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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Jan 20. 2022

인간들에게 부침_조하랑

2W매거진 19호 <올해의 운세> 이달의 에세이 선정작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19호 <올해의 운세>  편에 조하랑 작가의 '인간들에게 부침'이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를 그냥 날씨처럼 생각해줬으면 해요.
비가 오면 누군가는 반갑고,
누군가는 실망하겠지만
그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잖아요




저는 운세입니다. 실체는 없지만, 정의 내릴 순 있어요. 그렇지만 단 한마디로 표현하기엔 좀 서운합니다. 저를 설명할 방법은 아주 많거든요. 가장 인기가 많은 건 신년운세, 사주팔자, 궁합 같은 것들입니다. 살면서 저를 접하지 않은 인간은 없을 거예요. 하다못해 신문 한 귀퉁이에 있는 오늘의 운세라도 본 적이 있을 테니까요.

저는 인간이 만들어 낸 존재이므로 어느 정도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내놓을 수 있어요. 아니, 어떤 말을 듣고 싶어 하는지 안다고 해야 정확하겠네요.

인간은 참 이상해요. 본인을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일 텐데, 남의 입을 통해 자기 얘기를 듣고 싶어 하니까요. 이런 말 저런 말, 이랬구나 저랬구나, 말해주면 그걸 듣고 깔깔 웃는 인간도 있고, 엉엉 우는 인간도 있어요.

인간이 저를 만들어 낸 가장 큰 이유는 미래를 알기 위해서예요. 왜 그런지 몰라도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다르게 현재를 살지 못합니다. 해줄 수 있는 말은 광범위하고 두리뭉실한 안개 같은 것뿐이지만, 인간들은 그 애매함을 듣기 위해 날 찾습니다. 어떤 인간은 그 속에서 보석을 찾지만, 또 어떤 인간은 어둠밖에 보지 못해요. 그런 걸 보면 인간이 각기 다른 운명을 사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집니다.


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아주 다양해요. 일생 저를 찾지 않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하루가 멀다고 제 의견을 물으러 오기도 하고, 어떤 일을 계기로 절 영영 찾지 않거나, 반대로 갑작스레 의존하기도 합니다. 성당이나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멀리하는 인간도 있지만, 절 만난 직후에 성당에 가서 회개하는 인간도 있어요. 자주 찾아오던 한 아가씨는 제가 계속 결혼할 시기를 못 맞추니 더는 오지 않고, 어떤 엄마는 아픈 아이를 낫게 하고 싶어 저의 모든 걸 찾아다녀요.

이렇게 찬 바람 불고 한 해가 한 바퀴 돌 때쯤엔 가장 바쁜 시기가 옵니다. 저는 한 나라의 국운이 되기도 하고, 갓 태어나는 아기의 첫 사주가 되기도 해요. 자꾸 나라의 새 주인이 누구인지 묻는 인간도 있고, 이 역병이 언제 끝날지 그 시기를 맞춰내라 닦달하는 인간도 있어요. 그런 다양한 군상 중에서 제가 오래 머물고 싶은 이들은 따로 있어요. 오랫동안 준비해 온 아들의 취업 일을 기다리는 엄마 옆에, 빚을 내어 얻은 소중한 가게의 오픈일이 궁금한 사장님 옆에, 미루고 미뤄서 새해엔 식을 올리고 싶은 목각인형 같은 부부의 옆에….


전 인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아니에요. 대단치 않지만, 그렇다고 하찮지도 않아요. 저를 그냥 날씨처럼 생각해줬으면 해요. 비가 오면 누군가는 반갑고, 누군가는 실망하겠지만 그게 영원하지 않다는 걸 인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잖아요.

그러니 저를 너무 의존하지도, 내치지도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어쨌거나 같이 살아갈 수밖에 없거든요. 그게 우리의 운명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어 준 분들에게 특별히 복채도 받지 않고 운세를 점쳐 드릴게요. 새해엔 원하던 것 중 하나는 꼭 이루어질 거예요. 그런 일이 생긴다면 저, 운세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좋아요. 어쩌면 그게 사실인걸요.



글_조하랑

평범한 직장인, 소설가의 꿈을 갖고 있습니다.






[Mini Interview] 조하랑

"부끄럽지 않은 글들을 꾸준히 써나가고 싶어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에서 혼자 살면서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어요. 매일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조용한 날들이 대부분인데, 오늘은 '이달의 에세이' 선정 소식으로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작년에 '목요일 그녀'님의 글쓰기 모임에 들어가면서 처음 글을 쓰게 되었어요. 그 때 그녀님이 2W 매거진 기고를 추천해주셨구요. 처음으로 내 글이 출판의 형식을 통해 형태를 완전히 갖추고 세상에 나타난 것이 참 신기했어요. 내 글이 실린다는 메일을 처음 받았을 때, 처음 내 글이 실린 2W 매거진을 펼쳤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지금도 기억이 납니다. 

이렇게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구나, 자극도 되고, 2W 매거진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다는 느낌도 좋았어요. 함께 하는 필진분들이 하나 둘 책을 내는 걸 보면서 '앗, 나도 할 수 있을까?' 목표도 갖게 되었구요.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종종 에세이를 쓰면서 울컥하거든요. 몰랐던 내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어서인 것 같아요. 쓰면서 생각이 정리될 때, 내가 이렇게 애썼구나 생각이 들 때 위안이 되고요. 물론 가장 행복할 땐 쓴 글이 마음에 쏙 들 때에요. 

그런 경우는 흔치 않지만요. ㅎㅎ

글을 쓸 때는 늘 괴로운 것 같아요. 글이 맘처럼 잘 안 써지니깐요. 제가 최근에 많이 하는 고민은 '에세이를 언제까지 쓸 수 있을까?'하는 거에요. 다른 필진분들의 글을 보면 경험이 남다르신 분들도 있고, 어떤 주제에 대해 깊이있는 안목을 보여주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전 그 모든 게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결혼이나 출산의 경험도 없고, 사람들과 많이 부닥치는 것도 아니고요. 

삶으로선 참으로 감사하지만 지극히 평범하게 지내온 인생인지라 나의 에세이가 얼마나 공감받을 수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그래서 조금 더 날카롭게, 진지하게 삶을 고찰해 나가야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유머가 곁들여졌지만 가볍지만은 않은 글? 최근에 글쓰기 모임에서 <어떻게 쓰지 않을 수 있겠어요>라는 책을 읽었는데, 그 책이 그렇더라구요. 웃긴 문장들 속에서 애환과 고민이 느껴졌거든요. 그리고 제 꿈 중의 하나인 소설이요! 장르소설이나 SF소설도 참 좋아하는데,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신선한 주제의 소설들을 읽을 수 있어서 기뻐요. 아직 구체적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다, 한 건 없지만 올해 단편소설을 한 두편 만이라도 써보려고 해요. 

부끄럽지 않은 글들을 꾸준히 써나가고 싶습니다!



필진들의 추천사


'운세'의 입장에서 인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전한 조하랑 작가의 <인간들에게 부침> 을 읽다가 '너무 의존하지도, 내치지도 않길 바란다'는 운세의 부탁이 다정하고 귀여웠다. 원하는 것 중 하나가 이루어진다면, 그건 운세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의 노력 덕분'이라고 생각해도 좋다는 말은 꽤 위안이 됐다. 노력하지 않아도 운 때문에 잘 되는 사람을 보면 어쩐지 배 아플것 같으니까.


실체는 없으나 정의 내릴 순 있는 '운세'라는 녀석이 직접 얘기하는 듯한 조하랑 작가의 글은 색달라서 재밌다. 작가가 글에서 말하는 인간이 운세를 만들어낸 이유도, 운세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도 읽다 보면 뜨끔해진다. 어쨌거나 너무 의존하지도, 내치지도 않으면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 게 운명일지도 모른다 하니 '운세'라는 이 녀석을 끼고 사려면, 중심을 잘 잡아야 되나 보다.


심약한 면이 있어 어렵거나 힘에 부치는 일이 있으면 기댈 혹은 의존할 대상을 희구할 때도 종종 있었는데 이 글을 읽고선 심신의 정지 작업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조하랑 작가의 <인간들에게 부침> 을 읽고 올 한해 열심히 '노력' 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동안의 노력으로 새해에 원하는 것 중 하나는 꼭 이루어질 거라니 원하는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욕심부리지 말고 딱 하나만 골라서 이뤄내고 싶다.






이 글은 2W매거진 19호 <오늘의 운세>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매거진 정가는 3000원이며 수익금은 여성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데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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