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는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감정일까, 아니면 배우고 익혀야만 얻을 수 있는 지혜일까? 나는 자비가 우리 모두에게 내재된 씨앗과 같다고 생각한다. 이 씨앗은 환경과 경험, 그리고 우리의 의지에 따라 싹을 틔우기도 하고, 그렇지 못한 채 잠들어 있기도 한다. 그러니 자비는 누군가의 가르침을 통해, 또 스스로의 깨달음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이 아닐까.
몇 해 전, 출근길에 우연히 마주친 노숙자가 있었다. 그는 낡은 옷을 입고 허름한 종이컵을 손에 들고 있었다. 바쁜 발걸음 속에서도 나는 그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쩐지 안쓰럽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머니를 뒤적이며 잔돈을 꺼내려는 순간,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순간 굳어버렸다. 그의 밝은 목소리와 눈가에 번지던 미소는, 내가 품었던 동정심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를 바라보며 느꼈던 감정이 자비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나와 다르지 않았다. 내가 상상했던 ‘불쌍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나와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바람을 느끼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자비의 본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자비는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상대를 나와 동등한 존재로 바라보는 데서 출발한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나에게 무겁고 크듯, 타인의 고통도 그들에게는 같은 무게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자비는 우리가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의 아픔과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관점이다.
하지만 깨달음은 자비의 시작일 뿐이었다. 자비는 훈련과 실천이 필요한 삶의 방식이었다. 나는 먼저 나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기 위해 노력했다.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완벽하려고만 했던 나를 용서하고, 더 이상 나 자신을 몰아세우지 않기로 결심했다. 아침에 거울을 보며 “오늘도 괜찮아, 잘하고 있어”라고 속삭이거나, 실수를 저지른 날에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어”라며 나를 다독였다. 이런 작은 변화들은 어느새 나를 바꾸어 놓았다. 내가 나 자신을 돌볼수록, 다른 이들에게도 더 따뜻한 마음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자비는 그리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을 때, 그 아이의 감정을 그대로 받아주는 것. 힘들어 보이는 동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 그리고 나아가, 내가 가진 것을 조금이라도 나누려는 작은 노력이 자비일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자비는 무궁무진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자비를 베풀 때 내 마음도 치유된다는 것이다. 과학자 존 카밧진은 자비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면역력을 강화한 사례를 제시한다. 그의 연구는 자비가 단순히 타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에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결국 자비는 나와 타인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이며, 모두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이 아닐까.
나는 밤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자비란 별빛과도 같다고. 한 사람의 자비는 작고 희미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 빛들이 모여 온 하늘을 물들일 때 세상은 밝아진다. 어쩌면 자비는 우리 삶 속에서 매일 일어나는 작은 기적일지도 모른다. 타인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마음, 나 자신의 고통을 품고 보내주는 마음. 그 모두가 자비라는 이름 아래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오늘도 나는 자비를 배운다. 배운 만큼 실천하고, 실천하며 다시 배운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우리 마음속 자비의 씨앗은 자라고 있다. 언젠가 그 씨앗이 커다란 나무가 되어 모두에게 그늘을 만들어 줄 때, 우리는 자비가 만들어 낸 세상의 아름다움을 비로소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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