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의 흔적-낡은 분필 한조각

by 코난의 서재


내 책상 서랍 깊은 곳엔, 반쯤 닳은 분필 한 조각이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왜 그런 걸 아직 갖고 있느냐”고 물었었지만, 나에겐 그 작은 흰색 분필이 삶의 방향을 바꾼 하나의 ‘표지판’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문학 시간.

나는 늘 뒷자리에 앉아 시큰둥한 얼굴로 칠판을 바라보는 학생이었다.

공부도 인생도, 그땐 별로 흥미롭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국어 선생님은 어느 날, 갑자기 조용히 말했다.

“소연이, 글 참 잘 쓴다. 그냥 넘어가기 아까워.”

그 한마디에 나는 처음으로, ‘내가 뭔가 잘할 수도 있는 존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 선생님은 내가 쓴 글을 빨간 펜으로 정성껏 읽어주시고,

때로는 잘 쓴 구절에 하트를 그려 넣기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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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흔적들이 지금도 교과서 귀퉁이에 남아 있다.

졸업하던 날, 선생님은 내 손에 분필 한 조각을 쥐여주며 말씀하셨다.

“글이든 삶이든, 계속 써 나가. 지워져도 괜찮아. 다시 쓰면 되니까.”

그 분필은 그 후, 내가 글을 쓸 때마다 나를 다잡는 작은 부적이 되었다.


쓰다 막히는 날이면, 조용히 그 조각을 손에 쥐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지워도 괜찮다는 말, 다시 쓰면 된다는 말이 그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웠다.

그 분필은 이제 많이 닳아서 없지ㅏㄴ, 그 안에 담긴 선생님의 가르침은

내 삶에 또렷한 줄을 긋고 있다.


그리고 나는 그 따스함을 이어, 지금 누군가의 마음에 또 하나의 줄을 긋고 있다.


한 사람의 말이, 또 한 사람의 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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