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조용히 앉아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아직 나팔을 한 번도 불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나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
나를 함부로 규정하는 이에게,
혹은 ‘너 따위가 뭘’ 하고 눈을 흘기던 세상에게
나는 한 번도 당당히 ‘아니에요’라고 말해본 적이 없었다.
대학 시절, 수업 시간에 낸 에세이가 교수님의 칭찬을 받았을 때조차,
나는 고개를 숙이고 “운이 좋았어요”라고 얼버무렸다.
처음으로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 나왔을 때도,
친구들에게 “그냥 공저야, 내 분량은 별로 없어”라고 쑥스러워했다.
늘 그랬다.
내가 한 건 작다고, 아직은 아니라고, 더 잘하는 사람이 많다고.
그렇게 나의 가능성 앞에 스스로 작은 바람막이를 세워왔다.
하지만 언젠가, 한밤중에 책상 앞에 앉아 글을 쓰던 날,
내 안의 조용한 무언가가 이렇게 속삭였다.
“언제까지 그렇게 겸손한 척만 하며 도망칠 거야?
이제, 네가 직접 네 나팔을 불어야 할 때야.”
나는 그 말에 오래 머물렀다.
그래, 이제는 더 이상 누군가가 내 손을 잡아 끌어주기를 기다릴 수 없다는 걸.
‘기다림’이 ‘겸손’의 다른 이름인 척하지만,
사실은 두려움의 다른 얼굴이었다는 걸.
무언가를 시작할 때,
세상은 늘 "연락드릴게요"라며 나를 미지의 대기실에 머물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도전이란, 그 대기실에서 몰래 빠져나와
내 이름을 직접 호명하는 일이라는 것을.
그 날 이후, 나는 자그마한 나팔을 하나 만들었다.
누군가 “지금은 아니야”라고 말할 때,
나는 “나는 지금이야”라고 작게나마 나팔을 분다.
작은 글 한 편을 올릴 때에도,
새로운 시도를 할 때에도,
혹은 ‘이건 나답지 않은데’ 싶을 때에도
나는 내 안의 의심에게 작게 외친다.
“그만 조용히 해. 이제 내가 좀 살아볼게.”
“진짜 예술은, 남이 아니라 내 안의 침묵을 향해 나팔을 부는 것이다.”