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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Oct 14. 2020

취미는 독서입니다만

나의 스펙터클한 독서생활




그동안 코로나를 구실로 등한시했던 독서모임을 다시 시작했다. 주로 두꺼운 인문 고전을 읽는 모임인데 요즘은 어빙 고프먼의 ‘수용소’를 읽고 있다. 사실 이 모임을 하는 이유는, 독서다운 독서를 하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기 때문이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언젠가부터 20분 이상 독서하는 일이 힘겨워졌다. 한 권을 끝까지 다 읽는 것도 어렵다. 분명 재미있다고 생각한 책인데도 읽다 말고 밀어둔 책이 침대맡, 화장대, 책장 구석 곳곳에 흩어져있다. 한 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읽으려면 이제는 강제적인 조치가 필요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이거 참, 글 쓰고 책 만드는 직업을 지닌 사람으로서  면목이 없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독서에 대한 집중력이 좀 떨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도 책을 가까이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 불과 지난 주만 해도 인터넷 서점에서 책을 몇 권 샀고(물론 다 읽진 못했다), 2.5단계가 끝난 후 동네 도서관이 재개관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가 출판에 관한 책을 몇 권 빌려왔다(두 권을 동시에 읽고 있다). 휴대폰과 아이패드에는 이북 앱이 여러 개 깔려 있다(잠자기 전이나 화장실에서 틈틈이 보고 있다). 특히 요즘 최고의 힐링타임은 모바일 게임을 하며 오디오북을 듣는 것이다. 평소 흥미 없던 주제라도 틀어놓다 보면 어느새 귀 기울이고 듣게 된다. 혼자 있을 땐 가끔 성우의 목소리를 듣다가 추임새도 넣고 대화처럼 주고받기도 한다. 적어놓고 보니 나의 독서생활이 참 다채로워졌다는 생각이 든다. 매체와 디바이스가 다양해진 만큼 독서의 양상도 여러 가지일 수밖에 없는데, 오히려 이런 변화를 당연하게 여겨야 맞는 게 아닌가?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독서는 취미일 뿐이라고. 낚시나 테니스, 등산처럼 시간이 생길 때마다 그냥 좋아서 하는 취미 말이다. 정부 차원에서 낚시나 테니스를 장려하진 않는다. 학교에서 ‘매주 등산을 어디로 얼마나 했는지 소감문을 적어오라’고 숙제를 내는 일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은 하고, 아닌 사람은 안 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책도 그런 기호 활동 중 하나일 뿐인데, 우리는 지나치게 책과 독서를 신성시하고 의무화해서 결과적으로는 책과 멀어져 버리는 결과를 낳고 만 것이다. 그 결과 ‘나의 취미는 독서입니다’라는 말은 ‘나는 노잼 인간입니다’라는 말과 거의 같은 의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물론 약간의 기술과 소질이 필요한 여타 취미활동과 달리, 독서는 ‘글을 깨친 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게 조금 다른 점이긴 하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의 간극이 얼마나 큰가. 나는 독서가 하고 싶은 일의 범주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려면 누구나, 아무나, 혹은 모든 사람이 독서를 해야 한다는 생각부터 고쳐먹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책을 읽을 필요는 없다. 그러나 독서는 시간과 돈과 공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꽤 대단한 취미이다.


일단 독서가들은 평균 이상의 수집 욕구를 지닌 사람들이다. 물리적으로 책을 구입해서 모아두는 것뿐만 아니라 독서 리스트를 쌓아가는 것도 포함된다. 그걸 모은다고 어디서 자격증을 내주는 것도 아니고, 내가 무슨 책 읽었는지 누가 궁금해한다고 은근한 승부욕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있다. 이타심과 공공의식을 갖춘 이들이기도 하다. 내가 재미있게 읽은 책이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알려주고 싶어 안달을 한다. 적잖이 돈도 든다. 책도 사고, 책을 보관할 책꽂이나 책장도 필요하고, 올바른 자세를 위해 거치대도 사야 하고, 좋아하는 캐릭터가 인쇄된 책갈피도;;;; 어디 그뿐인가! 요즘은 전자책의 시대니까 이북리더기도 필요하다. 구독권도 결제해야 한다. 가끔은 장소를 바꿔서 북카페도 가야 하고.....


이 얼마나 스펙터클한가! 누가 독서를 정적인 취미라 하였나. 누가 평가하는 것도, 검사하는 것도 아닌데, 책을 좀 덜 읽으면 어떻고, 10분씩 나눠 읽으면 어떤가. 사서 읽으면  어떻고 빌려 읽으면 또 어떤가 말이다. 독서는 좋아서 하면 그뿐이다. 글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빈약한 집중력에 독서를 게을리 한 자신을 부끄러워했는데, 갑자기 당당해져서 글을 끝맺으려니 웃음이 나온다. 아무튼 결론은 ‘책은 읽고 싶은 사람만 읽으면 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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