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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은 여전히 진행 중

과수원에서 시작된 나의 꽃밭 이야기

by 꼼지 나숙자

귀촌해서 무턱대고 호미부터 들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아홉 해가 흘렀다

워낙 가만히 있질 못하는 성격이라, 아침에 눈만 뜨면 아무 데나 파고 일구었다.

꽃이 자랐으면 하는 곳엔 서둘러 꽃모종을 사다 심고, 잡초가 무성한 곳엔 망설임 없이 호미부터 들이댔다.


내가 호미질을 시작한 곳은 시부모님이 20여 년 동안 감나무 농사를 지으시던 과수원이었다.

그분들이 떠나신 뒤 2년쯤 묵혔던 터라, 늙은 감나무들이 제 빛을 잃고 잡초만 무성했다.

그런 땅을 파는 건 마치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었지만, 한 해 두 해 지나면서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감나무의 수는 줄어들고, 잡초 대신 잔디가 퍼지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꽃밭이 생기고, 꽃길까지 이어졌다.


처음부터 정원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있었던 건 아니다.

그저 잡초 대신 꽃이 피면 좋겠다는 마음 하나로

감나무 사이사이에 분홍낮달맞이와 꽃범의 꼬리를 심었다.

그 꽃들이 더 돋보이게 하고 싶어 잔디를 심었고,

그러는 사이 감나무는 하나둘 자취를 감추며

그 자리를 꽃과 나무가 채워갔다.


이제 과수원이던 1,500평의 땅은

꽃과 나무로 가득 찬 정원의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애초에 계획된 정원이 아니었기에

여기저기 울퉁불퉁하고 어설픈 구석이 많다.

그래서 문득, ‘이제는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할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에 조예가 깊은 두 분께 의견을 구했다.

사진을 전공하시고 전남 예쁜 정원 콘테스트에서 대상을 받은 ‘초원’의 안**교수님,

그리고 여러 곳에서 정원 교육을 하고 계신 ‘가산식물원’의 노**대표님.


정원을 함께 걸으며 하나하나 짚어주신 안 교수님은

젊은 층도 좋아할 깔끔하고 정형화된 정원을 제안하셨다.

“밤나무 그늘을 이용해 쉼터를 만들고, 계단 양쪽엔 단정한 나무를 심어 경계를 세우세요.

히버니카는 담장으로는 왜소하니 다른 수종으로 바꾸는 게 좋겠습니다.”


반면 노 대표님은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했다.

“정원은 자연스럽게, 돌 하나를 두더라도 툭 던져놓듯이 두세요.

꽃은 어울림이 중요합니다.

경사면을 살려 심으면 훨씬 자연스럽죠.”


두 분의 의견은 극명하게 달랐다.

정형화된 깔끔함이냐, 자연스러운 자유로움이냐.

그 두 길의 경계에서 한참을 고민했다.


앞으로 몇 분의 의견을 더 들어본 뒤

우리 정원을 새롭게 디자인해 볼 생각이다.

그렇더라도 결국 내 정원은 우리 부부의 감성대로 꾸며질 것이다.

변화는 성장을 불러오고, 성장은 또 다른 기쁨을 낳는다.

변화를 꿈꾸는 그 자체가 이미 정원의 일부이자, 내 삶의 일부다.


결국 정원은 ‘누가 디자인했느냐’보다

‘어떤 마음으로 얼마나 정성을 들였느냐’가 더 중요하다.

전문가의 조언은 참고하되, 마지막 방향은 정원주인 우리 부부의 손끝이 정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다시 호미를 든다.

정원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그 안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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