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는 늘 밝았다.
밝으려고 애쓴 건 아닌데, 어느 순간 그게 ‘기본값’이 되어 있었다.
표정은 웃고 있고, 목소리는 힘이 있고, 말투도 다정한데
속은 꼭 감기기운처럼 어딘가 살짝 앓고 있는 날이 많았다.
“소연쌤은 늘 에너지가 넘쳐요.”
“힘든 일이 있어도 늘 웃고 계시네요.”
그 말들 속에 나는 더더욱 *‘그래야 할 것 같은 사람’*이 되어갔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내가 먼저 나를 그렇게 정해버린 거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그냥 오래된 습관이었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속상한 일이 있어도 집에서는 “괜찮아요”라고 말했고,
친구들 앞에서는 분위기를 망치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웃었다.
밝고 괜찮아 보여야 사랑받을 수 있다고,
힘든 내색은 민폐가 된다고,
누가 가르쳐주진 않았지만 나는 그렇게 배워버렸다.
힘들었던 어떤 날,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나 요즘 좀 지쳐. 별일 없는데도 자꾸 마음이 무거워.”
그랬더니 친구가 잠시 말을 멈추고 이렇게 말했다.
“너도… 그런 말 하는구나.”
그 말이 가슴에 박혔다.
‘너도 그런 말 하는구나’
그 말 안에,
내가 얼마나 오래 내 마음을 말하지 않고 살아왔는지,
얼마나 자주 ‘괜찮은 사람’으로 연기해왔는지가 그대로 담겨 있었다.
이제야 조금씩 알아간다.
나는 애초에 거짓말을 하려던 게 아니었다.
그저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괜찮아야 한다’는 믿음이,
내 감정을 꼭꼭 눌러왔던 거다.
아파도 웃었고,
슬퍼도 참았고,
답답해도 괜찮다고 했다.
그건 나를 속인 게 아니라,
어쩌면 나를 지키려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요즘은 아주 조금씩 다르게 말해본다.
“오늘은 좀 마음이 지쳐.”
“그 말이 내겐 좀 서운했어.”
“지금 이 순간, 난 나를 토닥여주고 싶어.”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고, 때로는 용기가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솔직함을 꺼내고 나면
속이 조금씩 가벼워진다.
감정을 꼭꼭 숨기고 살던 내 안에 작은 숨구멍이 생긴다.
‘밝아야 사랑받는 사람’에서
‘밝아도, 어두워도 괜찮은 사람’으로
나를 바꿔가는 중이다.
괜찮은 척 대신, 그냥 나로 살아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