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턴가 ‘평화’라는 단어가 내 안으로 천천히 스며들기 시작했다.
일기를 쓰다 보면 어느새 평화를 찾고 있었고,
기도할 때도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말이 평화였다.
혼자 산길을 걸을 때도, 정원에서 잡초를 뽑을 때도
불현듯 마음 깊은 곳에서 ‘평화’라는 단어가 올라왔다.
마치 단백질이 부족하면 몸이 스스로 고기를 찾듯,
내 마음도 어쩌면 오래전부터 평화를 필요로 했던 걸까.
어릴 적엔 엄마의 치마폭이 세상의 전부라
입버릇처럼 ‘엄마’를 달고 살았다.
사춘기에는 이유 없이 친구가 그립고,
이성에 눈멀던 때에는 사랑이 고파 사랑이라는 단어만 좇았다.
아이들이 생긴 뒤로는
‘욕심’이라는 단어가 삶의 중심처럼 따라다녔다.
명예도, 돈도, 결국은 그 욕심의 그릇 안에서 움직이던 때였다.
그런 내가 칠십을 눈앞에 둔 지금
마침내 손에 가만히 남겨진 단어는
친구도, 사랑도, 욕심도 아닌 ‘평화’다.
참 오래 돌아왔구나 싶다.
깨진 항아리 뚜껑 위에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는 문구를 하얀 아크릴로 정성스레 적어 닭장을 줄이고 생긴 작은 빈자리 한켠에 놓았다.
마당 한쪽에는
‘평화를 빕니다’라는 글귀를 나무판에 적어 이젤에 기대 세워두었다.
그 글귀들이 눈에 밟힐 때마다
마음 한켠이 편안해진다.
평화라는 단어가 이렇게 내 주변을 차지하기 시작한 건 단순한 취향의 변화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오래전부터 그걸 간절히 원해온 까닭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정원 곳곳에 더 많은 평화를 앉힐 생각이다.
은근히 바라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대놓고, 노골적으로 드러낼 생각이다.
내 정원의 시그니처가 평화가 되도록.
아무리 움켜쥐어도 넘치지 않는 것,
아무리 나눠도 모자라지 않는 것,
평화는 그런 것이다.
그 평화가 오래오래
내 작은 집과 정원에 머물러주기를,
그리고 그 평화 속에서 나의 남은 날들도
부드럽게 흘러가기를 조용히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