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에 설악산을 들여놓다.

이제 마당에도 산이 있다.

by 꼼지 나숙자

나는 산을 좋아한다.

산행길에 자리 잡은 마당바위에 걸터앉아 김밥 한 줄 먹는 일을 유독 좋아하는 사람이다.


마당이 넓은 시골집에 살게 된 뒤로는, 아니 정원생활자가 되고부터는 큰 바윗돌만 보면 마음이 먼저 움직인다.

“여보, 이 바윗돌 하나 업으시요. 집으로 데려갑시다.”

그러면 남편은 늘 이렇게 받는다.

“그래. 업혀주기만 하소. 업어다 줌세.”


산청 동의보감촌에서도 그랬고,

구례의 민간정원 반야원에서도,

화순 고인돌공원에서도

나는 어김없이 돌 앞에서 멈춰 섰다.

“저 돌 하나만이라도 우리 집 정원에 두고 싶다.”

그러니 내 안에는 늘 돌에 대한 갈망이 똬리를 틀고 있었던 셈이다.


정원이란 나무와 꽃, 그 곁에 잔디와 돌이 어우러져야 완성된다는 나만의 기준 때문인지,

아니면 돌을 자연 그 자체로 여겨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나는 돌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는 사실이다.


그런 내게 드디어 돌이 왔다.

아니, 돌이 아니라 바위가 왔다.

한두 개도 아닌 일곱 개씩이나.

내가 좋아하는 철분 섞인 붉은 돌은 아니고,

몸매가 유난히 곱상한 것도 아니지만

편히 앉아 김밥을 먹을 수 있고

눈높이를 올려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는 큰 바위들이 서너 곳에 자리를 잡았다.

나머지 바위들은 불끈한 몸매로 잔디 사이, 나무 틈새에서 서 있거나 누워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돌, 돌, 돌 노래를 부르지 않아도 되겠다.

하루 내내 거대한 포클레인이 조용하던 잔디 정원을 파헤치며 오갔고, 그 와중에 남편은 수시로 나를 불러

돌 놓을 위치와 방향을 물었다.

포클레인이 물고 있는 바위가 떨어질까 조마조마해

나는 간식만 챙겨주고 슬쩍 자리를 피했다.


팔 걷어붙이고 진두지휘하는 남편이 곁에 있어서

얼마나 든든하고 고마운지.

이런 고마움은 꼭 저축해둬야 한다.


해 지기 전 큰 작업은 마무리됐고, 다음 날 작은 포클레인으로 정리를 하면 된다고 했다.

비용은 만만치 않았지만 오랫동안 품어온 돌을 집으로 들이는 일이라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다음 날도 나는 얼굴 내밀지 않고 간식만 챙겼다.

삽을 들고 기사님을 거드는 남편의 뒷모습이 안쓰럽고, 또 고마웠다.

이 마음도 고이 모아두었다가 살면서 마음 상할 때 하나씩 꺼내 써야겠다.


모든 일이 끝난 뒤 돌이 놓인 자리를 중심으로 나는 혼자 자꾸만 걸었다.

흐뭇해서, 이유 없이 웃음이 났다.


인부들과 식사하고 돌아온 남편이 말했다.

“여보, 우리 한 바퀴 걸어보세.”

그날 우리는 아마 열 바퀴쯤 걸었을 것이다.

평소 말없는 남편이 “이 바위 주변엔 팜파스를 심고,

저 바위엔 백화등마삭을 올리고, 음, 저기엔 에버골드 사초를…”

하며 자꾸 입을 열었다.


몇 개의 바위에는 이름도 붙였다.

숨은 백록담, 설악산, 지리산, 울산바위, 그리고 북한산 숨은벽.

이름이 있으면 정이 더 간다.

따뜻한 봄이 오면 김밥 한 줄 싸 들고 바위를 선뜻 내준 부부를 초대해서 우리 집 마당의 설악산 대청봉에 앉아 먹어도 좋겠다.

어린 상추와 된장을 준비해 숨은벽의 햇살 한 줌과 함께 쌈을 싸 먹어도 좋겠다.


그때까지

이 바위들이 자연스럽고 예쁘게 자리 잡도록

주변을 가꾸는 일은 이제 온전히 내 몫이다.

마당에 설악산이 생겼으니,

올봄은 분명 소풍 하기 좋은 계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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