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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피난처

by 코난의 서재

차 안, 멈춤 속의 안식


누구에게나 숨고 싶은 순간이 있다.
복잡한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올 때, 설명하기 어려운 피로가 마음을 덮칠 때, 나는 조용히 차에 오른다. 차 안은 어쩌다 보니, 아니 어쩌면 아주 천천히 내게 가장 편안한 안식처가 되었다.


차는 움직이는 공간이지만, 정작 그 안에서 나는 멈춘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켜는 순간, 엔진이 낮게 울리는 소리는 마치 내 마음의 박동처럼 잔잔하게 퍼진다. 히터를 틀면 따뜻한 바람이 느릿하게 손끝을 감싸고, 라디오에서 흐르는 음악은 말 대신 감정을 어루만진다. 밖은 여전히 분주하지만, 차 안만큼은 고요하다. 마치 세상과 나 사이에 얇은 막 하나가 쳐진 것처럼, 외부의 소음은 희미해지고, 내면의 소리는 또렷해진다.


가끔은 도로 옆에 차를 세워둔 채, 그저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다. 흐르는 구름, 지는 해, 빗방울이 유리창을 타고 흘러내리는 장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이 시간 속에서, 나는 온전히 나 자신으로 존재할 수 있다. 엄마도, 아내도, 직장인도 아닌, 그저 ‘나’라는 이름 하나로 충분해지는 순간이다.


왜 하필 차 안일까 생각해 보면, 그것은 이 공간이 ‘단절’과 ‘연결’ 사이 어딘가에 있기 때문인 듯하다. 외부와 단절되어 있지만 완전히 고립되지 않고, 나 자신과는 더욱 깊이 연결되는 곳. 그 안에서 나는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할 수 있다. 울컥 올라오는 눈물을 흘려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공간. 마음의 맨살을 감출 수 있는 부드러운 덮개 같은 곳이기에, 차 안은 나의 안식처가 되었다.


그곳에서 나는 때로 아무 말 없이 운다. 때로는 음악에 맞춰 따라 부르며 웃기도 한다. 감정들이 고요히 흘러가고, 그 끝에 남는 것은 조용한 안정감이다. 마치 감정의 물결이 잔잔해진 바다처럼. 그리고 어느새 나는 다시 창문을 열고, 방향 지시등을 켠다. 멈췄기에 다시 나아갈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삶이 벅차오를 때마다 나는 차 안으로 들어간다.

그곳은 멈춘 듯 달리고, 달리는 듯 멈춘 공간.
그리고 나는 그 안에서 스스로에게 가장 정직해진다.


때로 인생은 목적지가 아니라,
숨 쉴 수 있는 정차지 하나로 충분하다는 것을
차 안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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