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꼈던 낯선 감정의 정체

by 홍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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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아란 하늘, 저녁놀 빛을 머금은 오렌지 빛깔의 구름, 선선한 공기, 수천 년간 수만 번 다져졌을 단단한 길바닥. 그 위를 성큼성큼 걷는 수많은 행인들의 모습을 보면, 그리고 그들 사이에 섞여 함께 걷고 있는 나 자신의 존재감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땅을 딛고 중력을 느끼며 걷고 공기를 마시며 하늘 아래 사는 건 다 마찬가지인데 하늘과 땅 사이 얼마나 다양한 세상이 존재하는 것인지 갑자기 충격적으로 다가올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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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이고 부정적이었던 나의 어린 시절을 기억한다. 당시 나의 유일한 구원은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 말고, 어딘가 또 다른 세상이-멋지고 화려한- 날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는 망상 속에 있었다. 그러니 자연스레 소설과 만화 등 가상세계로 빨려 들어갈 밖에. 그러나 아무리 해가 질 때까지 책을 읽고 멍한 눈빛을 한 채 상상 속을 헤엄쳐 나가도 결국 돌아오면 지독한 현실뿐.



대학생이 되어 가장 좋았던 건, 학교를 핑계로 매일 서울에 갈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인천과 서울 사이에는 물리적인 거리보다 심리적인 거리가 더욱 깊고 멀게 놓여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복잡한 마을버스를 타고, 더더욱 붐비는 부평지하상가를 건너 1호선 전철에 몸을 맡기는 시간. 그 지옥 같은 시간을 견디고 지상으로 나오면 인천과는 다른 분위기의 활기가 넘치는 신촌 거리가 눈앞에 펼쳐졌다.-실상 크게 다를 것도 없건만, 당시 열아홉 소녀에겐 공기마저도 다르게 느껴졌다.

아무 할 일없이 신촌 거리를 걷기도 하고, 민들레영토에서 괜히 시간을 죽이기도 하고, 홍익문고나 공씨책방에서 책을 뒤적이기도 했다. 그 시간이 너무 좋았다기보다, 내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서 잠깐 머무는 것 같은 낯선 만족감 같은 게 있었다. 물론 이마저도 4년 내내 들락거리며 곧 사라져 버렸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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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몇 가지 세계에서 살고 있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집에서의 내 자아와 바깥세상에서의 내 자아가 완전히 다른 사람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니까 집안에서 나를 만나는 가족들은 바깥세상의 나를 전혀 모르고 있는 것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 이러한 느낌은 여행지에서 더욱 극대화된다. 같은 레스토랑에서 주문을 하고 밥을 먹고 있어도,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에 함께 몸을 싣고 있어도, 드넓은 광장 안에서 함께 뒤얽혀 있어도, 좀처럼 그들의 세상에 내가 일원으로 함께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에서의 내 삶을 모른다. 나 또한 마찬가지. 골목 뒤편, 계단참에 앉아 담배를 피우는 종업원의 권태로운 표정에서, 남편인지 사장인지 모를 남성에게 잔소리를 퍼붓는 호텔 아주머니의 화난 목소리에서 아주 잠깐 그들의 삶을 상상해볼 뿐이다. 사실 그건 순간적으로 지나가는 영화의 한 장면 같은 느낌이어서 나 같은 여행자에게는 흥미로운 볼거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닐 때가 많다. 나 또한 그들에게 쉴 새 없이 다녀가는 아시안 여행자들 중 하나일 뿐 한국에서의 나의 일상이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하지 못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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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언어를 배워서 그들과 대화를 나눠보면 좀 더 깊이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나의 언어, 한국어는 정말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지만 통용될 수 있는 영토가 너무 좁아서 아쉽다. 그러나 언어가 같다고 하여 같은 세계에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좁디좁은 영토 안에서도 우리는 너무 많은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만 머물고 있다. 같은 언어로, 같은 장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와중에도 느끼곤 한다. 너와 나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구나. 그걸 우리는 ‘말이 안 통한다’라고 표현하지만, 아니다 그냥 세계가 다른 것이다. 그 다른 세계에서는 보이는 곳이 여기선 보이지 않고, 같은 소리를 들어도 다르게 이해한다. 이 세계에서는 아름답고 눈물겨운 것이, 그 세계에서는 오글거리고, 진부한 것이 되어 버린다. 내가 살고 있는 세계가 좁아지고 좁아져서, 결국 나 혼자밖에는 설 자리가 없어지는 순간, 그때 느끼는 감정을 우리는 ‘외로움’이라 부른다. 아무리 곁에 사람이 많아도, 같은 한국말로 떠들어도 사무치듯 외로운 것은 나와 같은 세계를 공유하는 이가 세상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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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좋다는 곳을 찾아 그렇게 돌아다니면서도 한 번도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던 이유는 여기가 내 세계가 아니라는 걸 이미 깨달은 탓이다. 세계란 공간에 국한한 개념이 아니라 어떤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살아가느냐에 따라 넓어지기도, 좁아지기도, 아름다워지기도 추해지기도 한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나는 남미 여행을 다녀온 2015년 친구들과 함께 합정동에 작은 아지트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함께 일하고 놀고 궁리하며 아름다운 연대의식을 점차 확장해나가고 있다. 세 개 방 중 하나를 작은 도서관처럼 만들어 원하는 이들에게 책 읽고 글 쓰는 공간으로 개방하기도 하고, 다양한 모임과 세미나를 진행하기도 한다. 돌아가며 요리를 하고, 서로를 걱정하고 고민을 나누기도 한다. 물론 다툼이 없을 리 없다. 그러나 어쨌든 그렇게 또 하나의 아름다운 세계가 탄생한 셈이다. 이 또한 나에게는 여행과 다를 바가 없다.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을 넘어, 내가 꿈꾸는 세상을 창조해내는 것. 나의 여행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





DSC01917.JPG 이번 칼럼과 함께한 사진은 모두 포르투갈 북부 도시 포르투(Porto)의 정경들입니다:)







글, 사진 | 홍아미

여행 에세이스트. <지금, 우리, 남미> 저자. 20살 홀로 떠난 인도 배낭여행을 시작으로 25개국 100여 개 도시를 누빈 중증의 여행중독자, 라고 하지만 실은 오늘의 대한민국을 평범하게 살아가는 일하는 30대 여자입니다. 거창한 세계일주도, 럭셔리 여행도 아닌, 그저 일상 속에 내가 원하는 여행을 녹이는 법을 연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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