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 하는 고생의 묘미

by 홍아미


여행이란 무엇일까. 왜 여행을 하려고 하는가.
틈만 나면 여행을 떠나고 싶어하는 나 자신에게 수없이 되물었던 질문.
특히 이런 순간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1.

피부가 익을 것 같은 뜨거운 햇볕. 땀인지 뭔지 불쾌하게 흠뻑 젖은 옷.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였을 거다. 무더위에 길을 나선지 두 시간 만에 체력은 동나고, 거리는 엄청난 인파로 혼잡하기 그지 없다. 택시는 잡히지 않고, 전철역을 겨우 찾아서 갔더니 마침 정전이란다. 울며 겨자먹기로 한 시간 거리를 걸어가야 했던 기억. 그래서 쾌적한 호텔의 에어컨 바람은 천국이었나.



2.
말라카는 기대했던 것보다 예쁘지 않았다.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진하게 화장한 평범녀 같은 느낌. 지저분한 골목, 제멋대로 지은 건물들보다 형광색으로 오리고 붙인 과한 장식들이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시장을 산책하면서도 속 빈 강정 같다고 느꼈다. 동남아 어딜 가도 파는 비슷비슷한 물건들, 사람들... 영혼 없이 거닐던 중 갑자기 스콜이 닥쳤다. 어마어마한 기세로 쏟아지는 비를 피해 뛰듯이 들어선 바. 우리처럼 비를 피해 들어온 외국인들로 북적북적했다. 맥주 한 잔을 시키고 미친 듯이 쏟아 붓는 비를 마치 스크린을 보듯이 바라봤다. 빗소리, 정체모를 이국적인 냄새, 열정적으로 자기들만의 언어로 말하는 외국인들....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식도를 따라 내려가며 온몸의 기운을 청량하게 깨워줬다. 이 낯선 도시의 낯선 순간. 다시 오지 않을 인생의 시간을 무심코 목격한 순간. 그 찰나의 감동.




3.
여행을 미리 준비하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 여행에서 만나게 되는 어떠한 변수나 시행착오에도 불평할 수가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폴로 넘어가는 버스를 타려고 터미널까지 찾아간 건 좋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인터넷으로 예매해둔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됐다. 국경을 넘는 시간은 3시간이 채 안 걸리는데 나처럼 준비성 없는 사람은 5시간이나 기다려 버스를 타야 했다. 누구 탓을 하겠나. 묵묵히 표를 사고 5시간을 무난하게 기다릴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게 급선무. 다행히 우리는 인터넷이 빠른 맥도널드를 찾아냈고, 밀린 일도 하고 루트 정리도 하면서 나름 알차게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이 너무 즐겁고 재미있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여행을 하면서 응당 받아들여야 할 지루함이나 시행착오 같은 것들이 있다는 걸 아니까.



4.
왜 사서 고생일까.
여행을 하면서 이런 질문을 한번쯤 안 해봤을 리 없다. 내 돈과 시간을 써 가면서,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나 자신을 발견할 때. 함께 여행을 떠난 이들과 삐걱거릴 때. 내 욕구를 누르고 양보해야 할 때. 체력의 한계를 극복해야 할 때. 아프고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 오늘 하루 어딜 가고, 뭘 보고, 뭘 먹을지를 결정하는 일이 진짜 마냥 ‘일’처럼 여겨질 때. 헤아리자면 끝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은 삶의 어느 곳에서나 맞닥뜨리게 된다.


나는 왜 살까.

왜 이 일을 선택했을까.

왜 오랫동안 이 모양 이 꼴일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하게 하는 삶은 나쁘지 않다.

늘 깨어있게 만드니까.
여행을 하면서 우리가 늘 깨어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


우리가 사서 고생하는 이유.





홍아미

20살 홀로 떠난 인도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25개국 100여 개 도시를 누빈 중증의 여행중독자, 라고 하지만 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하는 30대 여자입니다. 거창한 세계일주도, 럭셔리 여행도 아닌, 그저 일상 속에 내가 원하는 여행을 녹이는 법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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