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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밭 가꾸며 산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뿌리내린 삶

by 꼼지 나숙자

귀촌, 망설임과 결심 사이에서

"우와, 나도 이렇게 살고 싶어요."

꽃밭을 가꾸며 살아가는 우리 부부의 정원을 찾은 이들은 백이면 백, 부러운 듯 인사치레를 건넨다. 그럴 때면 나는 대뜸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렇게 한번 살아봐.”


하지만 대부분은 '그럴 생각이 없다'기보다는, '남편이 도와주질 않아서', '체력이 안 돼서' 같은 핑계를 대며 손사래를 친다. 사실 나도 그랬다.

공기 좋은 시골에서 살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도 마음 한켠에선 ‘시골은 너무 외로울 거야’, ‘병원도 멀고, 겨울 난방비도 장난 아니라잖아’, ‘허약한 몸으로 그 많은 풀을 감당할 수 있겠어?’, ‘벌레들은 또 어쩌고’ 같은 부정적인 이유들을 내세우며, 귀촌과 도시 사이를 49대 51쯤의 비율로 오락가락하며 망설였다.


결국 귀촌을 결심하게 된 건, 서울에 남아야 할 이유보다 시골에서 나만의 색을 펼치고 싶다는 오랜 꿈이 더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시골살이는 오랫동안 내 버킷리스트 1호였다. 그러니 더 말해 무엇할까.


귀촌한 지도 어느덧 7년.

이제는 내 하루가 어떻게 채워지는지, 시골살이는 어떤 매력이 있는지, 그리고 친구들에게 권할 만큼 충만한 삶인지 곰곰이 생각해보게 된다.


시골의 하루


시골의 아침은 신의 선물이다.

수탉이 지구를 흔들면,

대숲을 빠져나온 새들은 신의 언어로 찬미하고

파닥파닥 동쪽으로

붉게 차려입은 장미

다닥다닥 등에 매달린 접시꽃

납작 엎드린 채 노란 별 머리에 이고 있는 청세덤

그 날의 태양보다 일찍 당도한 그녀

꽃잎과 한 몸인 이슬조차도

일제히 동쪽을 의식한다.

온 대지에 숨 쏘아대며 불끈 올라온 태양은

한사코 동쪽을 고집하더니 서쪽을 살핀다.

그럼에도 아침의 기운은 동쪽에 있다.

호미든 손, 멍 때리면서

회색 아닌 초록으로 땅을 살리면

한 낮의 태양은 겸손해진다.

태양이 서쪽으로 기울면

그녀의 걸음은 한없이 느려진다.

끝자락이 주는 삶의 여유다

금성이 먼저 서쪽을 밝히면서

긴가민가한 별들까지 끼어들면

그녀는 어린 동화를 쓰고

하루가 눈을 감는다.


자연과 함께 잠들고, 자연과 함께 눈뜨는 삶

이처럼 시골의 하루는 생기로 가득한 기쁨과 신비로 채워진다.

그래서 난 가끔 친구들을 꼬드긴다.

동트기 전의 새소리, 이슬과 한 몸이 된 꽃잎들, 날마다 다른 얼굴의 해오름, 사계가 살아 있는 잔디밭, 황혼빛이 주는 여유, 밤하늘의 마술 같은 별빛,

그리고 자연과 함께 눈뜨고 자연과 함께 잠드는 삶.


이 경탄스러운 하루를 함께 느껴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친구들은 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도시를 떠날 수 없는 이유를 늘어놓는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덧붙인다.


“그래, 내가 잘 가꿔 놓은 꽃밭 구경만 해도 되지.

굳이 너희들까지 애쓸 필요 있겠니?”


삶에는 정답이 없다, 그래서 더 아름답다

그렇다. 삶에는 정해진 답이 없다.

친구가 선택한 도시든, 내가 선택한 시골이든

각자의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고,

그 속에서 아름다운 면을 나누고

부족한 부분은 서로의 삶으로 채워가면 되는 것이다.


결국, 누군가를 기쁘게 할 수 있다는 건

참 멋진 일이다.

내가 손수 가꾼 정원을 둘러보며

사람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면,

‘아, 이게 바로 내가 시골에서 꽃밭을 가꾸며 사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그때 시골살이의 불편함을 핑계 삼아 도시를 고집했더라면, 이런 기쁨은 결코 누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뿌듯한 마음으로 꽃밭을 돌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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