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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보이는 등굣길

by 코난의 서재

제주도 한림읍 한림리. 국민학교 때 내 주소를 쓸 때면 늘 이렇게 시작했다. 지금은 어떤 드라마 덕분에 유명해졌다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너 말한 한림, 드라마에서 들었다"며 웃던 친구의 목소리가 어제 전화기 너머로 들려왔다.


그 말을 듣자마자 떠오른 것은 국민학교부터 중학교까지 6년 동안 매일 걸었던 등굣길이었다. 그 길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항상 왼편으로 보이던 바다였다. 계절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주던 그 바다는 어떤 날은 잔잔하게, 어떤 날은 거칠게 나를 반겨주었다. 봄에는 살랑이는 바람이 바다 내음을 실어왔고, 여름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수면이 눈부셨다. 가을이면 약간은 쓸쓸한 파도 소리가, 겨울이면 회색빛 하늘 아래 묵직한 울림이 나를 동반했다.


그 길에서 나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친구를 만났다. 그 친구의 집은 나보다 조금 더 바다 쪽에 있어서 항상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걸었다. 가끔은 서두르는 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바다를 바라보며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겼다.

그 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는 학교 앞 작은 문방구였다. 늘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있던 그곳은 다름 아닌 내 친구의 집이었고, 문방구를 운영하시는 아줌마는 바로 친구의 엄마였다. 그녀는 매일 아침 일찍 학생들을 위해 계란을 삶아놓았다.

"어서 와. 오늘은 계란 먹을래? 특별히 좀 더 큰 거 골랐어."


그 문방구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따끈한 계란을 까 먹는 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소금을 살짝 찍어 한 입 베어 물면 그 부드러운 노른자의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특히 추운 겨울날, 그 따스함은 단순한 음식 이상의 의미였다.


이 작은 문방구는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안식처 같은 곳이었다. 비 오는 날이면 잠시 비를 피하기도 했고, 시험 전날이면 친구들과 모여 마지막 정리를 하기도 했다. 친구 엄마는 늘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주셨고, 가끔은 "오늘은 특별 서비스야"라며 사탕이나 과자를 덤으로 주시기도 했다.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우리 앞에는 고입시험이라는 큰 산이 놓여 있었다. 그 당시 제주도는 비평준화 지역이었기에 고등학교에 들어가려면 시험을 봐야 했다. 시험 준비로 바빠지면서도, 그 등굣길만큼은 변함없이 함께했다. 오히려 더 일찍 만나 학교 가는 길에 시험 문제를 서로 물어보며 걷곤 했다. 문방구에서 만나는 친구 엄마는 항상 "너희들 꼭 합격할 거야"라며 우리를 응원해주셨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나는 제주시로 진학하게 되었고, 더 이상 그 길을 매일 걸을 수 없게 되었다. 새벽같이 일어나 버스를 타야 했고, 그 익숙한 바다와 문방구는 주말에만 볼 수 있는 풍경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 변화가 너무 아쉬웠다. 바다 대신 버스 창문으로 보이는 낯선 풍경, 따끈한 계란 대신 서둘러 먹는 도시락이 내 아침을 채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길의 의미는 더욱 특별해졌다. 주말에 고향에 내려가면 일부러 그 길을 걸었고, 문방구에 들러 인사를 나누었다. 친구 엄마는 여전히 그곳에서 계란을 삶고 계셨고, "어떠니? 제주시 학교는?"이라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 길은 단순한 등굣길이 아니라, 내 성장의 흔적이 담긴 소중한 공간이라는 것을.


지금도 가끔 그 길이 그립다. 왼편으로 펼쳐진 바다의 너른 풍경, 친구와의 소소한 대화, 그리고 문방구 앞에서 맛보던 따끈한 계란의 맛. 그때는 몰랐지만, 그 작은 일상의 순간들이 모여 내 기억 속 가장 따뜻한 풍경을 만들어주었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어제 친구의 전화처럼 가끔씩 그 추억을 소환하는 순간들만 남았지만, 제주도 한림읍 한림리의 그 길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 길을 걷고 싶다. 바다를 바라보며, 이제는 없을지도 모를 그 문방구 자리에 서서, 내 어린 시절의 소중한 기억들을 다시 한번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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