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밥상
내 감정을 다룰 줄 아는 것 중에 햇볕만큼 좋은 게 또 있을까?
한여름 불볕더위만 아니면, 햇살은 언제나 나를 웃게 하고 건져 올리는 좋은 에너지다.
햇볕이 좋아서 걷고, 햇살을 핑계로 풀을 뽑고, 막 떠오르는 태양을 환호하며 시를 암송한다.
데크마루를 윤기 나게 닦으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것도 햇볕 때문이다.
동트는 모습에 환장하고, 겨울이면 거실 깊숙이 파고드는 햇살에 방긋하고, 데크마루에 쏟아지는 볕의 기운이 좋을 때면 저절로 두 손을 번쩍 들고 햇살을 찬미하는 나.
이쯤 되면 인정해야겠다. 나는 분명 햇살 덕후다.
이런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남편이 마당에 식탁을 차리겠단다.
올해 들어 처음 차리는 마당 밥상이다.
마당 밥상을 차리려면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햇볕과 봄바람의 눈치를 살펴야 하고, 미세먼지는 없는지, 메뉴는 마당에서 먹기 좋게 간단한지,
무엇보다 이 시간을 충분히 즐길 여유가 있는지도 중요하다.
우리 부부는 늘 이런 것들을 따져본 후에야 입을 맞춘다.
"여보, 오늘은 햇볕 쬐며 마당에서 밥을 먹읍시다."
오늘의 메뉴는 영양밥.
가지, 토마토, 미나리, 당근, 우엉, 표고버섯, 콩, 단호박...
여러 가지 재료를 넣어 밥을 짓고, 달래장을 곁들인다.
거기에 건강한 햇살을 듬뿍 끼얹어 먹으면 된다.
남편이 처음 시도한 영양밥은 밥이라기보다 야채죽에 가까웠지만, 맛보다는 영양을 생각하며 꼭꼭 씹어 먹는다.
햇살과 하늘, 이제 막 움트는 나무와 화초까지 함께 음미하는 시간.
그 여유로움과 재미가 좋다.
봄이나 가을이면 무조건 마당밥상 강추다.
햇살이 좋은 날엔 마음을 움직이는 마법이 있다.
그 마술에 이끌려 꽃밭으로 나가면, 꽃들은 마음을 웃게 하고, 잡초들은 여지없이 내 손을 잡아끈다.
햇살을 등지고 앉아 잡초를 뽑는 순간의 뿌듯함.
그때 숨어 있던 꽃을 발견하면, 풀도 뽑고 꽃도 보는
일석이조의 기쁨을 얻는다.
날씨에 끌려다니지 말고 늘 평온함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햇살의 유혹엔 언제든 흔들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리고 흔들리는 삶을 굳이 멀리할 생각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