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하 조약돌 하나

by 코난의 서재

제주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학 생활을 시작하던 그해 봄, 나는 기숙사 창가에 손바닥만 한 조약돌 하나를 올려두었다. 그 돌은 해안가를 걷다 우연히 주운 것이었다. 둥글고 매끄러웠다. 검은빛에 가까운 회색, 손에 쥐면 놀랄 만큼 부드러운 감촉이 전해졌다. 차가운 바닷바람을 맞으며 오래 굴러다녔을 돌. 그 표면엔 오랜 시간의 흔적이 말없이 스며 있었다.

그날 나는 바다를 등지고, 돌 하나를 주머니에 넣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는 길목에서, 무언가를 챙겨야 할 것만 같은 마음이었다. 마치 작별 인사처럼, 혹은 나 자신에게 건네는 작은 부적처럼. 딱히 계획하지 않았는데, 그 돌이 내 손안에 들어왔다.

처음 기숙사에 들어갔을 때, 낯선 방의 풍경 속에서 그 돌은 작은 중심이 되어 주었다. 책상 옆, 창틀 위, 잠들기 전 가끔 손에 쥐어보았다. 말 못 할 외로움이나 서운함이 밀려오는 날이면, 그 돌을 만지작거리며 숨을 고르곤 했다. 이상하게도 그 조약돌을 손에 쥐면, 바다 내음이 나는 것만 같았다. 고요한 파도 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렸다.

시간이 흘러 서울살이에 조금씩 익숙해지면서도, 그 돌은 자리를 옮기지 않았다. 내가 방을 옮겨도, 새로운 집을 구해도, 늘 그 돌은 창가에 머물렀다. 나는 종종 그 돌을 바라보며, ‘여기까지 잘 왔어’라고 나 자신에게 속삭였다.

이따금 친구들이 물었다. "이 돌은 뭐야?"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고향에서 데려왔어. 나만 아는 비밀 친구야."

설명하려 해도 다 전할 수 없는 마음이었다. 그 돌 하나에 얼마나 많은 바람과, 얼마나 많은 고요와, 얼마나 많은 결심이 담겨 있는지.

이제는 그 돌이 나를 설명하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혼자서도 단단해지고 싶었던 시절, 너무 흔들리지 않으려 애썼던 시간, 그리고 여전히 흔들리지만 다시 중심을 잡으려 노력하는 지금까지.

손바닥만 한 그 조약돌 하나가, 나의 그 모든 마음을 조용히 기억해주고 있다.

작가의 이전글하늘 아래 나만의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