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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는 연습, 들키는 마음

by 코난의 서재

꿈이었다.
나는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벽은 두껍고 차가웠고, 빛 한 줄기 들지 않는 좁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 위치를 알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숨을 죽이고, 조심히 몸을 웅크려도, 곧이어 들려오는 발소리와 무전기 소리에 나는 다시 도망쳐야 했다.

공간은 계속 변했다. 처음엔 지하 벙커 같았고, 이어서는 회색 도시의 골목, 그리고 아무도 없는 학교 건물. 익숙하면서 낯선 풍경들이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나는 그 속에서 길을 잃고 있었다.

그들은 군복 같은 차림에 표정 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눈은 마치 CCTV처럼 나를 훑었고, 그들의 손엔 명단이 들려 있었다. 마치 ‘이 세상에서 사라져야 할 사람’ 목록처럼. 나는 알 수 없는 죄목을 안고 끊임없이 도망쳤다. 그들에게 붙잡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이유도 없이 나를 압도했다.

이상한 건,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익숙했다는 것이다. 처음 겪는 장면이 아니라, 어디선가 수십 번 반복해온 감정 같았다.

‘발각되는 공포, 이유 없이 죄책감을 느끼는 나, 그리고 도망쳐야만 하는 나.’

꿈속엔 동생은 없었다. 하지만 깨어난 뒤, 나는 그 아이를 떠올렸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지켜야 할 사람’이 있었다. 동생이 특수학급에 다니던 국민학교 시절, 나는 자연스레 돌봄의 역할을 맡았고, 그건 내 역할처럼 굳어졌다. 문제는 세상이 나를 그렇게만 보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동생을 돌본다고 하면 ‘착한 누나’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동생 핑계 대는 애”, “쟤는 이상한 애랑 다녀” 같은 말들이 따라왔다.


아이들의 말은 날카로웠다. 그건 동생을 향한 조롱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향한 무언의 비난이기도 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내가 죄지은 사람처럼 느껴져야 했는지, 왜 설명해도 이해받지 못했는지. 그래서일까. 꿈속에서조차 나는 숨어야 했다. 들키면 안 되는 사람처럼, 계속 쫓기고, 숨고, 도망쳤다.

무의식은 정직하다.
그 꿈은 내가 얼마나 오래 ‘숨는 연습’을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나를 지키기 위해 감정을 숨기고, 책임을 삼키고, 침묵으로 나를 감쌌던 시간들.
아무도 시키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잘했던 역할.

그리고 그 안에 갇혀 살아온 나.

이젠 조금씩 그 벽을 허물어야 할 때라는 걸 꿈이 알려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만큼 나를 감춘 채 살아가는 것보다, 때로는 “나는 그때 힘들었어요”라고 말하는 용기가 더 나를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걸.


꿈은 사라졌지만, 그날 느꼈던 기묘한 해방감은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
그리고 나는 조심스럽게, 나를 숨기지 않는 연습을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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