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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Feb 19. 2022

나라는 첫째와 루키라는 둘째

2W매거진 20호 <2와 여자들> 이달의 에세이 선정작

글 쓰는 여자들의 독립 웹진 <2W매거진>은 매달 다른 주제의 에세이를 함께 쓰고 있습니다. 수록된 에세이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작품을 '이달의 에세이'로 선정하여 '책꾸러미 럭키박스'선물을 보내드립니다. 20호 <2와 여자들>  편에 다정 작가의 '나라는 첫째와 루키라는 둘째'가 선정되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내 인생 내내 이 글을 고치고,
또다시 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만큼 매년, 매일 엄마라는 여성을
새롭게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간다.





“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

“네가 생겼으니 낳았지.”

“그럼 결혼은 왜 했어?”

“네가 생겼으니까 결혼했지.”

아니 그러니까 스물두 살 어린 나이에 뜻하지도 않게 덜컥 생겨버린 아기를, 그래서 평범한 대학생이던 당신의 삶을 전복시켜버릴 그 아기를, 나를, 왜 지우지도 않고 결혼해서 낳았느냔 말이다.

“낙태라니. 무슨 그런 소리를 하니. 나는 절대 그러면 안 되는 줄 알았어.”

그렇구나. 나는 어떤 대단한 대답을 기대했던 걸까. 하고 생각하고 있는데 엄마는 “네 동생은 계획해서 낳았어.” 하며, 갑자기 아들이 얼마나 갖고 싶었는지를 이야기하느라 내 질문은 이미 잊어버리신 듯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던진 질문이지만, 사실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이 질문을 10대 내내 곱씹었으며, 실제로 엄마에게 건네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엄마는 무심코 이렇게 말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냥 생겨서 낳은 자식이고, 내 동생은 정말 갖고 싶어서 계획해서 낳은 자식이라고.

엄마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나는 그 말을 차갑고 단단한 쇠사슬로 이어 족쇄로 만들어 내 발목에 차고 다녔다. 그냥 생겨서 낳은 자식인 나는 더 잘해서 엄마의 인생을 가치 있게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성인이 되기까지 나는 내 인생의 가치에 엄마의 가치를 투영해서 살아왔다.


첫째로 태어나 이상한 피해 의식을 족쇄로 차고 다녔던 내가, 우리 집 둘째 고양이를 들일 때 딱 엄마의 말과 같은 행동을 했다.

우리 첫째 덤덤이는 사실 큰 고민 없이 무심코 입양해왔는데, 둘째 루키는 정말 오랫동안 고민하고 열심히 계획하고 준비해서 입양했다. 이럴 때 또 내가 엄마와 꼭 닮은 행동을 하는 것 같아 내 자신이 좀 싫기도 하다고, 술에 취해서 반려인에게 갑자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꼬부라진 혀로 “그래서 나는 루키가 와도 첫째인 우리 덤덤이한테 정말 잘해줄 거야.”라고 선언했다.


한편으로는 고심해서 둘째를 들이면서, 스스로 어떤 위로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둘째를 입양하면서 고민했던 것은 모두 첫째인 덤덤이를 위한 것이었으니까. 덤덤이가 같은 종족으로부터 사랑받는 경험을 했으면 해서 둘째를 입양했고, 덤덤이를 위해서 덤덤이와 가장 잘 맞을 것 같은 성격의 아이를 찾았고, 덤덤이를 위해서 합사에 필요한 것들을 열심히 공부했다.

어쩌면 우리 엄마가 둘째 임신을 고민하고 출산을 계획했을 때도, 나를 위해 그렇게 고민하고 계획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처음으로 해본 것이다.


“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로 시작하는 이 글을, 사실 나는 아주 여러 번 썼다. 2016년에는 어딘가에 발행된 적도 있다. 낙태죄 폐지 운동이 한창일 때도 썼고, 헌법재판소에서 비로소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을 때도 썼고, 또 둘째를 키우게 된 2022년에 또다시 쓰고 있다.

첫 번째 버전의 글을 쓸 때의 나는 엄마를 너무 과소평가했던 것 같다. 나를 낳은 게 엄마의 결정이 아니라, 낙태가 죄인 법이나 상황의 결과라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어쩌면 엄마의 출산을 개인의 선택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여성의 결정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었던 건 오히려 나였던 게 아닐까.

내 인생 내내 이 글을 고치고, 또다시 쓰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그만큼 매년, 매일 엄마라는 여성을 새롭게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간다.

이번 글 역시 이 글의 최종 버전은 아닐 것이다. 엄마와 나라는 두 여성의 관계는 앞으로 더 다채롭게 변해갈 테니까.


나는 이제 엄마가 아닌,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간다. 내 발목엔 이제 아무것도 없다. 두 마리의 고양이가 장난친답시고 할퀸 자국 외에는.

루키라는 둘째가 내게 온 것이 많은 영향을 줬다. 엄마의 결정에 대해서 더 이해하게 됐고, 실제로 대화를 통해 내가 이해한 게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까. 루키는 나에게 소중한 선물이다.

우리 집에 온 지 이제 한 달이 조금 넘은 루키는 내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기뻐서 고롱고롱 소리를 내며 잔다. 루키는 나보다 먼저 나를 믿고 의지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오랜 고민을 해서 데려와 놓고도 어린 나를 향한 마음의 짐 때문에 둘째인 루키에게 마음을 주기가 무서웠는데, 이제는 루키를 정말로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글_ 다정

반려(인간 하나, 고양이 둘)와 함께 삽니다. 








[Mini Interview] 다정


"내가 꿈꾸는 다정한 글은요...."


Q.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다정입니다. 인간 하나 고양이 둘과 함께 살고요, 지금은 글 쓰는 마케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Q. 2W매거진에 기고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인이 2W매거진 창간호에 글을 썼어요. 그분이 홍보하시는 걸 보고 2W매거진에 대해 알게 됐고, 아미님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었습니다. 2W매거진의 소식을 지켜보며 언젠간 나도 필진으로 합류하게 되지 않을까 꿈꾸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번 호가 딱 그 “언젠가"였나 봅니다.

‘숫자 2’라는 주제를 들었을 때 쓰고 싶은 이야기들이 막 떠올랐어요. 여자 둘이 살고 있고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거든요. 제가 꾸린 이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그냥 어린 다정이 이야기가 되어버렸습니다(머쓱).

가장 저다운 시작인 것 같기도 해요. 저는 엄마를 이해하려고 공부를 하다가 딱 그만큼 사회를 이해하게 된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하거든요. 첫 글로 이달의 에세이 작가가 되는 영광까지 누리게 되어 얼떨떨하네요. 


Q. 에세이 쓰기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 이야기해주신다면.

아직은 알아가는 중인 것 같아요. 제 이야기나 제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늘어놓는 게 익숙하지는 않아요. 활자로 새겨지는 순간 저라는 사람이 정말 그런 인물로 기록되고 알려지는 거니까 매번 조심스러워요. 잘 포장하고 싶은 마음이 커지죠. 에세이 쓰기의 기쁨이라 하면 ‘에세이 속 제 자신이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 남는 것’이 기쁨이고, 슬픔이라 하면 ‘사실은 내가 이보다는 못난 사람이라는 걸 스스로는 아는 것’이 슬픔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Q.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위에서 언급했던 가족 이야기를 꼭 쓰고 싶어요.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 말고 제가 선택한 가족이요. ‘엄마’를 이해하기 위해 공부를 하고 글을 써온 것처럼, 앞으로는 제가 선택한 반려인과 반려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기 위해 세상을 더 넓게 바라보고 글을 쓰고 싶어요. 그게 제가 꿈꾸는 ‘다정’한 글이에요.





필진들의 추천사


"엄마는 나를 왜 낳았어?"라는 물음에 대한 답을 하고, 고치고, 또다시 쓰는 반복을 통해 매년 엄마라는 여성을 새롭게 이해하고 용서하며 살아간다는 작가의 이야기가 오래 마음에 남았다. 엄마와 딸, 여성으로서의 이야기가 작가의 말처럼 다채롭게 많은 이들에 의해 씌여지기 바란다.


제일 마음에 남았던 글이다. 엄마와 나라는 두 여성의 관계 속에 나 역시 놓여있기 때문이고, 이제는 내가 부모가 되어 또 다른 엄마와 자식이라는 관계에 새롭게 놓여있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내 인생의 질문을 계속 곱씹으며, 쓰고 또 쓰는 작가에게 따뜻한 위로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쓸 수밖에 없는 고통일 테고, 쓸수록 고통 속에만 머물러있지 않게 될 것이므로. 작가의 발목을 잡고 있던 족쇄가 사라졌으나, 자신을 위한 삶 속에서 언젠가 다시 한번 이 글을 또 쓰고 고치게 되었을 때의 그 글도 다시 보고 싶어진다


과거를 여러 번 반복해서 쓰는 사람을 존경한다. 고치고, 다시 쓰면서 경험을 새롭게 해석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채롭게 변해가는 여성들의 관계에 대한 작가님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다. '내 발목엔 이제 아무것도 없다'라는 구절이 마음에 오래 남았다.


처음 읽을 때는 그런가보다 하고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서 뭔가 가슴 한 쪽이 콕콕 찔리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인생 내내 이 글을 쓰고 또 쓴다니. 작가는 얼마나 자기 스스로를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를 이해하려 애썼을까. 읽으면서 두 여성의 관계가 점점 편안해지길 나도 모르게 바랬다. 앞으로 언젠가 쓸 버전에는 작가 스스로를 위한 삶을 즐기며 엄마와의 관계도 즐길 수 있는 글이 담기기를.






이 글은 2W매거진 20호 <2와 여자들>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매거진 정가는 3000원이며 수익금은 여성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응원하는 데 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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