴 누운주름을 보고 있을 때, 마당 바깥 길을 따라 홀쭉한 남자가 휠체어를 밀고 나온다.

자동차에 오르기 전부터 쐐기를 박겠다는 듯

"오늘 점심은 제가 삽니다."

자신이 꼭 사고 싶다는 마음을 길게 늘어놓으면서까지 동의를 구하려고 애쓴다.


여자가 떠난 지 1년이 넘었건만 4인 탁자에 네 명이 아닌 세 명이 앉은 모습은 여전히 낯설다.

우리 부부가 독감으로 두어 달 고생했다는 것을 알고는 남자가 낙지전골에 전복까지 추가해서 주문한다.


으레 껏 밥 뒤에는 따끈한 차가 있는 남자의 집이다.

거실 벽난로의 잔불로 집안은 훈훈하다.

남자는 장작을 몇 개 더 넣는다.

모든 데가 여자 있을 때처럼 티 없이 깔끔하고 정갈하다.

휠체어와 한 몸이 된 지 오래라 익숙한 몸짓으로 차를 내리는 남자의 모습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쓸쓸함은 묻어있다.

"경순 씨가 언제 많이 생각나요?"

"시도 때도 없어요. 막 떠났을 때나 지금이나 슬픔의 농도는 똑같은 거 같아요. 지금도 여전히 밤이면 베개밑이 흥건하거든요."

1년 전에 갑작스럽게 여자를 잃고 잘 버티는가 싶었는데 의외의 답이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혹시 경순 씨가 아팠을 적에 그 애절한 사랑을 서로 표현한 적 있나요?"

"아니요.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는 병마와 대결하느라 둘 다 죽음을 염두에 둘 틈이 없었어요. 죽을 거라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었던 거죠.

...

한 번은 이런 적이 있었어요.

통증으로 힘들어하다가 설핏 1시간 정도 자고는 눈을 뜨더니 가느다란 소리로 묻는 거예요.

"몇 시야?"

"1시네."

"낮이야 밤이야?"

"이제 막 12월 1일이 되었네."

"그럼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다 지나가버렸겠네?"

"가을은 또 와"

....

"그러고서 일주일 뒤에 떠났어요."


그때까지도 둘은 다음 가을을 함께하지 못할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고 했다.


그 남자와 여자의 사랑은 내 보기에도 참 예뻤다.

내가 귀촌하고 알게 된 가장 아름다운 부부였다.


25살에 오토바이 사고로 휠체어를 타게 된 남자는 서른 즈음에 다리가 불편한 여자를 교회에서 만났다. 그리고는 곧 결혼했다. 어릴 때부터 소아마비로 목발을 짚고 다녔다는 여자는 겨울김장은 물론이고 자동차 운전도 손수 하는 당찬 여자다.

남자와 여자는 둘이지만 한 몸이었다. 화분에 꽃 하나 심을 때도 실과 바늘처럼 한 몸으로 움직였고, 핸드폰 하나를 가지고 둘이 함께 썼으며 또 외출할 때는 여자가 운전하고 남자는 네비였다.

언젠가 여자는 내게 말했다. 남편이 너무 사랑스럽고 아까워서 큰 소리 한 번 낼 수 없다고.

그 말은 과시나 교만이 아닌 그녀의 진심이었다.


그런 그녀가 남편을 홀로 남겨두고 어떻게 떠날 수 있었을까?

"고마웠고 사랑한다"는 말도 하지 못한 채 무엇이 그리 급해서 암선고를 받고 한 달 만에 훌쩍 떠났을까?


어디선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다.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떠나올 수 있었던 것은 무언 속의 무수한 말들을 남편이 알거라 믿기 때문이에요!"


할 말이 너무 많을 때는 무언으로 반응하는 지혜가 그들 부부에겐 있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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