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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Oct 26. 2021

유해한 타인의 취향에 대하여

이혜리의 The Favorite  1편

그림 _ 이혜리(pb)



 

     




건강하기 위해 시작한 운동, 
타인의 취향이 날 방해한다







살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코로나 시국에 배달음식 시켜먹는 일을 낙으로 삼은 기간이 적지 않기에 몸 여기저기 살이 붙은 것 같아 최근 몸무게를 재어 보니 6kg나 늘어나버렸다. 삽시간에 불어난 몸무게를 원망하는 듯 다리는 무릎이 아플 뿐만 아니라 앉아있거나 밤에 잘 때에 다리에 쥐가 나기도 하는 등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점점 생겨났다. 


다급한 마음에 머리 속에 떠오른 건 개인 트레이너의 관리를 받으면서 하는 운동, 소위 말하는 PT였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보아온 것에 비춰봤을 때 6kg를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감량하는 데에는 PT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결심이 서자 단김에 집 근처 헬스장에 가서 PT 회원권을 끊었고 트레이너 선생님의 지도 아래 운동과 식단조절을 시작했다. 선생님의 가르쳐 주는 대로만 하면 헬스 운동기구들을 금방 배울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50분은 초보에겐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었다. 혼자서 기구를 사용해보고, 궁금한 것들은 틈틈이 선생님에게 물어보거나 인터넷에 널려 있는 운동 콘텐츠를 찾아봐야했다.


막 입문한 운동도 재미있었지만, 무엇보다 각종 크리에이터들이 빚어내는 운동 콘텐츠 또한 생각보다 재미있었던 까닭에 이것저것 챙겨보게 되었다. 그러자 눈치 빠른 유튜브 알고리즘은 알아서 내가 좋아할 만한 콘텐츠들을 알아서 찾아 주었다. 처음엔 레그 프레스에서 시작하다가  여자가 하면 좋은 하체운동으로 넘어가더니, 운동 유튜버의 먹방, 생리중 다이어트, 생리전 다이어트, 생리후 다이어트 등등을 거쳐 돌핀팬츠 콘텐츠까지 내게 보여주었다.



21세기에 운동용 코르셋이라니

알고리즘의 오묘한 연쇄작용은 결국 엉덩이 골에 셔링이 적나라하게 잡혀있는 돌핀팬츠와 요즘 헬스장에서 유행하는 운동용 코르셋을 입은 여자들이 나오는 영상으로 나를 이끌었다.  코르셋은 19세기에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숨쉬기도 힘든 옷(?)을 입고 운동을 하는 여자들이 내 눈앞에 몰려들었을 때의 당황스러움은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며칠 뒤, 내가 다니는 헬스장에도 코르셋을 한 여자들이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들은 과연 불편함 없이 운동하고 있을까? ‘예쁘게 자라라’는 소리를 들으며 ‘예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교육을 받은 덕분에 기꺼이 불편함을 참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을 하지 않는다거나 편한 옷을 입을라치면 주변에서 어떻게든 한소리 듣는 일은 일상다반사라 건강을 위한 게 우선이지만 나를 가꾸는 일이기도 한 운동이라고 예외일 리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자들의 개인적인 편의와 욕망은 타인의 취향보다 항상 뒷전이었고, 여자들이 약간의 불편을 감수하면 세상은 평화(?)롭게 굴러 갔다. 몸을 놀리는데 기능적 측면이 있을까 의심되는 운동용 코르셋 같은 난처한 일은 으레 그랬듯이 찰나의 반짝 유행으로 그쳤으면 좋겠지만, 문제는 우리가 양보할 수 없을 만큼 원하는 것이 간절해지거나 혹은 기존의 불편함을 바꾸고자 할 때 나타나기 시작한다. 



때 아닌 복장 논란왜 여성에게만?

이전부터 그랬지만 최근에 도쿄 올림픽이 개최하면서 더욱 논의가 활발해진 여성 스포츠 선수들의 복장 논란이 좋은 예시이다. 이번 올림픽에서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 팀은 경기가 치루어지기 전에 기존 비키니 유니폼의 불편함을 토로하며 운영위원회에 반바지 착용도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다. 보수적인 것으로 유명한 테니스계에서는 무조건 스커트를 입어야하는 규정으로 인해 경기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윔블던은 여성 선수의 속옷 색깔도 흰색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각 스포츠 협회들은 선수들의 요구를 빈약한 이유를 들며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입는 사람이 불편해서 경기를 할 수 없다는데, 입지 않는 사람들이 반대하는 이상한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노르웨이 여자 비치핸드볼 팀은 비키니 유니폼이 아닌 반바지를 입고 올림픽에 출전했다가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벌금을 내야 했고, 출산 후 폐색전을 앓고 있었던 여성 테니스 선수는 혈액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보디슈트를 입고 경기를 하다가 이후 경기에서 보디슈트 의상을 제지당했다. 

메달을 따는데 남의 눈에 예뻐 보이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 그럼에도 타인의 취향은 이렇게 사안의 대소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알 듯 모를 듯, 때로는 노골적으로 통제한다. 



타인의 취향에 휘둘리지 않는 법

이런 문제는 비단 여성 프로 스포츠 선수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닐 것이다. 지금은 괜찮을지 모르지만, 우리 인생에도 금메달만큼 중요한 목표가 생겼을 때, 타인의 취향이 난입해서 우리를 방해할 가능성이 언제든지 있다. 

이때를 대비해서라도 우리는 타인의 취향 바깥으로 자주 여행하며 그 경계선을 흐리게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 미리 준비해두지 않으면 언젠간 우리도 세상이 주는 경고 카드를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타인의 취향을 의식하지 않고 행동하는 여자들이 많아지기를. 그렇게 되면, 다음 올림픽을 준비하는 여자 선수들은 자유로운 복장을 입고 메달에만 집중할 수 있을 것이다. 

부디 오늘 헬스장에서는 편한 운동복을 입고 원하는 중량을 번쩍번쩍 드는 여자들을 봤으면 좋겠다. 



글_이혜리(PB)

글 쓰는 일러스트레이터. <서른다섯, 직업을 바꿨습니다>라는 책을 냈습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기 위해 늦은 나이에 직업을 바꿨고, 현재에도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것으로만 삶을 채우기 위해 때로는 용기 내고, 때로는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 이 글은 2W매거진 15호 <지구와 우리 사이>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혜리 작가의 취향에 관한 그림에세이 'the Favorite'은 총 7회에 걸쳐 2W매거진에 연재됩니다:)












MINI interview 이혜리 작가


"좋아하는 것으로만 삶을 채우고 싶어요"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서른다섯, 직업을 바꿨습니다.’라는 책을 낸, 글 쓰는 일러스트레이터 이혜리입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살기 위해 늦은 나이에 직업을 바꿨고, 현재에도 되도록이면 좋아하는 것으로만 삶을 채우기 위해 때로는 용기 내고, 때로는 노력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pb_illust/


Q. 취향에 대한 글을 써봐야지, 생각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그림에는 그리는 사람의 취향과 생각이 반드시 들어가게 되기 때문에 평소에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더 많이 찾아 두려고 노력했어요. 그런데, 데이터가 쌓일수록 또 다른 이점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내 취향에 집중할수록 유행이나 남의 소리에 휘둘리는 일이 없어서 감정 소모가 줄어들고, 삶의 질이 올라가는 것을 경험했어요. 그래서 취향에 대해 글로 남겨두면, 저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첫 그림 작품에 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기업의 마케팅이나 타인의 입김, 컴퓨터 알고리즘이 만든 가짜 취향을 ‘유리’로 표현해봤어요. 사람들은 유리의 존재를 자주 인식하지 못합니다. 유리 창문을 통해 바깥을 보지만, 유리 자체를 보지 않잖아요. 그림 속의 석고상도 반대편을 보느라 정작 자신이 유리상자 속에 갇혀있는 것도, 유리상자 위에 체스 킹의 존재도 모르고 있는 것처럼 그렸습니다. 요즘 우리가 사고, 먹고, 입는 것들은 정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어요. 


Q.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

미운 것들이 많아지는 세상입니다. 어떤 단어 뒤에 혐오를 붙이는 게 어색하지 않은 시대라 좋아하는 감정이 얼마나 귀한지 생각해 보게 되네요. 제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이 좋아하는 것을 하나라도 더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행복함을 더 자주 느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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