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스트를 만나다 4 - 조혜란
Q. 에세이란 어떤 글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개인적으로 정의를 내려보신다면.
누구나 쓸 수 있지만, 오로지 나만 쓸 수 있는 글이 에세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모든 글이 그렇다고 볼 수 있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특히 에세이는 내 얘기가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내 얘기를 하는 거니까 누구나 쓸 수 있고, 내가 어떻게 살고,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느끼는지, 그 경험들이 글의 재료가 되니까 그건 오로지 나만 쓸 수 있는 거죠.
Q. 에세이 작가로서 스스로의 장점을 평가해보신다면?
글을 쓸 때 내 얘기지만 철저하게 관찰자의 입장에서 쓰려는 버릇이 있어요. 처음부터 주제를 갖고 어떻게 쓰겠다고 체계적으로 쓰는 건 제가 잘 못하거든요. 대충 줄기만 잡고 이런 상황에 대한 얘기를 해야지 정도만 미리 생각하고, 일단 쓰면서 최대한 세세하게 상황을 관찰하듯이 쭉 나열하면서 쓰기 시작해요. 다시 한 번 그 상황 밖에서 재현해보는 거죠. 그러다보면 그 상황 속에 있을 땐 몰랐는데, 내가 느꼈던 감정이나 보이지 않던 갈등이 좀 더 선명하게 드러날 때가 있거든요. 그런 것들이 글을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가야겠다거나,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겠다고 이끌어 줄 때가 많아요.
Q. 프롤로그에 ‘젊은 전업주부의 웃픔’이라고 표현하신 게 와 닿았어요. 힘든 기억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고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특유의 분위기와 연결이 되더라고요. 일부러 의도하신 바인지, 위트 있는 글의 비결이 궁금해요.
저는 삶에 ‘유머’가 정말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해요. 사실 ‘유머’라는 게 없어도 살고, 있어도 사는데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삶을 맛깔나게 하는 역할이 분명히 있어요. 요리로 치면 MSG같은 거라고나 할까요. MSG 없어도 요리는 할 수 있지만, 들어가면 솔직히 더 맛있잖아요(물론 제가 요리를 잘 못해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유머’도 MSG처럼 가끔 삶 속에 톡톡 뿌려줘야 살맛나지 않겠나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재밌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지만, 사실 남을 웃기는 재주는 별로 없답니다. 오히려 재미없는 사람에 가깝죠(슬프게도…). 딱히 의도하거나 비결이란 건 없는데, 유머러스한 사람이 되고 싶은 소망을 글에 투영시키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Q. 평소 글을 잘 쓰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시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특별한 노력은 딱히 없고…, 아 진짜 쓸 게 없는데… 하면서도 매달 2W매거진 기고를 기어이 해보려고 애쓰는 것? 한 달이라는 기간이 긴 것 같아도(은근히 빨리 돌아옵니다) 어쨌든 꾸준히 계속 쓰는 것이 분명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Q. 마지막에 ‘함께 쓰는 힘’에 대해 강조하셨어요. 글을 함께 쓰면서 연대의 힘을 느낀 순간이 있다면?
내 글을 읽고 누군가의 피드백을 받을 때도 ‘아, 혼자 쓰는 게 아니구나, 같이 쓰고 있구나!’ 하고 느끼지만, 제일 그런 느낌을 많이 받을 때는 매거진을 읽다가 ‘아, 나도 그런데!’ 하고 다른 필진들의 글에 공감하게 될 때예요. ‘나랑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이런 감정을 나만 느끼는 것이 아니구나’, ‘맞아, 이런 표현이 정말 딱 내 마음 같아’ 하는 글을 만날 때 이것이 연대의 힘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돼요.
Q. 이번 에세이스트 프로젝트를 통해 책을 출간하는 소감 말씀과 앞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하시게 될 동료작가님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그동안 2W매거진에 기고했던 글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다니 너무 기쁘고 뿌듯합니다. 솔직히 처음 에세이스트 프로젝트 대상자가 되었을 때는, 매번 다 다른 주제로 쓴 글인데 어떻게 한권의 책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동안 썼던 글들을 다시 돌아보면서 내가 이런 얘기를 하고 싶었구나, 다른 주제로 쓴 글이지만 계속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거구나 하고 깨달았을 때 굉장히 놀랐어요. 신기하기도 했고요. 글을 쓰는 것도 나를 알아가는 방법이지만, 그걸 한데 묶고 연결해보는 것도 내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발견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걸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배운 것 같아요. 제겐 너무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어디 가서 돈 주고도 못할 경험이지 않나 싶어요. 2W매거진과 아미가 출판사에 다시 한 번 감사드리고요! 다른 필진 분들도 꼭 한 번 경험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인터뷰 전문은 책 속에 있습니다.
아마 쓰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나는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자리가 버겁고 힘들다고,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슬프고 답답하다고.
나는 두 아이를 키우는 ‘젊은’ 전업주부다. ‘젊은’이란 단어를 굳이 갖다 붙인 건 내가 특히 젊다고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다. 딱히 나이에 신경 쓰며 사는 건 아닌데, 또래 아이를 키우는 주변 양육자들 틈에서 나는 늘 비교적 어린 축에 속했다. 그리고 그것이 가끔은 속상했다. 결혼도 출산도 필수가 아닌 선택이 되는 시대에 ‘젊은 전업주부’라는 정체성이 나를 종종 주눅 들게 했다.
결혼도 선택하고, 출산도 선택하고, 전업주부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은 전통적 가족제도에 그렇다 할 의문을 품지 않고 무난히 편입했다는 뜻이었고, 한편으론 가족이라는 사회적 안전망 바깥의 나, 그러니까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해서는 내세울 것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뜻으로도 통했다.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거나 혹시 ‘언제 복직하세요?’하는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멈칫했다. 바쁘고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는 와중에도 자주 잉여인간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마음을 잘 숨기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무심코 썼던 나의 글을 한참 후에 다시 읽어보니 그 감정들이 은은하게 배경으로 깔려있었다. 모든 글이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많은 글이 그랬다. 나의 상황과 나의 위치에서 느낀 속상하고 좌절된 순간들이 자주 등장했다. 베르테르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마 쓰지 않으면 안될 만큼 나는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이 자리가 버겁고 힘들다고,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아서 슬프고 답답하다고. 엄마, 아내, 딸, 며느리, 주부가 아닌 그냥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고.
하지만 내 삶 속엔 그러한 슬픔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걸 글을 쓰면서 알았다. 기쁨과 슬픔이, 때로는 웃음과 눈물이 내 곁에 나란히 존재했다. 내가 소설 속 베르테르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 있다면 슬픔의 끝을 향해서만 나를 몰아붙이지 않고, 잠시 고개를 돌려 기쁨과 웃음의 얼굴도 잊지 않고 바라보려 했던 것일 테다. 나는 답답함 속에서도 유쾌함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슬픔 속에 묻혀있다가도, 결국은 웃고 싶어 발버둥친 것이다. 어쨌거나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나는 내 삶을 사랑하고 싶었나보다. 웃음과 슬픔이 동시에 존재하는 ‘젊은 전업주부’의 삶도 충분히 괜찮은 삶이라고 나에게 말해주려고 그렇게 글을 써왔는지도 모른다. 2W매거진으로 만난 필진들과 아미가 출판사가 함께 해주어 쓰는 일이 외롭지 않았다. 계속 쓸 수 있도록 힘을 주는 사람들 옆에서 앞으로도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
-⟪글 쓰는 전업주부의 사생활⟫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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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게는 글을 쓰는 것이 그런것이에요. 그냥 밥 먹고, 자고, 싸고 하는 것처럼, 걸어 다니고, 말하고, 생각하고,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그냥 글을 쓰는 것일 뿐이에요. 글을 쓰는 것이 제게는 생각을 하는 것이고, 친구를 사귀는 것이고, 말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요. 매달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거예요.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는걸요. 제가 전업작가가 아니라, 전업주부임에도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 제가 찾은 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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