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우리가 살아갈 집 앞에서
아직 이사는 하지 않았지만,
나는 요즘 자꾸만 그 집을 상상합니다.
햇살이 천천히 계단을 타고 내려오는 아침,
서로 다른 방에서 각자의 하루를 준비하다
거실에서 마주치는 조용한 눈빛,
그리고 따뜻한 밥 냄새가 퍼지는 저녁.
이제 우리 아이들은 많이 자랐습니다.
딸은 스무 살,
혼자서도 씩씩하게 세상을 마주할 준비를 하고 있고
아들은 중학교 3학년,
언제 그리 자랐나 싶게 키도, 마음도 부쩍 컸습니다.
이 집은 더 이상 아이들을 키우기 위한 집이 아닙니다.
이제는
‘함께 자라온 우리가, 조금은 달라진 서로를 배려하며 살아갈 공간’이 될 거예요.
서로의 시간은 점점 다르게 흐르겠지만,
그 다름을 존중하며 함께 머무는 연습을
이 집에서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수직으로 나뉜 층마다
가족의 이야기가 조용히 스며들겠죠.
한층 한층, 하루하루
우리가 쌓아갈 삶의 무늬처럼.
이 집에선
누군가를 돌보는 일만으로 하루가 끝나지 않기를,
나 자신을 들여다볼 여유가 생기기를 바랍니다.
작은 창가에 기대어 책을 읽고,
텀블러에 따뜻한 차를 따라 한 모금 마시는 것만으로도
참 괜찮은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이들은 점점 독립적인 존재가 되어가고
나는 이제 그 아이들의 '엄마'로만이 아니라
다시 ‘소연’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려 합니다.
이 집은 그 새로운 시작을 다정히 품어줄 것 같아요.
문턱은 아직 넘지 않았지만,
우리 가족은 벌써 마음으로 그 집에 머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