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W매거진 18호 <올해의 인물> 이달의 에세이 선정작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18호 <올해의 인물> 편에 글에다가 작가의 '특별한 보통의 우리에게'가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특별한 보통의 우리에게
INTERVIEW 조산타
본격적인 연말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날이다. 거리와 상점엔 크리스마스트리와 반짝이는 장식들이 부쩍 눈에 띄고, 캐럴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작년과 마찬가지로 우리 모두가 코로나19로 지친 한 해였지만, 연말과 크리스마스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담긴 카드 한 장, 작은 선물 하나로 따뜻한 마음을 전하며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건 어떨까. 혹시 크리스마스 선물로 무엇을 받고 싶은지, 어떤 선물을 줄지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지는 않은가. 필자도 매년, 이 맘 때면 골똘히 생각하는 문제인데, 이 일에 전문가적인 의견을 함께 들어보면 어떨까 하여, 2W매거진 12월 특집호를 맞아 연말이면 늘 생각나는 그분을 어렵사리 모셨다.
Q.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A. 안녕하세요. 세계 산타클로스협회(이하 협회) 대한민국 지부 회원 조산타입니다.
Q. 저와 인터뷰를 결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으셨던 거로 알고 있는데요. 그 이유를 좀 여쭤도 될까요?
A. 아시다시피 사실 저희 조직은 비밀리에 운영되는 곳입니다. 아마 공식적인 접근 자체가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어찌 보면 실체가 없다고 느끼실 수도 있죠. 하지만 우리가 어릴 때 어렴풋이 산타라는 존재를 믿었듯 저희 산타클로스들은 엄연히 실제로 존재한답니다. 아마 그래서 저에게도 이렇게 비공식적인 루트로 인터뷰를 요청하셨을 테고요. 상황이 그렇다 보니 제가 이렇게 직접 산타의 신분을 드러내고 인터뷰를 한다는 것 자체가 협회 내에서 괜한 분란을 일으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었습니다. 제가 협회 회원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산타클로스 전체를 대표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인터뷰 전에도 미리 말씀드렸지만, 제 발언이 산타클로스라는 이미지의 상징으로 포장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잘 모르시겠지만, 협회 회원 수가 어마어마하거든요. 저도 사실 그 수가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는 잘 모릅니다. 산타클로스가 그렇게 많나 의아하실 수도 있는데, 전 세계 어린이들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는다고 한번 생각해보세요. 혼자서 어떻게 그걸 다 나눠줍니까. 말도 안 되는 일이죠. 그러니 우리 협회가 이렇게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우리 회원들이 세계 곳곳에서 개별적으로 각자 임무들을 암암리에 수행하고 있죠. 이제 12월이니까 다들 활동을 시작하고 있겠군요.
Q. 저는 사실 조산타 님을 뵙고 좀 놀랐습니다. 빨간 털옷과 털모자, 흰 수염을 가진 할아버지가 루돌프를 데리고 썰매 타고 오실 거로 생각했는데요. 30대 여성분이 나오셔서 의외였습니다. 빨간 옷도 입지 않으셨고요.
A. 어허, 거참. 많이들 산타클로스의 이미지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죠. 그건 아주 오래전부터 고수하는 협회 마케팅의 일환입니다만, 우리 협회도 이제 이미지 쇄신을 좀 해야 해요. 흰 수염 달고 촌스러운 빨간 내복 같은 옷을 입은 백인 할아버지 산타클로스. 이 고정된 이미지는 요즘 활동하는 산타들이랑 아주 달라요. 예전엔 어땠는지 잘 모르겠지만, 실제로 협회에서 현업으로 활동하는 회원 중에 그렇게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들은 많지 않습니다. 따지고 보면 남성들보다 여성들이 압도적으로 많고요, 전 세계에서 산타클로스가 활동하는 만큼 백인 인종이 대표한다고 할 수도 없죠. 그래서 제가 이 얘긴 꼭 해야겠다 싶어서, 인터뷰하기로 마음먹은 겁니다. 산타클로스라는 게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한데, 그런 신기루 같은 포지션은 그런대로 잘 유지해오고 있지만, 산타 ‘할아버지’라는 이미지는 좀 바뀔 필요가 있지 않나 싶거든요. 그리고 루돌프요? 요즘 같은 세상에 사슴 끌고 썰매 타면 잡혀갑니다. 루돌프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이건 동물 학대나 마찬가지잖아요. 전기차도 나오는 마당에 루돌프라니 말도 안 되죠. 이런 이미지는 21세기에 활동하는 현업 산타로서 좀 너무 구시대적이다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협회 뜻이 아니라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Q. 산타로 활동하시는 분 중에 할아버지들은 별로 없으시고, 오히려 여성분들이 훨씬 많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렇다면 조산타 님은 산타클로스 활동을 언제부터 하셨나요?
A. 음 가만 보자, 제가 처음으로 담당한 어린이가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기 시작한 게 4살 때부터니까 2017년 겨울부터 활동했네요. 올해로 5년 차네요.
Q. 담당하는 어린이라 하면 산타클로스마다 고정적으로 전담하는 어린이 수가 정해져 있나요?
A. 네. 협회에 일단 가입하게 되면 요즘은 보통 한 명이나 두 명 많으면 세 명, 네 명부터 시작합니다. 아예 처음부터 다수의 어린이 선물을 전담하는 산타도 있기는 한데요. 그런 산타들은 일회성이나 단기로 뛰시는 분들이 많아요. 기업체나 복지재단, 종교단체 혹은 봉사단체 등등을 통해서 하시는 분들이고요. 대부분은 소수의 어린이를 장기로 전담하는 산타로 활동하게 됩니다. 저는 두 명의 어린이 크리스마스 선물을 전담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활동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 정체가 밝혀지는 날까지 하게 되겠죠?
최대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Q. 산타클로스 일을 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는요? 언제까지 산타클로스로 활동하실지 앞으로의 계획도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A. 특별히 계기랄 것은 없었어요. 2014년 여름에 처음 엄마가 되었는데, 아이가 네 살 정도 되니 산타클로스의 개념을 인지하더라고요. 그전에는 산타가 뭔지도 모르는 것 같아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따로 해줬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나요. 제가 두 아이 임신과 출산을 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2017년에 태어난 둘째 녀석은 첫째가 산타클로스에게 선물을 받으니 덩달아 같이 받게 되었고요. 그때부터 산타클로스 일을 매년 해오고 있습니다. 보통은 협회에 가입하시는 분들이 저처럼 아이를 키우는 양육자들이 대부분이죠.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시는데 그렇게 많지는 않고요, 아버지들도 제법 계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는 일이 생각보다 기쁘고 행복하더라고요.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가 우리 집에 다녀갈까 설레며 잠드는 아이들 얼굴을 보는 것도 흐뭇하고요. 다음 날 아침에 선물을 발견하고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보면 아무리 근심 걱정에 찌든 한 해를 보냈더라도, 아무렴 이게 진짜 행복이지, 행복이 뭐 별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뭐, 제가 좋아서 하는 거나 마찬가지죠. 언제까지 활동할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제 정체가 밝혀지는 날까지 하게 되겠죠? 최대한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이 매거진은 어린이 독자들이 읽지 않는다고 짐작하고 하는 인터뷰니까요. 갑자기 제 정체가 제 담당 어린이들한테 밝혀지지는 않겠죠?
Q. 그럼요. 저희 매거진은 어린이들이 주 독자층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이들이 산타클로스가 엄마나 아빠, 할머니나 할아버지, 이모, 삼촌 등등 굉장히 가까이에 있는 어른이었단 걸 알면 충격이 크긴 할 것 같습니다. 그럼 다음 질문드리겠습니다. 산타클로스들은 연말에만 활동하시는 거로 아는데, 산타클로스들은 나머지 계절은 어떻게 보내시는지 여쭙겠습니다.
A. 저희 산타들이 연말에만 활동하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나머지 계절에 이래저래 놀고먹는 건 아닙니다. 대부분 산타가 산타 일만 가지고 먹고살긴 힘드니까요. 대부분 겸업을 하죠. 저 같은 경우는 주로 아이 양육과 가사 노동 등 돌봄 노동을 전담하고 있고요, 틈틈이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며 보통 사람으로 살다가 연말이 되면 산타 활동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냥 우리 주변에서 보는 어른들의 모습과 별반 다를 바가 없죠. 대신 담당하는 아이들이 평소에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선물을 받으면 좋을지 늘 관심을 가지죠. 어린이들의 취향과 관심사를 꿰고 있어야 연말에 우왕좌왕하는 일이 없거든요.
Q. 조산타 님은 올해 담당하시는 어린이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셨나요?
A. 아, 그게 참. 아직 준비 못 했습니다. 제가 맡은 어린이 중 한 명은 시즌이 지난 로봇을 선물로 원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부품 수급이 어려워서 그런지 단종이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중고로 알아보는 중입니다. 아직 시간이 조금 남았으니까요. 혹시 못 구한다면 어쩔 수 없이 다른 선물을 준비해야겠지만, 끝까지 노력해보긴 해야죠.
Q. 생각보다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준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산타클로스의 사명감으로 활동하는 모습 멋지십니다. 혹시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A. 작년에 이어서 올 한해도 코로나19로 모두 힘들었을 거로 생각합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고, 또 이렇게 어린이들을 위해 활동하는 세상의 모든 산타를 응원합니다. 올해 크리스마스엔 아이들만의 산타가 아닌, 나를 위한 산타가 되어보시면 어떨까요. 한 해 동안 열심히 살아온 보통의 우리가 모두 특별하니까요. ‘올해의 인물’은 제가 아니라 당신과 나, 우리 모두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흰 수염을 달고 빨간 털옷과 빨간 모자를 쓰고, “허허허, 메리 크리스마스!”하고 외치는 백인 산타 할아버지의 실체는 이미지에 불과하다 말하는 그의 말처럼, 진짜 산타는 우리 주변에 늘 함께 있다고 한다. 세상의 진짜는 특별하고 대단한 한 사람이 아니라, 각자의 삶을 옹골차게 꾸려가며 사는 보통의 우리들이 아닐까. 우리 모두 애쓰며 열심히 살고 있지 않은가. 당신이라고 ‘올해의 인물’이 아닐 이유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산타클로스들처럼 어쩌면 보통의 우리들 덕분에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자, 그렇다면 우리 모두 올해는 자신에게 산타클로스가 되어보자.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가? 작고 소박한 것이라도 좋다! 기왕이면 좋은 거로 선물하자! 메리 크리스마스!
글_ 글에다가
네, 제가 조산타입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블로그 http://blog.naver.com/intowriting
[Mini Interview] 글에다가
"나를 잘 모르고 살았는데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해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글에다가 입니다. 새해에 9살 6살이 되는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전업주부예요. 두 아이 엄마가 되고 나서 글을 쓰기 시작했고요, 앞으로도 계속 글 쓰며 살고 싶은 아줌마랍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운명적 만남이라고 해야겠습니다 하하하. 글 쓰며 살고 싶다는 마음에 확신이 생기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글에다가'라는 닉네임을 만든 거였어요. 그러고 나선 다음엔 뭘 해야 하지? 하고 있는데, 우연히 2W매거진 필진 모집 글을 보게 되었어요. 이것이 운명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아직까지 쓰는 일이 괴롭다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쓸 때는 힘들고 괴로운 글이라도 쓰고 나면 후련함이 커서 그런지, 글 쓰는 일이 다행히 아직은 즐겁습니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잘 써야 한다는 생각이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내 안의 모호한 생각과 감정이 글로 표현되어 시각화되는 과정에서 기쁨을 느껴요. 여태 나를 잘 모르고 살았는데, 내가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구나, 이런 감정을 느끼는구나 하고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여태 써온 글들이 지극히 '나' 중심의 글이란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물론 내가 쓰는 글이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이제는 조금 시야를 확장해 보고 싶어요. '나'도 중요하지만 '타인'과 '주변'에도 깊이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글을 써보고 싶어요. 그리고 언제까지나 재밌게 즐겁게 쓰고 싶습니다.
필진들의 추천사
얼마 전부터 아이들은 산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줄줄 말하기 시작했다. 네 살 둘째는 "엄마, 나 착한 일 많이 했어. 그치?" 하며 여러 번 확인받았다. 열 살 큰 아이는 산타가 있나 없나, 긴가민가 하는 중인 것 같다. 그럼에도 매년 그랬든 올해도 선물을 받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다. '아이들만의 산타가 아닌, 나를 위한 산타가 되기' 나 역시 곧 조산타로 변신해야 하지만, 이번 크리스마스엔 나를 위한 산타도 꼭 되어 주리라.
역시 이번에도 나를 가장 웃음짓게 한 글은 '글에다가'님의 재치넘치는 인터뷰였다. 매년 12월이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을 위해 자동으로 짠, 산타로 분하는 엄마인 자기자신을 인터뷰했다. 어린이의 소원을 들어주는 상상의 산타가 이렇게 현실에 존재한다는 게 얼마나 마음 따뜻한 일인지!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서로가 산타가 되어줄 수도 있겠다. 그렇게 되면 이 추운 겨울도 꽤 낭만적이고 아름다울 수 있겠지!
글에다가의 글은 유쾌하면서도 한편으로 서글펐지만, 올 한해 잘 살아온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따뜻한 선물 같다. “당신이라고 ‘올해의 인물’이 아닐 이유가 없다. 세계 곳곳에서 활동하는 산타클로스들처럼 어쩌면 보통의 우리들 덕분에 이 세상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위 작품은 2W매거진 18호 <올해의 인물>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2W매거진은 새롭게 개편한 모습으로 내년에도 매달 찾아뵐게요!
현재 새로운 아미가클럽 멤버들을 모집하고 있어요! 매달 2W매거진 기획회의에 참여할 수 있고 글 쓰는 크리에이터로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기회. 2022년,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