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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위 희희락락, 서핑 도전기

한 마리 새처럼, 파도 위를 날다.

by 홍아미

[Over The Rainbow]


2. 파도 위 희희락락, 서핑 도전기

; 한 마리 새처럼, 파도 위를 날다.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비치로 나갔다. 모래사장에 비치타월을 아무렇지 않은 듯 툭 던져 펴고 주저앉아 유심히 그들의 놀이를 즐겼다. 바다에 몸을 싣고 높은 파도를 온몸으로 맞서는 그들을 응원하는 내내 아슬아슬한 짜릿함과 전율은 계속되었다. 이내 탄성도 멈추지 못했다. ‘와~우’ ‘어~~어’ 그렇게 한두 시간이 흘렀고 그제야 진정 와이키키의 매력은 ‘서핑’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 나도 모르게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비치 보이스(The Beach Boys)의 ‘서핑 U.S.A’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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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흥겨움은 계속되었다.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한 번 배워볼까?’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도 떨치지 못했다. ‘몇 번 강습 받는다고 저렇게 파도를 탈 수 있겠어’라는 마음속 핑곗거리도 찾고 있었다. 하지만 되든 안 되든 해보자! 싶은 충동이 나를 강하게 이끌었다. 서핑스쿨 중 한국어가 가능한 곳을 찾았다. 다급할 때 ‘엄마!’라고 먼저 외칠게 불 보듯 뻔한 상황이라 좀 더 원활한 소통이 가능한 한국어 강사가 내게 제격이리라!



강습은 오전 9시부터 샌스 수시 비치 쪽에서 진행되었다. 바다와 나란히 붙어 있어 공원에서 이론 수업을 듣고 바로 바다로 나간다. 샛노란 머리를 질끈 묶은 강사는 한국인보다 미국인에 가까웠다. 어린 시절 이민을 온 탓에 ‘한국어 가능’일 뿐이지 미국인이다. 어찌 되었건 오늘은 이 강사에게 비루한 몸과 운동 신경을 맡겨야 한다.

어떤 스포츠이든 준비 운동이 중요한 법. 간단한 스트레칭부터 핫둘 핫둘. 바다가 아닌 잔디 위에서 하는 지상 교육은 내게 무한 자신감을 선사했고 와이키키를 향해 잔디에 누워있는 서프보드는 마치 양탄자처럼 보였다. ‘어서 빨리 나를 바다 위로 데려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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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드 위에 바르게 서는 방법과 자세, 바다를 향해 팔 젓는 방법(펜들링) 등을 익히다 보니 마음은 벌써 파도를 몇 번이고 탄 사람이다. 한국에서 오아후로 온 지 2년 되었다는 12살짜리 남자아이와 함께 수업했다. 몸이 그닥 날렵해 보이진 않았지만, 이틀째 서핑 강습 중이라며 약간의 자만심과 함께 내게 파이팅을 외쳤다. 그렇게 야심찬 각오를 다지며 바다로 나섰다. 휴양지에 갈 때 한국인들의 전매특허라 할 수 있는 래시가드와 비치 팬츠를 입고 바다에서는 무조건 블링블링 한 것이 최고라며 형광 아쿠아 슈즈를 신었다.


바다에 들어가기 전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들이켰다. 그 사이 강사가 들고 온 서프보드가 마치 비단처럼 바다에 스며들었다. 철썩이는 파도에 보드가 찰랑찰랑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꽃잎이 바람에 춤추는 듯 보였다. 가는 모래가 발을 감싸는 따스한 기운은 온데간데없이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고 싶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빨리 서핑을 타고 싶은 마음이다. 서프보드의 노우즈(Nose, 가장 뾰족하거나 둥근 부분)가 바다를 향하게 하고 노우즈 반대 방향에 있는 테일(Tail) 쪽에 걸린 리쉬코드(leash Code, 보드 위에서 떨어지더라도 위험하지 않도록 발목과 보드를 이어주는 생명줄 같은 친구)를 발목에 부착하고 출격 준비를 마쳤다. 시작이 반이라 했던가!


서프보드 데크(눕거나 발을 디디는 부분)에 누워 저 멀리 파도를 향해 힘껏 펜들링을 했다. 이론 교육 때 배운 것처럼 턱은 살짝 들어 전방을 주시하고 가슴과 다리는 데크 위에서 든 후 힘껏 펜들링 했다(물장구 수준 아니다.) 바다를 향하는 동안 몸 후면으로 내리쬐는 햇볕도 기분 좋았다(나중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진 이땐 알지 못했다.) 꽤 많이 나온 것 같은데 겨우 800m 정도 바다로 나온 것 같다. 얼마쯤 지나지 않아 강사가 “노우즈 방향을 공원 쪽으로 돌려!”하고 외쳤다. ‘오! 이제 파도를 타려나 보다.’ 내심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을 만큼 콩닥거렸다. 기대감도 잠시 ‘근데 언제 파도를 타야 하는 거지?’라는 걱정이 생겼다. 고작 30분 배운 내가 무슨 파도를 구별할 수 있을까. 그럼 그렇지! 파도를 구별하는 건 강사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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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시작된다. 유후! 데크에 누워 있다가 강사의 구령과 함께 일어서기 동작이 시작된다. 양팔을 뻗어 보드를 살포시 누르며 상체를 세운 후 재빠르게 몸을 45도 측면으로서 돌린다. 이때 무릎을 45도쯤 세운다. 허리를 곧게 펴고 양팔을 앞뒤로 쭉 편다. 잔디 위에서 교육받은 과정을 재빠르게 곱씹으며 바람을 가로지르는 나를 잠시 그려봤다. ‘자! 이제 바람을 온몸으로 느껴 보는 거야!’


위 과정은 꽤 짧은 시간 내 이뤄지는데 실전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아니 어려웠다. 출렁이는 파도 위에서 중심을 잡는 것도 자세를 취하는 것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바닷속에 자석이라도 있는 듯 바다는 자꾸만 내 몸을 끌어당겼다. 일어서기는커녕 연거푸 계속 물을 먹다 보니 물배가 차는 듯싶고, 온몸이 흐물흐물 지쳐갔다(역시 물놀이는 힘들다). ‘안되나 보다’하고 포기하고 보드 사이드에 양다리를 걸치고 앉아 12살 소년을 바라봤다. ‘역시 나이와 경험은 속일 수 없는 모양이다.’라고 혼자 중얼거릴 때쯤 강사와 눈이 마주쳤다.


‘아! 강사님 ㅠ.ㅠ’ 강사도 오죽 답답했을까. 물에 지쳐 있던 나를 아무 말 없이 지켜보던 강사님은 조금은 격양된 목소리로 “할 수 있어. 우리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했다. 힘들었지만 한 번이라도 바람의 ‘맛’을 느끼게 해주려는 강사님 때문에 남은 힘을 다했다. “자~준비하고. Up up up up!” 무릎과 다리가 후덜덜 떨려왔지만, 격려 때문인지 수많은 실패 덕분인지 조금씩 자세를 취해가며 단 몇 초씩 바람을 느낄 수 있었다. 건방지지만 ‘이 맛에 서핑을 타는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렇게 두 시간쯤 지났을까 강사님이 “거 봐 되잖아. good!”이라는 감탄사가 나왔다. 창피했지만, 그 창피함보다 파도가 온몸을 빌어주며 바람을 느끼는 그 기분이란 표현할 수 없을 만큼의 큰 희열과 황홀감 그 자체였다. 실력을 떠나 그 순간은 마치 내가 그곳의 주인공인 것 같았다. 한 번의 수업으로 새처럼 자유롭게 훨훨 날 수는 없었지만, 약간의 파도와의 시간이 내게 준 교훈은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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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를 기다리고, 기다린 파도에 부딪혀보면 알 게 되는 것. 그건, 생각보다 그리 아프지 않다는 것, 그래서 도전해볼 만하다는 것, 자유를 만끽하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과 노력하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시원한 바람은 한 줄기 청량음료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람의 방향에 따라 순간에도 많은 것이 바뀐다는 것.


바다 위에서 서프보드 데크에 누워있다 보니 짧은 팬츠를 입은 하체 후면이 새까맣게 익어 있었다. 선크림을 바른다고 발랐지만, 괜한 짓이었나 보다. 새까맣게 익은 내 다리는 꽤 오랫동안 서핑의 추억을 머금고 있었다. 조금 늦었지만, 이 지면을 빌려서라도 ‘808로코’ 용 강사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푸른 바다 위 불량 학생을 감싸 안으며 포기하지 않아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그리고 언젠가 다시 그 바다 위를 날아오르는 나를 기대해보며 와이키키 비치를 지키고 있는 듀크 카하나모쿠*에게 샤카** 사인을 날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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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크 카하나모쿠(Duke Kahanamoku) : 하와이 출신의 수영 선수로, 1912년 스톡홀름, 1920년 앤드워프 올림픽의 수영 금메달리스트이다. 근대 서핑의 창시자로 알려졌으며, 서핑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장본인

**샤카(Shaka) : 엄지와 새끼손가락을 펴고 나머지 가운데 세 손가락은 접는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 사는 하와이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을 때 쓰던 수화였는데 서핑 문화로 넘어와 트레이드 동작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안녕’ 혹은 ‘배려’나 ‘존중’의 의미를 담는 손동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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