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마음을 채우는 단어는 ‘여백’이다.
겨울이 끝나가는 길목에서 나는 문득 빈 공간의 소중함을 느낀다.
온 세상이 하얗게 덮였던 겨울은 모든 것을 꽁꽁 숨겨두었다.
눈 속에 묻힌 땅도, 차가운 바람에 가려진 햇살도,
겨울은 그렇게 모든 것을 가둬두고 꽉 채워버렸다.그런데 봄이 오려나 보다.
살짝 열린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다르다.
차갑지 않고, 따갑지도 않다.
부드럽고 포근한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면서,
묘한 설렘을 남겨두고 간다.
그 바람이 다녀간 자리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저 비워진 공간, 가볍고 맑은 공기만이 남아 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봄이 오려면 먼저 비워야 한다는 걸.
겨울 내내 쌓아두었던 불안과 걱정,
놓지 못하고 움켜쥐고 있던 미련들,
그 모든 것들을 내려놓고 나서야
비로소 봄이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는 걸.
문득 집안을 둘러보았다.
겨울 동안 나도 모르게 쌓아두었던 물건들,
언젠가 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버리지 못한 것들,
아까워서, 혹은 미련이 남아서 품고 있던 것들이 가득했다.
그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 놓으며 생각했다.
‘여백이 있어야 바람이 지나갈 수 있지.’
창문을 열고 방 안 가득 쌓였던 공기를 내보냈다.
묵은 먼지와 답답했던 기운이 빠져나가고,
맑고 깨끗한 공기가 들어왔다.
비워내니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햇살이 닿는 자리, 그림자가 드리우는 모퉁이,
공기가 흐르는 방향까지도 느껴졌다.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으로 가득 채우고 있으면
따뜻한 바람이 들어올 자리가 없고,
새로운 희망이 머물 공간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요즘 여백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머릿속도, 마음속도, 그리고 생활 속에서도.
무언가를 더 채우려고 애쓰기보다는
조금은 비워두기로 했다.
욕심도, 두려움도, 완벽해지려는 집착도.
봄은 그렇게 빈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걸,
이제는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