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우리 집 옥상에는 작은 비밀 공간이 있었다.
‘비밀’이라고 하기엔 허술하기 짝이 없는 곳이었지만, 내겐 세상 누구보다 안전한 아지트였다.
그 옥상은 콘크리트 바닥에 빨랫줄이 길게 걸려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녹이 슨 철제 의자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지붕을 덮은 것도, 벽이 있는 것도 아닌 텅 빈 공간. 하지만 나는 그곳을 나만의 방처럼 여겼다. 사람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 숨을 크게 들이쉬고 마음껏 울 수 있는 곳.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그곳을 오르던 오후들이 기억난다. 학교에서 속상한 일이 있거나, 엄마의 꾸중을 듣고 마음이 쪼그라들었을 때면 나는 조용히 계단을 올라가 옥상 철문을 열었다.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앉아, 한참을 하늘만 바라보았다. 그 시절의 나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입술만 꼭 다물고 있었다. 대신 마음속 이야기들을 바람에게 흘려보내며 위로받았다.
옥상 구석, 그 낡은 의자 위에서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울어도 괜찮은 공간. 아무 말 없이 있어도 되는 공간.
어쩌면 그때 나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내 감정과 함께 머무는 법'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옥상은 내 감정의 피난처이자, 나라는 사람을 조금씩 알아가게 해준 자리였다. 사람들 틈에선 늘 씩씩해야 할 것 같고, 울지 말아야 할 것 같았지만, 그곳에서는 그런 역할을 잠시 벗어놓을 수 있었다.
그 시절 나의 작은 비밀 장소.
거기서 나는 어린 마음으로 나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다.
다 큰 지금도, 마음이 복잡한 날이면 종종 그 옥상을 떠올린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잠시 숨 고를 수 있는 곳.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견딜 힘이 생긴다는 걸,
나는 그때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