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아미 Nov 29. 2020

네가 거기 그대로 있어준다면

홍아미 작가가 참여한 여행 에세이 앤솔로지를 소개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여행을 말한다

떠나지 못하는 것도 섭섭합니다만 지난 몇 달간 ‘여행을 떠난다, 떠나고 싶다’는 말 자체가 금기시되어 참으로 답답했더랬습니다. 그런데 여기 용감한 여행 작가 10인이 같은 지면에 모였습니다. 그들은 저마다 다른 방식의 여행을 이야기하는데 여행을 여행이라 또박또박 부르는 것만큼은 한목소리입니다. 지금 이 시점에서 여행을 다시 논하는 게, 뭐 어떤가요. 여행은 현실을 도피하기 위한 장치도, 근거 없는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는 안일함도 아니잖아요. 여행은 그냥 여행일뿐이지요. 누군가에겐 여행이 삶의 크나큰 낙이자 목적일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떠나면 좋고 안 가도 그만인 기호나 취향의 대상일 뿐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오늘 머무는 시공간을 빛나게 해주는 어떤 드라마틱한 행위가 있다면 그것은 단연코 여행이 아닐까요. 크고 작게 당신의 인생에 관여해온 여행을 떠올리게 하는 각양각색 여행 이야기가 이 책에 담겼습니다.   


지나온 여행다가올 여행을 그려보다

《네가 거기 그대로 있어준다면_우리가 여행을 다시 부를 때》를 쓴 작가들은 때론 일이었을지라도 어쨌든 언제 어디로든 훌쩍 떠날 수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이 담담하게 전하는 에세이를 읽는 내내 세계 일주에 나선 여행자가 된 것만 같아요. 공항에서 비행기를 놓쳐 곤혹을 치르기도 하고, 낯선 여행지에서 처음 만난 외국인과 로맨틱한 감정을 나누기도 하고, LA에서 가장 핫하다는 미술관에 갔다가 페루 우로스섬 원주민의 공예품을 감상하기도 하고,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생경한 풍광에 압도되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10명의 작가들이 풀어낸 풍부한 경험을 통해 ‘참 따뜻했구나, 지난 날의 여행이. 더 애틋하겠다, 앞으로의 여행이.’ 하며 우리 모두의 여행을 그려보게 됩니다. 


떠나지 않는다는 것이곳에 머문다는 것의 의미를 재정립하다

여행 작가, 여행 전문 기자 등으로 살던 작가 10인. 그들의 자유 의지가 완전히 꺾여버린 요즘 날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깜짝 놀라게 됩니다. 발이 묶여 지내는 지금 이 순간을 과거 한없이 자유롭던 나날보다 훨씬 더 뜨겁게 사랑하며 살고 있는 작가들의 모습이 보이거든요. 중증의 여행 중독증을 앓던 이들이 다시 떠날 날만 기다리는 게 아니었다니, 각자의 자리에 가만히 머물면서도 현실을 이토록 애정하고 있었다니.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날들 속에서 아주 작고 귀엽고 애틋한 행복을 찾아 현실을 그러안는 방법을, 작가들은 찾은 듯합니다. 지나온 수많은 여행과, 다가올 알 수 없는 여행 덕분에 말이지요. 그러니까 우리는 어쩌면 여행이란 것에 나름의 빚을 지고 있는 셈 같네요. 당장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 추억할 수 있는 어떤 여행 덕분에 내일을 또 맞이할 수 있으니까 참 고마울 따름이에요. 아마도 우리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이곳에 머물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네가 거기 그대로 있어준다면_우리가 여행을 다시 부를 때》가 보여준 현실은 여행만큼 아름다우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우린 다시 여행하게 될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