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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Nov 20. 2020

어떤 여행이라도

코로나 시대에 여행을 이야기하는 방법

코로나 시대에 많은 여행 작가들이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물론 그 안에는 나도 포함되어 있다. 마음껏, 온 힘을 다해,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여행의 가치를 믿고 찬양하는 글을 써왔던 스스로를 의심하고, 회의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나를 뜨겁게 했던 것은 여행 자체에 대한 욕망이라기보다는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욕망에 더 가까웠던 것이 아닐까. 

이런 여행에세이 작가가 직접 출판사를 운영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여행에세이를 주로 출간하게 된다. 주변에 그 진가가 잘 안 알려진 멋진 여행 작가들이 많아서 그런 걸지도 모른다. 작가가 아닌, 편집자로서 여행에세이 책을 만들어 나가는 것은 역시 새로운 경험이다.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내는 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초대되어 여행하는 기분을 같이 느껴보고 공감하는 것 또한 굉장히 즐거운 경험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할까. 

11월이라는 여행 비수기에 연달아 여행에세이를 출간하게 되었다. 각자의 여행 스타일이 다르듯이, 그것을 풀어가는 방식도 참 다른데 그래서 더 재미있는 책들이다.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현재를 살아가는 여행자들은 이렇게 책으로, 글쓰기로 여행을 나누고 있다. 지금은 이것으로 된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꿈, 누군가에게는 현실



아주 오래 전부터 내게는 ‘노마드’적 삶에 대한 로망이 있는데, 딱 그 로망을 몸소 삶으로 실현해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옐로우덕’이라는 필명을 쓰고 있는 최승연 작가다. 뉴욕에서 공부한 글로벌한 무대디자이너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 네덜란드인이자 시인인 남편 카밀, 그런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태생부터가 노마드 베이비인 미루까지. 미루가 태어나던 해부터 일곱 살이 된 지금까지 이들은 전 세계를 여행하며 살고 있는데 그 안에서 피어난 에피소드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매일 직장과 집만을 오가며 효도와 육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전형적인 한국인들에게는 뭔가 비현실적이면서도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 아닌가. 

그런 환상적인 노마드 가족의 진짜 속내는 어떨까. 작년까지 약 3년 정도 한국에 정착해 사는 동안 최승연 작가는 진지하게 자신과 가족의 삶에 대해 고민했고 글로 풀어냈는데 그 결과물이 바로 이 책이다. 즉, 이 책은 겉으로 드러나는 자유로운 모습 이면의 진짜 고민과 실감나는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읽다보면 진한 부러움이 샘솟기도 하고,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은 일상 고민에 공감되기도 하며, 한 번 사는 인생 제대로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는 의욕에 가슴이 뜨거워지기도 한다. 







여행은 서로를 키우고 성장시킨다



방송작가 출신이자, 러시아 여행 전문 작가인 서현경 작가의 ‘여행육아에세이’다. 서작가에게도 딸이 하나 있는데, 여행으로 육아를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과정이 아이 연령대별로(6세부터 13세까지) 차례차례, 상세하게 묘사되어있다. 서작가의 여행은 특별하지 않다. 길게는 3주, 짧게는 며칠 정도의 여행들이 대부분이다. 일반 한국사람들이 며칠씩 휴가를 내어 짧게 다녀오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본 여행이나 동남아 여행도 있고, 러시아에 사는 친구 덕에 떠난 지인찬스 여행도 있다. 게다가 이야기의 초점은 여행 이야기라기보다 그 모든 여행을 함께 했던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 

아이는 단지 아이일 뿐 그 짧은 여행을 통해 단숨에 어른스럽게 성장할 리 만무하다. 흥미로운 것은 아이를 여행동료로 바라보는 엄마의 시선과 어조다. 그 솔직하고 재기발랄한 문체를 따라가다보면 마치 시트콤을 보는 것처럼 이들의 여행 속에 동화되어버리는데, 같이 깔깔거리며 동참하다가 문득 ‘다른 가족 얘기가 이렇게 재밌었나?’하는 생각에 깜짝 놀라게 된다. 

엄마 옷자락이라도 잡고 있지 않으면 금세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6살 어린 아이가 어느 새 사춘기 소녀로 성장하고, 그 속도에 걸맞게 함께 성장한 엄마의 모습은 또 감동적이기까지 하다. 

그러고 보면 지나간 수많은 여행들이, 그냥 스쳐지나갔던 일상의 순간들이, 늘 곁에 있었던 가족들과 보낸 시간들이 모두 지금의 나를 만들었구나 싶다. 분명 읽을 때는 웃기고 재미있었는데, 책을 덮고 나면 온 몸을 감싸안는 오묘한 감동에 찔끔 눈물이 나는 책. 서로를 키우고 성장시키는 관계야말로 진짜 가족의 순기능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어떤 여행은 숭고하다


메리 시콜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을 기억한다. 구텐베르크 프로젝트에서 원문 검색을 하다가 나도 모르게 이끌리는 느낌으로 ‘adventure’ 섹션을 클릭하게 됐고 <Wonderful Adventures of Mrs. Seacole In Many Lands>라는 직관적인 제목의 텍스트를 만나게 됐다. 시콜 부인의 훌륭한 모험? 150년 전, 기혼 여성이 모험을 감행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 작가인 필자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했다. 그러나 어설픈 영어실력으로 조금 읽어본 것만으로도 이 책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세기 크림전쟁에서 활약했던 백의의 천사 나이팅게일에 가려진 흑인 간호사가 있었다니. 인종차별이 심각했던 당시 영국 군부대에서 받아주지 않자 포기하지 않고 ‘종군상인’으로 전쟁터에 찾아가 가지고 있던 의료기술과 재산을 모두 바쳐 헌신하기까지 했다. 영국 내에서도 메리 시콜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니 우리나라에 그 이름조차 전혀 알려지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150년 전 유럽 땅에서 벌어진 이 이야기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겠지만 나는 이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이 책은 불평등하고 부조리한 세상의 핍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가치를 믿고 마음이 이끄는 곳을 향해 주저 없이 향했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한 여성의 놀라운 모험기다. 

이처럼 어떤 여행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150년 후에 어떻게 기억될지 몰라도, 일단 우리가 우리의 여행을 기록해야 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시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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