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미가 Dec 20. 2017

좀 이상한 사람들


얼마 전 술자리에서 ‘난년’이라는 소릴 들었다. 보통 행실이 난잡한 여자에게 쓰는 말이지만, 맹세컨대 나는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 그저 스무살 때 혼자 인도배낭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길 했을 뿐. 어감이 세긴 하지만 ‘대단하다’는 의미로 나온 소리라는 걸 알기에 전혀 불쾌하진 않았다. 다만, 뭐 그리 대단한가. 그냥 놀러 갔다온 것뿐인데. 이런 생각.   



생애 첫 여행이 두 달 간의 인도여행이라고 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다. 물론, 참 대단한 여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태어나서 그렇게 신나고 행복한 적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후유증이 심해 어쩔 줄 몰라했을 정도니까.


인도,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 지구 상의 몇몇 곳-어쩌면 유럽과 미주를 제외한 못사는 나라-에 대한 편견이나 환상 같은 게 있다는 걸 안다. 그런 곳을 가고 싶어하고 찬양하는 종족들을 조금은 특이하게 본다는 것도. 물론 스스로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와 새삼 떠올려보니 내가 그동안 살면서 만난 ‘좀 이상한 사람들’ 중 대부분을 인도에서 만났다는 걸 깨달았다.



 1. 일단 나부터 얘기하면


나는 평범하다. 대한민국에 사는 모든 종류의 인간을 평균으로 내보면 그건 딱 나일 거다. 그런 내가 첫 여행으로 인도를 선택한 건 그냥 거기가 제일 가고 싶어서였다. 인류 4대 문명 중 하나인 인도 문명에 대한 신비로움도 있었고, 당시 봇물처럼 쏟아져 나온 ‘하늘 호수로 떠난 여행’류의 책들을 보면서 적잖은 환상도 있었고. 더럽다거나 열악하다거나 하는 얘기는 별로 귀에 차지 않았다. 나는 당시 내 삶도 충분히 더럽고 열악하다고 생각했으므로. (물론 인도는 상상 그 이상이었지만)



2. 친해지면 이상하지 않다


분명 내 또래 남자애였다. 키도 훤칠하니 크고 덩치도 좋았다. 그런데 어깨까지 찰랑거리는 긴 생머리가 눈길을 끌었다.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었다. 성균관대 건축과 1학년. 평범한 아이였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약 한달간 동행그룹이 되었는데, 친해지고 보니 그 애의 긴 생머리는 별로 이상해보이지 않았다. 머릿결 관리법 같은 팁을 주고 받기도 했다.


3. 아날로그 시대의 고집


여행이 중반에 접어들었을 때 우리는 캘커타에 머물고 있었는데, 게스트하우스 안으로 커다란 가방이 걸어들어왔다. 정확하게는 조그만 여자사람이 자기 몸집의 배는 될법한 커다란 배낭을 메고 엉금엉금 걸어들어왔다. 머리위로 30cm 쯤 삐죽 올라와 있는 커다란 배낭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우리보다 한두살 많은 언니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언니의 배낭 안은 정말이지 놀라웠는데 그 중 최고는 30여개의 CD와 시디플레이어였다. 그때가 2000년. mp3와 디지털 카메라가 도입되기 직전이었기에 다들 배낭의 꽤 많은 공간에 필름과 시디, 책 등을 넣어가지고 다니긴 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하지 않나 싶었다. 여행을 다니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듣는 게 로망이었다고 했다. 나머지 긴긴 여행동안 그 많은 시디들을 어떻게 했을까 두고두고 궁금했다.


 

4. 지금 생각해보면 다 특이한 사람들


어떤 아이는 흑백필름과 로모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오지 문화를 체험해봐야한다며 굳이 생선을 날것으로 잡아다가 꼬챙이에 꿰어 나무를 비벼가며 마찰열로 불을 붙여 구워는 사람들도 있었다. 싸고 맛있는 생선요리를 얼마든지 사먹을 수 있었는데 굳이.


어떤 여자애는 우연히 빠져든 타악기 소리를 듣고 음악을 배우느라 한달째 바라나시를 떠나지 못했고, 어떤 남자애는 캘커타 마더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입국 일자를 미뤘다. 나와 함께 여행하던 언니는 갑자기 고백을 해야겠다며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그 남자애가 있는 캘커타로 돌아가버렸다. 또 다른 언니는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채 인도에 와서는 자기는 카레가 너무 싫다며 매일 바나나만으로 연명했다. 아.. 다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다들 너무 이상하다.


  

5. 그래서 나는 평범한가?


나는 스스로를 평범하다고 생각했는데, 문득 떠올려보니 조금 이상한 구석이 없진 않았다. 한가지 예를 들면, 나는 항상 사이드백에 피리를 꽂고 다녔다. 델리의 한 노점에서 우연히 산 피리였는데, 틈만 나면 불고 다녔다.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 나는 음악적 소질이 없다. 아, 친구들은 얼마나 듣기 싫었을까. 지금 생각해보니 그렇네. 어쨌든 인도사람들은 피리를 보고 불어보라고 청하기도 했고, 그래서 그들이 모르는 ‘아리랑’이나 ‘도라지’ 같은 쉬운 음악을 들려주면 아름답다고 칭찬을 듣기도 했다. 어딘가에서는 피리 연주에 대한 답례라면서 한 인도인이 내 밥값을 대신 내주기도 했다.



6. 우리는 모두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다


인도를 첫 여행으로 선택했던 스무살들은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일상 속에서는 자신이 이상하다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고, 고치려고 노력하고, 하다못해 숨기기라도 해야 그나마 제대로 살아갈 수 있다. 인도 여행이 특별했던 것은 그 ‘이상함’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 당연함이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그 당연함이 우리를 특별하게 만든다.


‘이상한 게 당연한’ 세계에서 막 돌아온 나와 친구들은 다시 한국사회에 적응하는 데 애를 먹었다. 인도에서 매일 보라색 판초를 걸치고 다니던 남자애는 대학 캠퍼스에서도 그러고 다녔는데, 말도 못할 찐따 취급을 받았다. 나도 버릇처럼 아무데나 맨바닥에 앉았다가 친구들에게 구박을 받기도 했다. 점점 인도에서 샀던 부랑자 같은 옷들, 기괴한 액세서리를 하지 않게 되었다. 맨발로 걷거나 맨손으로 먹는 건 당연하지 않다는 것도 되새기게 되었다.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척 사는 방법을 터득하며 우리는 한국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나는 좀 이상하다. 





홍아미

20살 홀로 떠난 인도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25개국 100여 개 도시를 누빈 중증의 여행중독자, 라고 하지만 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하는 30대 여자입니다. 거창한 세계일주도, 럭셔리 여행도 아닌, 그저 일상 속에 내가 원하는 여행을 녹이는 법을 연구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서 하는 고생의 묘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