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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꽃밭가꾸며 산다

서툰 정원사, 그래도 함께 가꾸는 중입니다

by 꼼지 나숙자

생각은 곧 행동으로 이어지는, 성질 급한 여자가 있다.

그 옆에는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고 유튜브를 보는 남자가 있다.

둘은 함께 꽃밭을 가꾸며 사는, 일명 ‘정원사 부부’다.

시골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여자가 스스로 붙인 직업.

아직은 4학년 외손자만이 진지하게 인정해주는 직업이지만,

정원에 대한 애착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식탁에 앉아 밥을 먹던 여자가 후원을 바라보며 말했다.

“여보, 저 담장 밑 홍가시 앞으로 슈크렁이나 에버그린 사초 같은 그라스를 심으면 어때?”


남자는 대답이 없다.

거실 창 너머 정원을 바라보며 여자는 다시 묻는다.

“여보, 우리 집 대표 정원수로 망종화 어때?”


잠시 침묵 끝에 남자가 조용히 입을 연다.

“망종화는 1년에 두 번은 가지치기를 해야 돼. 더 늘리면 곤란해.”


여자의 마음속에서 또 하나의 식물이

가차 없이 밀려나간다.

7년 동안 수없이 들어오고 또 쫓겨난 식물들처럼.


“여보, 당신은 정원을 새롭게 디자인해보고 싶은

호기심 같은 거 없어?” 여자가 묻는다.


남자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이 사람아, 내가 몇 살인데 호기심이여, 호기심이. 일흔이라고.”


나이라는 건 마음먹기 나름이라 생각하는 여자.

검지손가락을 치켜들어 좌우로 흔들며 말한다.

“여보, 루이제 린저는

‘생의 한가운데서 의욕이 있는 한 늙지 않는다’고 했어.

당신 마누라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는 여자고 말이야.”


여자의 열정에 초를 친 게 살짝 미안했던 걸까.

남자는 다소 부드러워진 얼굴로 말한다.

“알았어, 알았어. 당신 뜻대로 해.

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어도, 당신 하라는 대로 해줄게.”


그나마 이런 맛에 산다.


40년 넘게 함께 산 남자지만,

크게 다툰 적도, 권태에 시달린 적도 없이 살아온 건

아마도 서로를 향한 기다림과 배려 덕분일 것이다.


성격은 달라도 마음은 닮은 두 사람.

여자가 성급하게 앞으로 나아갈 때면

남자는 말없이 뒤에서 균형을 잡아준다.

그런 남자가 가끔 들려주는 말엔

살면서 조금씩 체득한 지혜가 묻어난다.


“세상에 완전히 옳은 것도, 완전히 틀린 것도 없는 법이지.

흰색 안에도 검은 기운이 있고,

검은색도 어딘가 흰빛을 품고 있으니까.”


숟가락을 들면서도 여자의 시선은 늘 정원으로 향한다.

정원지기로 살기 시작하면서 생긴 습관이다.


그리고 또, 꿈을 꾼다.

미국 버몬트 주의 30만 평 정원을 가꾸던 타샤 튜더처럼, 아흔이 넘어서도 맨발로 걸으며

예쁜 정원을 가꾸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꿈.


그 꿈을 오늘도 꽃 한 포기 심으며 키운다.

그런 아내의 꿈을 마치 알기라도 하는 것처럼 남편은 핸드폰 대신 삽을 잡는다.

그런 아내의 마음을 아는 듯, 남편은 핸드폰 대신 삽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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