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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아미 Aug 24. 2018

하와이로 출장 갑니다

행복한 밥벌이



어-우. 완전 부러워. 출장을 하와이로 간다니!


속마음은 ‘네가 대신 가실래요?’ 하고 답하는 중이다. 몇 차례 여행 끝에 하와이 가이드북 작업을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여행으로 즐기는 것과 가이드북 준비를 하며 누리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지만, 솔깃한 제안을 거절할 까닭은 없었다. 콘텐츠를 기획하고 취재해서 글을 써 밥벌이를 했던 터라 어려움이나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 그때만 해도 벌써 4번째 하와이 여행을 마쳤으니, 그간의 경험을 또 다른 여행자와 나누는 것도 꽤 의미 있는 일이라 여겼다.


겨울바람의 끝자락이 옷깃을 스칠 무렵 계약서에 서명하고 너도나도 꼬까옷 입고 새 출발을 하는 3월, 나는 하와이 가이드북으로 출근을 시작했다. 목차 순서대로 하나씩 써 내려가며 하와이를 떠올리니 금세 추억놀이에 빠져들었다. ‘아 또 가고 싶다’ 하는 마음에 약간 짜증도 났지만, 그것마저 즐거웠다. 추억을 곱씹으며, 자료를 찾고 경험한 것에 살을 보태니 한 장씩 한 장씩 쓴 종이는 3개월이 되자 A4 400매 가까운 분량이 되었다. 끼니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니터 앞에 있었으니, 학창 시절 이렇게 공부했으면 아마 서울대 아니 하버드 문턱도 넘을 수 있지 않았을까. 아니 미국 대학 하와이 학과가 있다면 수석 입학·졸업을 따놓은 당상 아니겠는가!



초안이 마무리되고 가이드북 작업을 빌미로 하와이로 떠났다. 분명 출장이다. 현지에 거주 중인 분과 공동작업을 했던 터라, 혹시 놓친 곳은 없는지, 먹어보지 못한 음식도 확인하고, 드라이브 루트도 점검할 요령이었다. 도착 첫날 와이키키에 새로 생긴 루프탑으로 향했다. 평소에 좋아하는 리조트룩 브랜드에서 만든 레스토랑과 바였다. 1층 매장, 2층·3층에 레스토랑과 바를 만들어 쇼핑과 식사가 한 번에 가능했다. 루프탑 구조로 된 3층 바에 들어서니 와이키키의 저녁이 나를 반겼다. 어둠이 자욱하게 드리워져 있지만, 아직 남아 있는 몇몇 구름 조각은 더 선명하게 빛났다. 바에서 가장 좋아 보이는 자리가 비어 있어 잰걸음으로 그 자리에 향했다. ‘아, 좋다’ 푹신한 패드와 쿠션이 깔린 의자에 앉아 신발을 벗었다. 바닥에는 고운 모래가 가꿔졌다. 모래사장에 발을 묻었다가 이내 발가락을 세우고 발을 앞으로 뒤로 그네 타듯 왔다 갔다 한다.


살랑살랑 불어대는 바람에 나부끼는 야자수, 흥을 돋우는 펍 음악, 멀리 들려오는 바닷소리, 사람들의 기분 좋은 지저귐과 웃음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젖혔다. “아~ 저 정말 하와이로 출장 온 게 맞군요!”하고 함께 있던 지인들에게 외쳤다. 그사이 주문한 칵테일이 테이블 위에 놓였다. 꾸-울꺽. 블루 하와이를 한 모금 삼켰다. 몸 안으로 푸른 바다가 들어오는 기분이다. 그렇게 내 생애 첫 하와이 ‘출장’의 첫날밤이 저물었다.


                          <사진 출처 https://www.hawaii.com/oahu/dining/tommy-bahama-restaurantr-bar-store>



그러고 1년 뒤. 가이드북 디자인 작업까지 끝이 났다. 책이 나오기 전 다시 한번 점검하는 과정을 두기로 했다. 가제본 한 책을 들고 미련하단 소리까지 들으며 순서대로 하나하나 일일이 다 눈으로 확인했다. 여행지의 기본 관광 장소라 크게 변함이 없었지만, 마치 탐험가처럼 반복된 경험 속에 새로운 것을 찾고 싶었다. 첫 출장 때 기분 좋은 콩닥거림과 칵테일의 감미로움은 온데간데없다. 숙소로 돌아오면 다음 날 일정과 동선을 점검한 뒤 맥주 한 캔도 해결하지 못했지만 마치 술 취한 사람처럼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


출장 4일째 되던 날인가. 카우아이 북쪽의 하날레이만을 살펴보고 있는데 갑자기 뚝-뚝 거리더니 이내 소나기가 무섭게 내리쳤다.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찬찬히 옮기다 빗줄기가 거세져 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날 부르는 듯해 혹시나 하고 뒤돌아봤다. 내 머리에 있어야 할 반다나가 흙탕물 속에 내동댕이쳐져 있는 것 아닌가. 흙탕물에 빠진 반다나는 세차게 떨어지는 비에 씻어 냈더니 금세 깨끗해졌다. 



차에 시동을 켜고 에어컨을 작동했다. 자동차 앞 유리로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땀인지 비인지 모를 습함을 말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수많은 빗방울은 와이퍼가 무안해할 만큼 멈출 줄 몰랐다. 계획된 일정은 마쳐야지 싶어 다시 길을 나섰지만, 몇 분 가지 못해 다시 비에 갇히고 말았다. ‘좀 쉬어가’라는 하와이의 배려인가! ‘나 원래 비 많이 오는 곳이야. 알지?’하고 다시 한번 알림인가! (카우아이는 연중 350일가량 비가 내리는 세계 3대 다우 지역이다) 혼자서 모든 걸 소화하다 보니 쉽게 지쳤다. 종일 대화를 하거나 수다를 떨 사람이 없으니 혼잣말이 늘어났고 피곤함에 외로움까지 밀려왔다. 헛헛한 마음을 한식으로 채울 수 있을까 싶어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에 갔다. 몇 해 전 주인 이모인 ‘병호 엄마’와는 통성명을 나눴던 터이다.


누군가 한국어로 반갑게 맞이해주리라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홀에 가득한 손님들의 음식을 만드느라 분망했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하면서 겨우 인사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3주 가까이 4개 섬을 돌며 재확인하는 작업은 녹록지 않았다. 커피와 에너지 음료, 넘치는 카페인으로도 감당되지 않은 몸의 피로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온몸은 주럽 들었다. 수화기 너머 남편은 며칠 쉬다 오라고 했지만, 그것마저 귀차니즘으로 다가왔다. 다 정리하고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하와이에서 내가 이러다니 믿을 수 없었지만, 집이 그리웠다.




몸도 마음도 체력도 게다가 환전해간 총알도 바닥이 났다. 돌아오는 날 공항에서 나는 최후의 선택을 했다. “혹시 제 티켓이 마일리지로 좌석 업그레이드가 가능한 티켓이에요?”


다행히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좌석을 침대 삼아 몸을 뉘었다. 갯벌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않은 발처럼 헤어 나올 수 없는 피곤함에 항공권 일반석을 유상으로 구매하고, 거기에 마일리지로 좌석을 업그레이드하는, 항공사에서 가장 호구로 본다는 고객을 자처했다. 출장 중 틈틈이 읽어야지 하고 챙겨간 책 세 권은커녕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겨우 한 권 보았다.


해외 출장 자체가 영광스러웠던 시대도 있었고, 한때는 해외로 출장 가는 친구를 부러워했던 적도 있다. 심지어 요즘도 힘들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은 부럽다. 하지만, 출장은 여행이 아닌 일이다. 회사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데 일로 떠나는 건 쉬울 리도 편할 리도 없다. 하와이 출장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하와인 파라다이스야!’하고 외쳐봐도 출장은 출장일 뿐이고, 정신이 가출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래도 위안으로 삼는다면, 내가 사랑하는 하와이를 나만의 방법으로 기록할 수 있다는 것, 여행 가방을 열면 코나 커피, 마카다미아넛 초콜릿, 마우이 브루잉 캔맥주가 기다린다는 것, 그 행복함이다. (몇 번 계속 가다 보면 하와이 출장에도 기술이 생기려나! )








글, 사진 | 박성혜

<오! 마이 하와이> 저자, 사보를 기획하고 글을 쓰는 에디터. 꿈꾸지도 않았던 여행지, 하와이에서 사랑에 빠졌고 하와이 여행을 통해 여행하는 법을 새로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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