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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꽃밭 가꾸며 산다

틈이 있어야 햇살도 스며든다

by 꼼지 나숙자

여름도 되기 전인데 꽃밭이 벌써 무성하다.

양귀비밭을 만들 생각으로 자연 발아한 양귀비를 그대로 두었더니, 수레국화와 뒤엉켜 작은 숲이 되어버렸다.

과유불급이라더니, 차라리 모자란 편이 나았겠다.


나무 주변에 퍼진 양귀비를 과감히 솎아낸 후에야

비로소 숨통이 트이고 시선도 한결 편안해졌다.


꽃이 지고 힘을 잃은 튤립도 어지간하면 뽑아 정해둔 자리에 다시 심어둔다.

그렇게 해두면 잎이 사라진 뒤에도 불편 없이 구근을 수확할 수 있다.


몸집을 키운 골든벨 수선화도 너무 조밀하게 자라서

잎이 시들기 전 파내어 이웃과 나누고, 남은 것들은 자리를 옮겨 넉넉히 심어둘 생각이다.


월동도 잘하고 매년 다시 피는 다년생 화초라 해도

관리를 소홀히 하면 처음처럼 고운 꽃을 보여주지 않는다.

때를 맞춰 자리를 옮기거나 필요한 영양을 더해줘야

비로소 ‘여러해살이’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올해로 정원 생활 8년 차.

심어둔 나무는 자라났고, 해마다 돌아오는 다년생들도 많아져 이제는 꽃밭에 틈이 없다.


이제는 뭔가를 더 심기보다, 뽑아내는 데 집중해야 할 때다.

조밀함보다는 여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바람이 통하고, 햇살이 스며들며, 시선도 한결 부드러워진다.


그러니 과감히 솎아내고 정리해서, 여백의 미를 표현하기로 한다.


우리의 삶도 꽃밭과 다르지 않다.

나이 들어서까지 삶을 너무 빽빽하게 꾸려가면

마음은 어지럽고, 몸은 쉽게 지친다.


적당히 비워내고, 빈틈의 여유를 부려야

비로소 건강하고 단단한 삶을 이어갈 수 있다.


꽃밭을 다듬듯,

내 삶도 조금씩 가볍게 정돈해 가야겠다.

꽃밭처럼, 삶도 비워두어야 햇살이 스며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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