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강머리 앤, 내 마음의 첫 번째 친구이자 선생님
국민학교 시절, 일요일 아침이면 나는 TV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빨강머리 앤.
수줍고 조용한 아이였던 나에게 앤은 화면 너머에서 반짝이는 말들을 쏟아내는 신기한 존재였습니다. 자꾸 실수를 하고, 엉뚱한 상상에 빠지고, 때론 울다가도 금세 환하게 웃어버리는 그 앤이 좋았습니다.
앤을 더 알고 싶어 도서관에서 책을 찾았고, 읽는 내내 마음 한쪽이 간질간질해졌습니다.
책을 덮고 난 뒤, 나는 앤을 ‘모셔두고’ 싶어졌습니다. 그렇게 처음 산 책이 『빨강머리 앤』이었고, 그 책은 지금도 내 책장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나는 앤이 살던 에이번리 마을의 초록지붕 집, 다이애나와의 우정, 매슈의 다정한 침묵, 마릴라의 퉁명스러운 사랑을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 앤은 책 속 인물이 아니라 내 마음속 한 챕터가 되었습니다.
나는 앤과 관련된 책, 피규어, 엽서, 스티커를 하나둘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아이처럼 굴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지켜내는 마음’이라는 걸요.
앤은 내게 말합니다.
“상상력이 있는 한, 우리는 절대 혼자가 아니에요.”
지금도 일상이 지칠 때면, 나는 가만히 앤의 말을 꺼내 듣습니다.
책 속의 스승은 그렇게 내 곁에 남아,
오늘도 조용히 말해줍니다.
괜찮아, 내일은 아직 아무런 실수도 없는 새로운 날이니까.
“앤을 안다는 건, 내 마음 어딘가에 언제든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