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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꽃밭 가꾸며 산다

꽃도 사람도 공감이다

by 꼼지 나숙자

사람이 유독 예뻐 보일 때가 있다. 꽃도 마찬가지다. 같은 꽃이라 해도 피어난 장소나 바라보는 시간에 따라 그 아름다움이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이 사실을 아는 나는, 이슬 맺힌 보석 같은 꽃을 보기 위해 아침 눈을 뜨자마자 꽃밭으로 튀어나가곤 한다. 그러면 여명이 내려앉은 정원에서, 특히 동쪽을 등지고 선 꽃들이 아침 햇살을 만나는 황홀한 순간을 목격하게 된다.

붓처럼 봉오리를 맺은 붓꽃이나, 입을 앙다문 장미 위로 햇살이 쏟아질 때, 그 빛에 스러지는 이슬과 함께 꽃들이 수줍은 듯 웃는 모습을 상상해 보시라. 새소리가 들려오고 맑은 향기가 코끝을 스치는 아침의 정원은 그 자체로 감사이자 찬미다.


꽃구경은 촉촉한 아침이나 은은한 해질 무렵이 가장 좋다.

강한 자외선에 노출되어 윤기를 잃은 낮의 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아침에 만나는 꽃은 싱그럽고 생기가 넘치며, 황혼 속의 꽃은 고요하고 품위 있다. 아마도 사진작가들이 작품사진을 찍기 위해 새벽을 택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꽃을 볼 때는 시간만큼이나 위치와 각도도 중요하다.

어떤 꽃은 위에서 내려다보아야, 또 어떤 꽃은 아래에서 올려다보아야 그 진가를 드러낸다.

이를테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피는 때죽나무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무릎을 굽혀야 한다. 몸을 낮추고 고개를 살짝 들어야만, 아래로 향해 매달린 작은 방울꽃의 섬세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키 큰 락스퍼나 접시꽃처럼 시선을 벗어난 높이에 핀 꽃은 한 발짝 뒤로 물러서거나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면 좋다.

대부분의 꽃은 눈높이에서 가장 예쁘게 보이지만, 마치 미술 작품을 감상하듯 앞으로 뒤로 걸음을 옮겨가며 다양한 각도로 바라볼 때 진정한 감동이 생긴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안다.

꽃을 보는 시간이나 각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공감’이라는 사실을. 꽃을 사랑하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어야 제대로 바라볼 수 있고, 꽃과의 진정한 소통과 치유도 거기서 시작된다.


5월,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계절이 되면 꽃밭을 구경하러 오는 손님들이 종종 있다.

그들 중 대부분은 정원의 전체적인 모습에 감탄하며 “우와, 예쁘네요. 이렇게 만들기까지 얼마나 애쓰셨어요?” 하는 정도의 인사를 건넨다.

정원지기로서는 조금 서운하다. 꽃 한 송이 한 송이와 눈을 맞추며 교감하길 바라지만, 대부분은 그저 스쳐 지나간다.


하지만 가끔, 꽃에 진심인 친구들이 있다.

립스틱을 다시 바르고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후, 꽃 하나하나의 키에 맞춰 다가서는 그들의 몸짓은 꽃을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 그대로다.

“이 조막만 한 꽃 이름은 뭐예요?”

“와, 이건 꼭 아기 볼 같네요.”

쥔장의 청에 따라 베르가못 줄기를 흔들며 “으음~ 이건 향수가 따로 없네요.” 하며 향기에 감탄하고, 어떤 이는 꽃을 보기 위해 엉덩이를 쳐들고 밑에서 고개를 들이민다.

나도 덩달아 엉덩이를 쳐들고 그녀의 흉내를 내다보면, 어느새 까르르 웃음이 터진다.

이런 친구는 꽃과 소통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다. 꽃들도, 나도 그녀와 함께 웃게 된다.


어린 손님들도 있다.

6년째 빠짐없이 찾아오는 단골손님, 바로 내 손자 손녀다. 올해로 열 살, 여덟 살이 된 그 아이들은 이제 제법 꽃을 보는 법을 안다.

해가 뜨기도 전, 트리하우스에 올라 일출을 감상하고, 라르고 속도로 걷는 꽃밭 산책을 하며 꽃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꽃 같다.

“수레국화야, 안녕?”

그렇게 여러 꽃들에게 인사를 건넨 뒤, 자신이 심은 나무 앞에선 제법 길게 이야기를 나눈다.


지난가을, 손녀가 백일홍을 가리키며 말했다.

“할머니, 이 꽃은 꽃 속에 또 꽃이 있어요.”

살펴보니 정말 그랬다. 수술과 암술이 꽃잎 속에 또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내 눈보다 섬세한 그 아이의 눈은 분명 꽃에게 진심이었다.

특히 그림 그리는 걸 가장 좋아하는 손녀는, 꽃밭에서 들은 꽃의 속삭임을 도화지 위에 그리며 자기만의 방식으로 꽃과 소통하고 있다.

그림 속 웃고 있는 꽃들을 보며 나는 그 아이의 마음에서 공감의 신호를 읽는다.


정원지기는 안다.

꽃이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시간은 해뜨기 전후라는 것을.

그리고 또 안다.

꽃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바로 이 말이라는 걸.

“이렇게 예쁜 꽃을 피우느라 정말 애썼구나. 참 아름답다.”


그렇다면 사람은 언제 가장 아름다울까?

방금 샤워를 마친 뒤 이슬처럼 촉촉할 때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때라고 믿는다.

그리고 그 중심엔 ‘공감’이 있다.


꽃과 눈을 맞추고, 꽃을 그림으로 남겨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 그것도 분명 선한 영향력이다.

꽃이든 사람이든, 마음을 기울여 눈을 맞추는 그 순간, 이미 우리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도 꽃들에게 말을 건넨다.

“참 예쁘게 피었구나. 얼마나 애썼니.”

그러면서 조용히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사람에게도, 꽃에게도, 먼저 다가가 눈을 맞추고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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