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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Sep 27. 2024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한 뒤 내가 받은 질문들

그리고 나만의 까미노 프로젝트 "까미노의 말"


안녕하세요. '마흔에 홀로 떠나는 산티아고'를 연재 중인 홍아미 작가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저의 순례길 경험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풀어보려 합니다. 


저는 올해 4~5월 프랑스길(까미노 프란세스)을 완주했습니다. 총 거리가 800km에 달하는 까미노 프란세스는 여러 갈래로 유럽 전역에 뻗어 있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대중적인 루트입니다. 저는 체력 안배를 위해 중간에 하루씩 쉬어가기도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36일이 걸렸으니 하루 평균 20km이상을 매일 걸은 셈입니다. 


사실 저는 도보여행 전문가도 아니고, 체력적으로 그리 단련이 된 사람도 아닙니다. 올레길 몇 번 걸어보고, 등산 몇 번 해본 게 전부인 평범한 도시 사람일 뿐이죠. 여행 작가로서 좀 남다른 점이 있다면 '겁이 별로 없다'는 것 정도? 무섭거나 겁이 난다는 이유로 해보고 싶은 걸 주저하는 성격은 아니라는 점 미리 알려드립니다. 그런 저에게 산티아고 순례길은 20대 시절부터 마음 한편의 꿈으로 담아둔 버킷리스트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덧 제 나이 40대. 늦기 전에(관절 튼튼할 때) 미뤄둔 꿈을 이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행 작가로서 코로나 시국을 겪으며 정말 하고 싶은 일은 있을 해두어야 한다는 교훈을 얻기도 했고요.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장기 여행이다보니 변수도 많았고(친족 사망으로 인한 긴급 귀국 등) 매일 20km 이상씩 한달을 넘게 걸어본 일은 태어나서 처음 해본 도전이었기에 여정이 길어질수록 저의 육체는 그야말로 비상사태에 돌입하더라고요. 물집과 근육통은 일상이었고요. 낯설고 불편한 곳에서 지내며 지속적인 피로가 누적되니 면역력 약화로 인해 두드러기와 심한 감기가 늘 따라다니는 매일이었습니다. 5월임에도 10도를 밑도는 낮은 기온과 폭우 등 기상이변도 컨디션 악화에 한몫 했던 것 같습니다. 


완주를 끝내고 돌아와서 주변인들에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이것이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은 적이 한번도 없었나요?


그리고 저의 답은 항상 "아니오"였습니다.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정말 단 한번도 중간에 포기해야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습니다. 잠시 쉬어갈 망정, 버스로 점프를 해본 적도 없었지요. 대단한 의지나 고집이 있었던 건 아닙니다. 까미노를 걷는 그 시간이 그저 좋았을 뿐입니다. 물론 힘든 힘든 거지만요. 


그러면 다음 질문이 돌아옵니다. 


매일 그렇게 걷는 게 뭐가 그렇게 좋았나요?


사실 이루 말할수가 없습니다. 끝없이 펼쳐진 아름다운 풍경을 혼자서 만끽하기도 하고, 한국 사회 특유의 압박감과 불안감에서 벗어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가톨릭의 본토를 경험하는 순간의 감동도 느껴봤지요. 하지만 제가 가장 좋아했던 것은 까미노와의 대화였습니다. 

한시라도 빨리 걸음을 재촉해야 하는 길 위에서든, 비바람에 눈을 뜰 수 없는 산길에서든, 어느 누구보다 자주 걸음을 멈추곤 했어요. 까미노가 자꾸만 저에게 말을 걸었거든요. 이건 비유나 상징적인 표현이 아니랍니다. 실제로 표지판 한 귀퉁이에, 부서진 벤치 위에, 바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 위에, 담쟁이가 잠식한 담벼락에..... 길 곳곳에 '까미노의 말'이 제 눈길을 사로잡았어요. 


마치 낙서 같기도하고, 의미심장한 격언 같기도 한 단어나 문장을 만나곤 했는데 어떤 문장은 응원이 되었고, 어떤 문장은 피식 하는 웃음을 선사하기도 하고요. 어떤 메시지는 뼈 때리는 일갈처럼 들려왔고, 쓴 사람의 고통이나 슬픔이 느껴지는 단 한 줄에선 무한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기도 했어요.  어떤 때는 내가 고민하던 생각이나 내가 처한 상황에 딱 맞는, 응답 같은 메시지를 만나기도 했고요. 까미노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 것이 무리도 아니지요.


어느 순간 저에겐 까미노 자체가 하나의 책으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까.... 까미노는 800km의 길로 만들어진 한 권의 책. 눈으로 활자만 좇는 독서가 아니라 직접 두 발로 걷고, 보고, 냄새 맡고, 온 몸의 감각과 정서로 완독한 책이었습니다. 



까미노는 800km의 길로 만들어진 한 권의 책


그렇게 저만의 까미노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걷는 내내 까미노 곳곳에 적힌 글들을 수집했고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수백 개가 되더라고요. 여름 내내 사진을 간추리고 번역하는 작업에 매달렸고요. 대부분은 구글 번역기의 도움을 받았지만, ai만으로 해결이 안되는 단어나 문장은 주변의 프랑스어 스페인어 능력자들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저의 까미노 프로젝트의 결과물을 더 많은 분들과 나누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일단은 사진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거란 생각에 인스타그램 계정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이틀에 한 번씩 제가 직접 수집한 "까미노의 말"을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camino_words/ (구독과 좋아요는 큰 힘이 됩니다!)




R'EVOL'UTION



혁명 (그 안에 사랑)





To see the world in a grain of sand, And heaven in a wild flower.(영어)



모래 한 알에서 세상을 보고, 야생화 한 송이에서 천국을 봅니다.









You Are Strong!(영어)



당신은 강해요!






CAMINA CON LOS PIES ANDA CON EL CORAZON(스페인어)



두 발로 걷고 마음으로 걷는다







deo obrigula (포르투갈어)



나는 의무를 다한다





Nothing could stop you.(영어)



그 무엇도 널 멈추게 할 수 없어






Life is beautiful(영어)



인생은 아름다워












ET NE PAS QUAND VIENDRA LA VIEILLESSE DÉCOUVRIR QUE JE N'AVAIS PAS Vécu.(프랑스어)



나이가 들고서야 비로소 내가 인생을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Alguna vez fuimos eternos.....(스페인어)



우리는 한때 영원했었지.....







EZ ZAITUZTEGU AHAZTUKO (바스크어)





우리는 너를 잊지 않을 거야




글, 사진_ 홍아미




더 많은 까미노의 말은 인스타그램에서 만나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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