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멈춤,그리고 다시
아침 햇살이 참 맑았다.
습기 하나 없는 개운한 공기를 들이마시며 마을 산길을 오르니, 흙길의 촉촉한 감촉과 햇살의 반짝임이 온몸을 깨우는 듯했다. 그 순간이야말로 하루의 절정 같았다.
“그래, 오늘은 이 햇살 하나로도 충분하다.”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정원을 둘러보는 사이, 아침부터 조금 불편했던 배가 다시 신호를 보냈다. 약을 먹을 정도는 아니라고 여겼고, 따뜻한 물 한 잔이면 괜찮아지리라 믿었다. 그래서 예정대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좋아하는 바느질 수업을 빠지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점심시간, 함께 나눈 김밥이 화근이 되었다. 장염 증상이 본격적으로 찾아온 것이다. 남편이 “약 가져다줄까?” 물었을 때, 고맙다며 받았어야 했다. 괜찮다고 손사래를 쳤다가 결국 집에 돌아왔을 땐 기운 하나 없는 환자가 되어 있었다.
남편은 된장 풀어 야채죽을 끓여주고 약까지 챙겨주었지만 증상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괜히 버티다 병만 키운 셈이다. 좋아하는 정원일도 못 하고 침대에만 누워 있으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짧은 하루 사이에 기쁨과 고통을 함께 겪으며 새삼 깨달았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오고, 천국과 지옥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것들도 결국은 스쳐 지나간다.
머리로는 잘 알면서도 막상 그 안에 있으면 늘 흔들린다. 기쁨에는 들뜨고, 고통에는 쉽게 주저앉는다. 그러다 상황을 실제보다 더 크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하지만 다행인 건, 누구나 그렇듯 결국은 회복한다는 것이다. 바닥까지 내려가도 어느 순간 툭툭 털고 일어나곤 한다.
오늘은 아프단 핑계로 잠시 쉬어간다. 조금 우울할 수 있겠지만, 곧 정원도, 바느질도, 그리고 그 맑은 햇살도 다시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오늘의 아픔도, 내일의 햇살이 다 덮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