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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Sep 24. 2024

Day 20 이 길, 정말 뭔가 이상해

깔자디아에서 사아군까지 21km

Today’s route ★★★☆☆

깔자디야 데 라 쿠엔자Calzadilla de la Cueza → 사아군Sahagun 21km 



지난 며칠 동안 무리해서 걷고 비도 많이 맞아서 컨디션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날은 21킬로만 걸으면 돼서 큰 부담은 없으리라 생각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걷자고 다짐했다. 

혼자 걷다 보니 또 오만 가지 생각에 휩싸였다. 문득 버카드 생각이 났다. 그도 전날 깔자디아까지 간다고 했는데 내가 있던 숙소에서는 못 만났다. 아마 다른 숙소에 묵은 모양이었다. 그가 태우 청년이 부른 노래 영상을 보내달라 했는데 내가 묵은 숙소에선 인터넷이 안 터졌다. 오늘 숙소에 들어가면 꼭 보내야지 다짐했다. 그날 태우 청년이 뮤지컬 넘버 ‘지금 이 순간’을 불렀는데 그 노래 가사가 버카드의 스토리와 딱 맞아떨어진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이 순간
나만의 꿈이 나만의 소원
이뤄질지 몰라 여기 바로 오늘
지금 이 순간 지금 여기
말로는 뭐라 할 수 없는 이 순간
참아온 나날 힘겹던 날
다 사라져 간다 연기처럼 멀리
지금 이 순간



버카드를 처음 만난 게 어디였더라. 유정언니, 카트린과 같이 걸을 때니까 산토도밍고 즈음이었나. 걸음 속도가 비슷해서인지 그때 이후로 버카드와는 유독 자주 마주치곤 했다. 언어의 한계로 깊이 친해지진 못했지만 그래도 바에서 만나면 자연스레 합석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물어주는 사이라고 해야 할까? 그의 첫인상은 슬픈 눈의 독일인. 그의 집에서부터 시작해 4년 동안 4000킬로를 걷고 있다는 그의 스토리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더 그렇게 느꼈던 걸지도 모른다. 그의 말에 따르면 ‘Special Situation’ 이후 시작한 여정이고 이번에 긴 여정을 마무리하려 한다고 했다. 작은 반도에서 살면서도 걸어서 전국 일주를 해볼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큰 유럽대륙을 종주하게 만들었던 그 일생일대의 사건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했지만 자세히 물을 순 없었다. 다만 꼭 성공하기를 바랐을 뿐. 자기 속도대로 고요하게 차근차근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오래 지켜보면서 진심으로 응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버카드 그 사람만은 꼭 성공해서 완주의 기쁨을 누렸으면. 그 순간에 이 노래를 들으며 지난날의 고통을 위로받을 수 있기를.



오전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걸었는데, 놀라운 일이 있었다. 산 니콜라스 마을(San Nicolás del Real Camino)의 한 바에서 시간을 보내다 나오는 중이었다.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커피도 크라상도 참 맛이 없어서 인상적인 곳이었다. 충분히 쉬다가 천천히 걸어서 나오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뒤돌아보니 버카드가 절뚝거리며 내게 다가오는 게 아닌가. 평소에는 늘 여유 있는 모습이었던 그가 좀 달라 보였다. 얘기를 들어보니 발에 큰 물집이 생겼는데 통증이 심각한 상황인 듯했다. 약국이 있는 마을까지는 10킬로 이상 더 걸어야 하는 위치였는데, 가지고 있는 건 작은 물집밴드뿐. 

“혹시 너 큰 콤피드밴드 가지고 있니?”

버카드가 묻는데, 문득 생각나는 게 있었다.

“잠깐 기다려봐. 찾아볼게.” 

난 그 자리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몇 주 전 별생각 없이 사놓고 들고만 다니던 콤피드가 어디 있을 터였다. 다행히 파우치 안에 들어 있었다. 딱 하나 남은 대형 콤피드! “오!” 우리는 같이 환호했다.

그는 벤치에 기대어 앉아 고름에 들러붙은 양말을 벗었다. 으윽, 하고 신음을 흘렸다. 상처가 꽤 심각해 보였다. 커다란 물집이 터져 염증도 심각해 보였고 진물이 잔뜩 흘러나와 있었다. 발을 한걸음 디딜 때마다 꽤나 심각한 통증이 느껴질 터였다.  

“네가 괜찮다면 붙이는 거 도와줄 수 있어?”

그의 부탁에 난 기꺼이 그러겠다고 했다. 콤피드를 상처 부위에 붙여주기 위해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순간, 나는 묘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콤피드 물집 밴드는 매일 무지막지한 거리를 걷는 순례자들의 필수품이지만 사실 꽤나 비싸다. 원화로 따지면, 작은 건 개당 2천 원 정도, 가장 큰 건 5천 원 정도. 큰 거 작은 거 사이즈 별로 7개쯤 들어있는 콤피드 한 통을 사면 15유로 정도 하니까 2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이다. 나는 순례길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발가락 물집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처음 물집이 생겼을 때 두 명의 외국인이 자기 콤피드를 기꺼이 건네주는 호의를 베풀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호의 즉, 순례자들 사이의 의리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후 약국이 있는 도시에서 나도 콤피드를 샀다. 발가락에만 주로 생기니까 발가락용 작은 크기의 콤피드만 사면 되는데, 왜인지 그때 나는 모든 크기가 다 들어있는 더 비싼 제품을 구입했다. 당연히 몇 개 안 되는 작은 밴드가 금방 동나고 큰 거는 쓸 데가 없어 그냥 들고만 다녔다(이후로는 작은 콤피드만 구매하긴 했다). 아무튼 별생각 없이 샀던, 내게는 필요하지 않아서 이후 이주 넘게 들고 다니기만 했던 대형 콤피드가 드디어 쓰일 곳을 찾은 것이다. 버카드의 발꿈치에 콤피드를 붙이며 든 첫 번째 생각이 바로 이것이었다. 이게 멀고 먼 길을 돌아 제 자리를 찾았구나.

“You rescued me.”

버카드는 진심으로 내게 고마워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다음 마을에 가면 약국에서 콤피드를 살 것이고, 같은 것으로 돌려주겠다, 뭐 그런 말들을 했지만 나는 필요 없다고 말했다.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고, 너도 다른 이들을 도우면 된다. 순례길에서는 모두가 서로를 돕지 않느냐. 그리고 마지막 인사는 항상 ‘부엔 까미노’




버카드는 그 맛없는 커피를 파는 바에서 좀 더 쉬다 출발하겠다고 했고, 나는 먼저 길을 나섰다. 혼자서 한참 터벅터벅 걷는데, 버카드의 발치에 무릎을 꿇었던 순간 날 사로잡았던 기묘한 기분이 도저히 떨쳐지지 않았다. 어느덧 내 앞엔 끝없는 밀밭길이 펼쳐져 있었다. 마음이 이상했다. 어찌 보면 순례길 위에서 흔히 벌어지는 작은 해프닝이었다. 하지만 난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다채로운 감정에 휩싸였다. 어쩌면 혼자 걸을 때 나타나는 부작용의 일종일지 모른다. 나를 지배했던 가장 큰 감정은 ‘기쁨’이었다. 안타까움이나 걱정도 아니고, 하다못해 뿌듯함도 아니고 기쁨이라니? 그래서 그다음 순간 찾아온 감정은 ‘당혹스러움’이었다. 마치 버카드가 바로 이곳, 이 시간에 난감한 상황에 처할 것을 누군가가 알고, 미리 내가 준비되어 있었던 것 같은 그런 이상한 생각이 뇌리를 사로잡았다. 

왜 하필 내겐 필요도 없고, 비싸기만 한 대형 밴드를 사서 오랫동안 들고만 다녔는지, 왜 하필 최근 지난 며칠 평소보다 더 먼 거리를 무리해서 걸어, 마침 발병이 난 버카드와 이 지점에서 딱 만나게 된 건지, 왜 하필 한국 청년 노래에 감동을 받은 버카드가 내게 영상을 보내달라고 부탁을 하는 바람에 오전 내내 ‘다른 사람은 몰라도 버카드만큼은 꼭 완주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혔는지. 그게 혹시 기도였나. ‘아멘’ 같은 말은 안 붙였는데 간절하게 바라면, 그게 기도가 되나? 

한 움큼 남은 이성이 이 모든 일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 뿐이고 과장해서 해석하지 말라고 아우성을 쳤지만 내 머릿속은 이미 ‘나는 신에게 쓰임 받았다’라는 생각으로 가득 차 버렸다. 나는 평소에 신앙심이 깊은 편도 아니고, 논리적이지 않은 행동과 생각은 극혐 하는 인본주의자다. 그런데도 버카드의 완주를 위해 신이 나를 도구로 쓴 게 아닌가 하는 강력한 확신을 떨칠 수가 없었다. 

‘만약 그가 나를 만나지 못했다면, 그래서 고통을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면 잠시 순례를 멈추고 약국이 있는 마을까지 버스나 택시로 이동해야 했겠지. 그런데 때마침 그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가지고 내가 딱 나타난 거야. 그가 순례를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도록. 이 모든 것이 그냥 우연의 일치일 수가 있나? 그런데 그렇게 도구로 쓰인 게 기뻐? 어째서? 아니, 신이니 도구니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내가 미쳤나. 하느님, 이게 맞아요?’





그런 생각들을 하면서도 나는 쉼 없이 노란 화살표가 이끄는 대로 걸음을 옮길 뿐이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끝없이 펼쳐진 밀밭 사이로 난 길을 걷고 있었는데, 내 뒤로도 앞으로도 아무도 없었다. 길 위엔 오직 나, 그리고 내 위엔 오직 하늘. 빠른 속도로 내딛던 걸음을 우뚝 멈추고 망연히 하늘을 바라보았다. 쉴 새 없이 귓가에 스치던 바람 소리가 뚝 그쳤다. 흐린 구름 사이로 비어져 나온 햇살 한 줄기가 은은하게 내 머리를 감쌌다. 눈을 감았다. 조용해진 사위에서 밀밭의 이삭들이 서로 몸을 부비며 내는 작은 소리들이 마치 천사의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눈을 감고 한참 그 소리를 들었다. 눈을 뜨는데 어째선지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르 흘러내렸다. 

“이 길, 진짜 뭔가 이상해.”

울컥하는 마음에 혼잣말을 육성으로 내뱉어 버렸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것밖엔 할 게 없었으니까. 아무리 마음이 혼란스러워도, 기분이 이상해도. 순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걷는 것, 그리고 기도하는 것.

당신이 원하는 대로 내가 한 것이 맞다면, 오늘 편히 이 몸을 뉘일 침대 하나 부탁합니다. 그럴 자격 되잖아. 이왕이면 1층으로. 아니, 1층까진 바라지도 않을게. 




이날 나의 목적지는 사아군에 있는 한 사립 알베르게. 작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로 하룻밤 7유로밖에 안 하는데 모든 도미토리가 화장실 달린 4인 1실이며 화장실에는 무려 욕조가 있다고 했다(순례길에서 이 정도면 거의 5성급 호텔 수준의 컨디션이나 다름없다). 예약을 해보려 애를 썼으나 전화연결도 되지 않아 일단 가보려고 하던 참이었는데, 시간이 다소 지체가 되어 과연 침대가 남아있을까 조바심이 났다. 신께 으름장(?)을 놨으니 일단 가보자 하고 사아군에 들어가서도 한참을 걸어가야 나오는 그 알베르게로 바로 직진했다. 

- 띠에네스 우나 까마?(침대 하나 있나요?)

- 씨.(그럼요),

알베르게 관계자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환대해 주며 물을 따라주고 달콤한 캔디를 권했다. 이날 마련된 커피타임과 미사시간, 저녁시간 등등을 알려준 후 잘 다려진 순면 침대커버를 건네주며 방까지 안내해 주었다. 세상에. 정말 4인 1실이다. 이미 도착한 미국인 2명이 1층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에 아쉽게도 1층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2층 침대에 올라가 벌러덩 누워 중얼거렸다. 

‘와. 진짜 오늘 희한한 하루네.’

그랬다. 정말로 신이 나를 대신하여 침대 하나를 예약해 놓으셨던 것이다. 


신기한 일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단톡방에서 라나와 얘기하다가 라나의 친구 하나가 사아군에 와 있다는 얘길 들었다. 그 요리 잘한다는 젊은 친구. 형우였다. 아까 수도원 안을 둘러보다가 혼자 라면 끓여 먹는 한국인 청년 하나를 봤는데, 그 친구가 퍼뜩 떠올랐다. 그렇게 형우를 만나게 되었다. 이렇게 신기할 수가. 우연의 일치가 하도 자주 일어나다 보니 이제 신기함에 감탄하는 것도 지칠 지경이 됐다. 형우와의 첫 만남에 폭풍 수다를 나누었다. 27세 남성에게 내가 그렇게 많은 말을 하게 될 줄 몰랐는데, 형우는 좀 특이한 아이였다. 마치 따뜻한 공감 기능이 탑재된 AI 같다고 해야 하나. 남의 말을 잘 듣고, 마치 시를 암송하는 것처럼 말을 했다. 게다가 모태 천주교 집안에서 자라나 불교에 귀의해 출가를 꿈꾸는 스토리까지. 아무튼 이날 내게 일어난 일들, 사건들, 만난 사람들 모두 하나같이 비현실적이라 이날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5시 커피타임에는 그림 카드를 가지고 자기 이야기를 풀어보는 커뮤니티 대화시간이 진행됐다. 아프리카에서 오신 젊은 신부님이 영어, 스페인어로 진행했다. 나는 새장이 그려진 카드를 골랐다. 내가 살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 앞에서 영어로 스피킹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나는 한국에서 왔어요. 여러분이 알다시피 한국은 고립된 작은 나라고, 하나의 언어만을 쓰고, 늘 같은 사람을 만납니다. 마치 이 새장처럼요. 나는 새장 밖의 세상을 만나고 싶어 여기에 왔어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엄청나게 먼 길을 걷고, 매일 다른 경험을 하고 있어요. 까미노를 걸으며 나는 매일 작은 기적을 만나고 있습니다.”

물론, 이렇게 유창하게 말하진 않았고 대충 이런 내용을 전달하고 싶었는데 매우 더듬거리며 말했다. 30프로라도 전달되었을까. 

미국, 아일랜드, 독일, 스페인, 포르투갈 등등 다양한 나라에서 온 순례자들은 저마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고, 버카드도 거기 포함되어 있었다.(그가 무사히 걸어서 여기까지 왔다! 신이시여!)

“나는 찾는 사람(Searcher)입니다. 무언가를 찾기 위해 독일에 있는 나의 집에서부터 시작해 4000킬로미터를 걷고 있어요. 그게 무언지는 자세히 얘기할 수 없지만.”

서처. 스스로를 그렇게 정의하다니. 나는 무엇일까. 생각이 많아지는 밤. 7시에는 수도원에 달린 작은 예배당에서 열리는 미사에 참석했다. 순례자들을 위한 축복미사였다. 오르간도 없고, 노래도 없는 아주 간소한 미사였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마지막에 순례자 한 명 한 명 앞에 나와 축복 메시지를 뽑도록 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빛이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잠시뿐이니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가라. 그리하면 어둠이 너희를 덮치지 못할 것이다. 어둠 속을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요한 12:35)


내게 온 메시지. 빛이 있는 동안 걸어가라. 그렇다면, 지금이 내 인생에서 빛이 내리쬐는 그런 시기인 셈이다. 감사합니다. 내가 걷도록 빛을 주셔서. 




오늘의 알베르게

Albergue de la Santa Cruz ★★★★★

1박 7€





tip. 내가 가본 감동적인 알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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