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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실, 나의 피난처

by 코난의 서재

하교 시간, 복잡한 교문을 지나
조용히 음악실 문을 열던 저녁.
교실 불이 모두 꺼진 뒤에도
그곳만은 늘 따뜻하게 빛나고 있었다.

유일하게 내가 다녔던 학원.
다섯 살, 피아노 문지방에 손가락을 얹고
어설프게 건반을 두드리던 그 작은 손.
그 모습을 본 엄마가
처음으로 나를 학원에 보내주었다.
그때부터였다.
한 번도 빠지지 않고,
고3이 될 때까지
피아노를 치러 갔다.

피아노는 늘 기다려주었다.
말로 하지 못했던 하루의 답답함,
속상하고 억울했던 마음,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그 감정들을
나는 손끝으로 꺼내어
흰 건반, 검은 건반 위에 내려놓았다.

고등학교 때, 우연히 중창반 반주를 맡게 되고
그날부터 음악실은 내 작은 피난처가 되었다.
친구들이 삼삼오오 집으로 가는 시간,
나는 조용히 음악실로 향했다.
스트레스가 폭발할 것 같은 날이면
빠른 곡을 힘껏 쳐댔고,
기분이 가라앉는 날이면
차분한 곡으로 내 마음을 쓸어내렸다.

누구도 모르는 나만의 공간.
손끝에서 마음이 풀리고,
마음이 풀리면 다시
내가 나로 돌아오는 그곳.

지금도 가끔,
마음이 어지러운 날이면
머릿속에 그 음악실의 풍경을 그려본다.
그때 들리던 건반 소리와
살짝 열려 흔들리던 커튼 사이로 스며들던 저녁빛까지.

소리를 품은 공간은,
언제나 마음을 쉬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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