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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Nov 18. 2021

안녕하신가요, 순분 씨

2W매거진 17호 <아픔의 기억> 이달의 에세이 선정작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17호 <아픔의 기억>편에 전명원 님의 '안녕하신가요, 순분씨'가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우리는 죽음이 없는 듯,
나에겐 오지 않을 듯 산다.
언젠가 나도 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어느 쪽이 나은 삶인지 알 수는 없다.





부모님이 연달아 돌아가신 것은 봄이었다. 오월에 두 번의 장례를 치렀다. 그리고 이 나이가 되도록 가본 일이 거의 없던 화장장을, 그해엔 다섯 번을 갔다. 사람이 연기로 흩어지는 것을 보았다. 죽음이 늘 머리맡에 앉아있는 것만 같던 한 해였다.


나의 서류를 보면, 출생신고자엔 아빠의 이름이 있다. 젊던 아빠가 동사무소에 앉아, 서류에 내 이름 석 자를 쓰며 출생신고를 하는 장면을 가끔 상상했다. 그 둘째 딸은 오래전 아빠가 그랬듯 동사무소에 갔다. 그리고 아빠, 엄마의 사망신고자란에 내 이름을 적어 넣었다. 

사람이 죽고 나면 그의 모든 서류는 닫힌다. 제적등본, 혹은 폐쇄 가족관계 증명서라는 이름으로 그의 모든 생몰 기록이 담긴 명부는 산 자의 것과 분리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세상에서 사라지듯, 서류에서도 그렇게 사라진다. 사망신고를 마치고 건물 밖으로 나서보니, 거리엔 이미 봄이 사라지고 없었다. 여름이 시작되는 6월이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봄을 지나, 작은 아버지를 시작으로 세 번의 장례에 더 참석했다. 화장장에도 갔다. 모두 조의금만 내고 돌아올 사이가 아니었다. 그리고 가을이 끝나고 겨울이 다가올 무렵, 나는 응급실을 거쳐 병원에 입원했다. 담석증이라고 했다. 의사는 1에서 10까지 어느만큼 의 고통이냐 물었는데 무조건 10이라고 대답했다. 허리를 펼 수 없었고, 숨이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팠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동안 통증이 가라앉았다. 뒤틀리는 듯한 통증이 지나가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멀쩡해지는 것이 담석증이었다. 아픈 사람은 끝도 없이 응급실로 몰려들었다. 소리 지르는 사람도 있었고, 그럴 기운마저 없는 사람도 있었다. 

연초에 엄마를 데리고 왔던 응급실에 내가 환자로 누워있는 기분은 이상했다. 엄마를 입원시키던 그날, 불안과 고요가 혼재된 응급실의 분위기를 생각했다. 나지 않는 병실을 기다리며 서성이던 그날은 내가 태어난 날이었다. 생일 하루를 꼬박 응급실 복도에서 보내고야 아픈 엄마를 데리고 병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


나는 응급실에 누워서 천정을 멀뚱멀뚱 보며 엄마를 입원시키던 그날을 생각했다. 결국 그때의 엄마처럼 나도 입원을 했고, 검사를 하며 며칠간 병원생활을 했다. 옆 침상엔 동년배의 여인이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순분 씨였다. 나는 아직도 가끔 그녀, 순분 씨를 생각할 때가 있다. 그녀는 내게 어디가 아프냐고 물었다. 담석증이어서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니 그녀는 쓸쓸하게 웃었다. “담석증으로 수술하는 건, 축복이에요.”

그녀는 췌장암이었다. 공무원이었던 남편이 휴직을 하고 간호하고 있었는데 닫힌 커튼 너머로 가끔 그들의 대화를 듣곤 했다. 고3인 막내를 걱정했고, 대학에 다니는 큰아이의 취직을 걱정했다. 식사 때엔 남편 몰래 자꾸 밥을 버렸다. 거동이 힘든 그녀 대신에 내가 식판을 내어 놓을 때면 미안해하며 말했다. “밥 몰래 버린 거 남편에게는 비밀이에요.”


나는 그녀의 남편이 와 있을 때엔 종종 복도에 나와 걸었다. "코드블루! 코드블루!" 방송이 나왔고 옆 병실로 의사와 간호사들이 몰려갔다. 옆 병실에는 할아버지 환자가 계셨는데 그날 저녁, 복도에서 사람들이 울었다. 열린 병실 문으로 복도에서 자식들을 다독이는 할머니의 차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는 게 순리니 너무 애달파하지 마라.” 나는 옆 침상의 순분 씨가 걱정되어 소리 나지 않게 조용히 병실 문을 닫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복도로 나서며 옆 병실을 보았다. 시트가 벗겨진 빈 침대만이 남은 채 방은 싹 치워져 있었다. 흔적도 없이, 그렇게 사람은 떠났다. 세상에서도 곧 그렇게 될 것이었다. 지난밤 복도에서 들려오던 할머니의 말씀을 다시 떠올렸다. 나이가 들면 죽음 앞에서 그처럼 의연해질 수 있을까. 나는 아직도 자신이 없다.


며칠간의 입원 생활을 끝내고 퇴원하는 날 오전이었다. 의사가 옆 침상의 순분 씨와 남편에게 이야기를 하고 돌아갔다. 힘들지만 분명하게 의사는 더 이상의 처치가 무의미함을 말하고 있었다. 의사가 나간 후 순분 씨와 남편이 있는 커튼 너머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이미 환자복을 벗고, 몇 개 되지 않는 짐을 싸고 링거를 빼기만 기다리고  있던 나는 침대 끝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병실에  내려앉던 그 오전의 고요가 천근의 무게였다. 숨소리를 내는 것마저 조심스러웠다.

“나야 그저 너무 고생하지 않고 갔으면 하는 거지, 뭐.” 한참 후에 갈라진 목소리로 순분 씨가 말했고, 두 부부가 함께 우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조용히 나와서 복도에 선 채로 간호사에게 약을 받고, 링거 바늘을 뽑았다. 그 부부에게 차마 인사를 하고 나올 수가 없었다. 


4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도 가끔 순분 씨를 떠올린다. 기적이라는 것이 있어서 순분 씨는 아직도 같은 하늘 아래에서 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홈쇼핑 버튼을 나도 모르게 자꾸 누르고 후회해요. 저 미쳤나 봐요.”여전히 누군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며 해맑게 웃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쩌면 그녀는 지금쯤, 이곳이 아닌 또 다른 곳의 그녀가 되었을 수도 있다.

그녀 말대로 나는  ‘축복에 가까운’ 담석증으로 며칠 입원을 하고, 수술을 했다. 삶과 죽음이 혼재된 곳이 병원뿐일 리는 없다. 하지만 그처럼 쉽게 죽음을 접할 수 있는 곳도 흔치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죽음이 없는 듯, 나에겐 오지 않을 듯 산다. 언젠가 나도 죽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사는 것과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것, 어느 쪽이 나은 삶인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나는 시간에 나태해질 때, 인생에 무기력해질 때, 혹은 대책 없이 부풀어 오를 때면 순분 씨를 생각한다. 인생이 안녕하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잊는다. 그러니 종종 오늘의 안녕에 감사하며, 그녀에게 인사한다. 

“...안녕하신가요, 순분 씨!”



글_ 전명원

책 읽고, 여행하고, 글을 씁니다. 은퇴 이후의 삶이 나름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Mini Interview] 전명원 작가


"매달 결승선 테잎을 끊는 기쁨, 그리고 다시 출발선에 서는 의욕"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랫동안 학원을 운영하며 수학을 가르쳤어요. 이제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겠다'라고 외치며 '출근하지 않는 삶'을 시작했어요. 일말의 불안감이 없다면 그것도 거짓이겠지만, 나름 책을 읽고,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지금이 적성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바빠서'라는 핑계로 오랫동안 글쓰기를 접어두었다가 다시 시작하고 나서, 우연한 검색으로 2w매거진을 알게 되었어요.  무언가를 마음속에 접어두었다가 다시 꺼낸 사람에게는 정말 힘이 되고, 자극이 되는 일이었지요.  매달 결승선 테잎을 끊는 기쁨, 그리고 다시 출발선에 서는 의욕, 이런 것들이었어요.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행복할 때는 역시 제 글이 활자, 혹은 화면에 보여질 때에요. 뿌듯하고, 역시 더 열심히 해야겠어! 라는 마음을 먹게 되는 순간이죠. 하지만 괴로울때 역시 그 순간이기도 합니다. 민망하고, 낯간지럽기도 해서 누가 볼까 휙, 넘겨버리기도 해요.  특히 이미 나와버린 글에서 이런저런 부족한 점을 스스로 느꼈을 때엔 그 마음이 더 불편합니다. 좀더 신중해져야겠구나 생각하죠.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글을 쓴다는 것은 내 민낯을 드러내는 일 같습니다.  내 전부를 꺼내어 놓을 것은 아니지만 , 적어도 꺼내놓은 것은 모두 솔직한 진심이려고 노력해요. 그러니 앞으로도 솔직한, 진심인 마음을 드러내는 글을 쓰고 싶어요.




필진들의 추천사

 

죽음과 삶에 대한 작가님의 경험과 생각이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겨 있었다. 군더더기 하나 없이 간결하게 쓰여 있어서, 글에 등장하는 내용들을 이미 여러 번 차근차근 돌아보았던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앞으로도 생각날 때마다 열어보고 싶은 귀한 글이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무심코 건네는 인사말들. 그 흔하고 가벼운 인사가 누군가에겐 묵직하게 다가올 수도 있으리란 걸 나도 늘 잊는다. 안녕의 인사를 건넬 때마다 감사의 마음을 더해 조금 더 묵직하게, 나와 상대가 누리는 행복을 다시 한번 떠올릴 수 있기를.


순분씨, 이 글을 읽으며 나지막하게 이름을 불러봤다.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 중 마지막 인사를 하지 못하고 헤어진 이들에 대해 생각했다. 그렇게 스쳐가는 많은 사람들 중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은 순분씨는 어디 계시더라도 참 행복하시겠다. '인생이 안녕하다는 것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이다' 잊지 말자. 우리의 안녕한 하루하루는 그러니 매일 꽤 근사한 날이라는걸.


누군가 아픔에 공감하며 오래된 기억의 조각을 끄집어냈다. 가슴에 담고 있던 조각의 순간이 활자와 함께 그림처럼 펼쳐질 때, ‘맞어, 나도 그랬었지!’ 하고 심장이 ‘쿵’하고 내려앉는 기분. 전명원 님의 ‘안녕하신가요, 순분씨’가 그랬다. 나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고, 글을 읽는 내내 그 순간이 떠올라서 몸이 바르르 떨렸다.






위 작품은 2W매거진 17호 <아픔의 기억>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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